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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실리 페로프 (Vasily Perov / 1834~1882)- 세상을 고발하는 시퍼런 눈

작성자fineclub|작성시간18.11.30|조회수72 목록 댓글 1

러시아 화가 이야기를 시작했으니까, 한 사람을 더 만나고 자리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화창한 유월과는

어울리지 않는, 썩 유쾌한 내용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림을 통해서 지금의 내가 사는 모습이 행복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되겠지요. 바실리 페로프 (Vasily Perov / 1834~1882)의 그림 속에는

눈물과 한숨 그리고 세상을 고발하는 시퍼런 눈이 녹아 있습니다.

 

 

 

 

상인의 집에 도착한 가정교사   A governess arriving at a merchant's house

 

방금 도착한 가정교사를 맞는 집안 식구들 표정이 가관입니다. 가운데 선 남자가 이 집의 가장인가요?

왕처럼 거만한 자세도 눈에 거슬리는데 그 옆에 아들의 모습은 한 술 더 뜹니다. 오른쪽의 깜짝 놀라는 표정의

소녀가 아마 학생인 모양입니다. 가정교사를 대하는 식구들의 모습을 보면 혹시 졸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을 맞는 모습에서 교양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궁금함과 호기심이 보입니다. 그 사람들의 표정이 사람을 대하는 원래의 표정 아닌가요? 당시 러시아 습관이

이랬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누가 같은 피 아니랄까 봐 주인과 아들 그리고 벽에 걸린 초상화 속 남자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페르프는 아르자마스 지역의 행정관이었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적자가 아니고 서자였다고 하는데,

서자에 대한 러시아와 우리 나라의 차이를 알 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유년 시절이 어떠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시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난 저항과 고발이 그의 출생과 연결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독신 기타리스트    The Bachelor Guitarist / 1865

 

페르프가 묘사한 작품 속 인물들 중에는 머리가 유난히 큰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모델이 큰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페로프가 크게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동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합니다. 저는 마음이 편하지만

작품 속 기타리스트의 표정은 그렇지 않군요. 술을 몇 잔 마시고 난 뒤 기타를 잡았습니다. 벗어 놓은 모자에

누군가 돈을 올려 놓으면 오늘을 어떻게 지내 보겠지만 그 것도 난망인 모양입니다. 바닥에 던져버린 담배

꽁초처럼 시름도 던져 버렸으면 좋겠는데 ----, 애닯은 기타 소리만 들립니다.

 

열 두 살이 되던 해 페로프는 아르자마스에 있는 예술학교에 입학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가 얻은 별명은

그의 이름이 되는 페로프였습니다. 그의 글씨체가 아주 좋아서 얻은 별명이었는데 페르프는 러시아의 펜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의 괴발개발 글씨체를 보고 있으면 한 번 쥐어 박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 건 제가 아나로그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겠지요.

 

 

 

 

아마추어    Amateur / 33.8cm x 28cm / 1862

 

두 사람 중 누가 아마추어로 보이시는지요? 제 생각에는 두 사람 모두 아마추어 같습니다. 손을 동그랗게

해서 그림을 살피는 여인이나 긴 담뱃대를 물고 몸을 뒤로 한껏 젖힌 화가나 본 것은 많은 모양이지만 그림을

앞에 둔 자세로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드러나는 행동 보다 그 사람 속에 담긴 치열한 마음과 추구하는

가치를 두고 우리는 프로인지 아닌지를 구별하죠. ‘프로인척 하는 사람은 예전에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언제쯤 우리 사회에도 진정한 프로들이 많아질까요?

왜 그래? 아마추어 같이 ---- ‘

그림 속 화가가 저를 보고 툭 던지는 말입니다.

 

1853, 19세의 나이로 페로프는 모스크바 예술학교에 입학합니다. 이 곳에서 풍속화와 풍자화를 배웠는데

훗날 페르프의 주요 장르가 되죠. 학교 재학 기간 중 페로프는 작품으로 두 번의 은메달을 수상합니다.

초기 그의 작품은 섬세한 붓 터치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보이 사람   Savoyard / 1863~1864

 

이 그림을 처음 볼 때나 지금이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가 큰 아이라고 봤는데, 어느

순간 난쟁이로 보이더군요. 더구나 눈을 감고 한 손에 작은 지팡이 같은 것을 든 모습은 잠든 모습이 아니라

장님의 모습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루한 옷을 보면 떠도는 것 같은데, 감은 눈과 머리 속

으로 행복한 생각들과 장면들이 쉬지 않고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그 꿈에서 깨어 나면 현실이 더

힘들지 않겠느냐구요? 글쎄요, 때로는 쓰디 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 중에는 꿈도 있지 않은가요?

 

프랑스 대혁명 이후 1848 2월 혁명으로 공화정이 들어설 때까지 리얼리즘은 부르주아들의 부정적인 면을

고발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비인간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모습을 묘사한 리얼리즘을 비판적 리얼리즘

이라고 하는데, 러시아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그리고 나중에 고리끼가지 이어지는 흐름이죠.

페로프가 작품 활동을 할 때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예술가가 눈을 감는 것을 부도덕하다고 여기는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부활절의 마을 십자가 행렬    Easter Procession in a Village / 71.5cm x 89cm / 1861

 

십자가와 깃발을 든 행렬이 교회를 나와 마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큰 축일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손에 십자가를 손에 든 사제는 얼굴이 붉습니다. 아침인데 아직 술이 깨지 않았거나

이미 술에 취한 모습입니다. 사제의 발 아래에서 구걸을 위해 손을 벌리는 걸인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습니다.

오른쪽에 쓰러진 사람 위로 또 다른 사람을 깨우기 위해 여인은 머리에 물을 붓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만약 이 장면을 보셨다면 다시 눈을 감고 싶으셨을 것 같습니다. 낮은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할 사람들이 높은 곳만 쳐다보는 세상 --- 그곳이 지옥과 다른 것이 뭐 있겠습니까.

 

1861, 27세가 되던 해 페로프는 졸업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부상으로는 해외 유학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해 그가 제작해서 전시한 작품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부활절의 마을 십자가 행렬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성직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전시회에서 철거되고 맙니다. 명백한 비판적 사실주의 작품이었죠.

 

 

 

 

 

모스크바 근처 뮈티시치에서의 다과회    Tea-Party at Mytishchi near Moscow / 1862

 

페로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너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그룹이 있습니다.

한쪽은 세속의 명예와 지위 그리고 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은 발 한 쪽을 포함해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버렸거나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종교가 사람의 정신을 구원하지 못하면 이미 종교로서 자격은 없는 것이죠.

그림 속의 배부른 성직자가 구원을 받을 길은 아득해 보입니다. 걸인을 밀고 있는 여인도 밉습니다.

 

당시 페로프의 친구가 남긴 글 중에는 이태리 유학 대신에 솔로베츠키섬으로 유배를 갈지도 모른다라는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솔로베츠키섬은 요즘 오래된 수도원이 있는 섬으로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성직자를

모욕했다는 죄명으로 수도원이 있는 섬으로 유배를 보낸다? 좀 치사한 발상 아닌가요?^^

 

 

 

 

파리의 거리의 악사     Organ-Grinder in Paris / 1864

 

오르간을 돌리는 여인의 눈에는 힘이 없습니다. 품에 아이를 안고 손으로는 연신 오르간을 연주하지만

돈이라도 좀 놓고 가야 할 사람들은 건물의 그림자 속에 있습니다. 그 사람들 너머로는 하늘에 닿을 듯한

건물들이 서 있습니다. 혹시 보이시는지요. 빛은 힘없는 여인과 아이에게 내리고 있습니다. 애초 자본주의에는

휴머니즘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살아 남기 위해서 휴머니즘의 조각이라도 가지고 있지만 그림 속

시대에는 그나마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150년 전 파리의 뒷골목의 모습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을까요?

 

그래도 다음 해 독일의 몇 개 도시를 거쳐 파리로 유학을 간 것을 보면 유배는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서유럽 거리의 풍경은 이 때 그려진 것입니다. 파리에서의 유학 생활에 대해 그 자신은

그림을 그리는 기술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라고 했지만 실제로 뚜렷하게 남긴 것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냥 시간만 흘려 보냈을까요?

 

 

 

 

트로이카, 물을 나르는 견습생들   Troika. Apprentices fetch water /123.5cm x 167.5cm / 1866

 

3두 마차를 러시아어로 트로이카라고 하죠. 얼마나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인지 그림 밖으로도 한기가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두른 목도리와 머리가 날리고 있습니다. 한 겨울 물을 나르는 일을 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립니다. 대각선으로 묘사된 건물과 울퉁불퉁한 길 그리고 흐린 하늘은 그림을 더욱 어둡고 불편하게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뒤편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등에서 추위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어린이 학대와 불의에 대한 페로프의 증오가 거친 바람과 함께 화면 안에서 몰아치고 있습니다.

 

1865, 4년 만에 페로프는 정부가 보장한 유학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러시아로 돌아 옵니다. 기간을 채우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페로프의 이야기를

읽다가 느낀 것이지만 그는 자기 주관이 뚜렷했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귀국한 그 해부터 약 5~6 년간 그의 역작들이 제작됩니다.

 

 

 

 

수도원의 식사      A Meal in the Monastery / 1865~1876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행동을 하고 있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면 타락입니다. 일반 가정집 보다 더

풍성하게 차려진 수도원의 식사시간입니다. 방금 도착한 부유한 여인에게 몇몇 성직자들은 매달려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성직자들 사이로 한 아이는 안고 또 한 아이를 앞세운 여인은 손을 벌려 보지만 누구도 여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성직자들이고 그들을 후원하는 부자들이 화면 속에 가득한데 말입니다. 타락한 종교가

가질 수 있는 얼굴을 페로프는 아주 치밀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은 비아냥이기도 합니다.

 

귀국 한 그 해 페로프는 아카데미 회원이 됩니다. 이 때부터 그려진 그의 작품은 누구나 내용을 알기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또 의도적으로 쉬운 주제를 선택하기도 하였습니다. 비판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그의 작품은

1860년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마지막 여행   Last Journey /1865

 

보다 보면 눈물이 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르파주의 어린 장님을 묘사한 작품이 그랬고 페로프의 이 작품이

또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겨울 아침 관을 실은 썰매가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관 속에 누워있는 사람은

마부석에 앉은 여인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이겠지요. 어린 아이는 추위에 지쳤는지 잠이 들었고 좀 더

큰 아이는 관이 떨어질까 봐 잔뜩 긴장한 모습입니다. 퀭하게 느껴지는 아이의 큰 눈이 안타깝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은 날이 밝아 오는 것이 무서운 것일까요? 이제 차디찬 땅에 남편을 묻고 나면 세상을 살아

갈 일이 아득하겠지요. 그래도 살아 가야 합니다. 가야 하고 말고요. 모든 가족이 한 썰매에 탔지만 그것은

영원한 이별을 전제로 한 마지막 여행입니다. 관 사이로 살짝 삐쳐 나온 망자의 옷 자락이 겨울 바람에 떨리고

있습니다.

 

페로프의 작품은 강한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 결과 러시아 회화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같이 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사랑은 힘 없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감정

이었고 증오는 힘있고 권력 있는 자들에 대한 것이었겠지요. 한편으로 그의 작품 구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단순해졌고 감동은 커져갔습니다.

 

 

 

 

 

익사자   The drowned / 68cm x 108cm / 1867

 

익사한 채로 발견 된 여인의 시신을 앞에 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형사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내려

앉았습니다. 해초처럼 풀어진 여인의 머리는 마치 검은 피가 흘러 내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호수 건너 도시는 안개에 덮였고 떠 있는 배도 윤곽으로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익사한 사람은 누워 있는

여인만은 아닙니다. 그림 속 모든 것들이 적막에 빠져 익사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빠져 있을까요? 혹시 헤어날 길은 잘 알고 있을까요?

 

1871년 페로프는 관주도의 전시회를 반대하고 러시아 전역에 직접 전시회를 여는 방랑파의 창립멤버가 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가 졸업한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교수가 됩니다. 교수로서의 그의 자질도 뛰어났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지난 번에 소개한 미하일 네스트로프 (http://blog.naver.com/dkseon00/140063663504),

세르게이 코로빈 같은, 훗날 러시아 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초상화   Portrait of Writer Fyodor Dostoyevsky / 99cm x 80.7cm / 1872

 

러시아의 농노제와 군주제를 비판하던 모임에 가입 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른바 페트라셰프스키 사건

연루되어 체포됩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 당하기 바로 직전 그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던 니콜라이 1세의

명령으로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지죠. 출장 가는 길에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내려다 보면서 그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던 일생이 생각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1860년대 말 페로프는 초상화 분야에 발을 담급니다. 그의 초상화는 다른 초상화가들의 작품과는 달랐습니다

초상화 주인공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에 두고 페로프는 모델의 개성과 속 내를 꺼내 화폭에 담았습니다.

표현 양태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초상화가들의 추구했던 것과 같았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남긴 초상화 속의 주인공들의 계층은 다양합니다. 당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떠돌이도 있고

농민도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작품 성향은 훗날 레핀이나 막시모프 같은 화가들에게로 이어지게 됩니다.

 

 

 

 

도시의 마지막 여인숙    The Last Tavern at the City Gates / 1868

 

작품 속 배경이 아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녁이라면 썰매 위에 앉아서 멍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여인이

너무 안쓰럽기 때문입니다. 길 앞에 있는 높은 탑을 지나면 이 도시를 벗어나게 되겠지요. 마지막 여인숙에

잠시 멈춰서 한참을 달려야 할 말들을 위해 풀을 먹이고 있습니다. 출발하기에 앞서 남자는 여인숙으로 뜨거운

물과 음식을 가지러 갔겠지요. 끝도 없이 이어진 눈 덮인 길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잘 갈 수 있죠?

 

40대 이후 페로프의 작품은 정체를 보입니다. 사회가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기술도 발전하지만

페로프는 자신이 추구해 왔던 기법이나 주제를 바꿀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끝 없이 화풍을 바꿔가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페로프처럼 평생 자신의 것을 유지하는 화가가 있습니다.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은 듭니다. 호기심 많은 인간이 우선인가, 아니면 예술혼을 추구하는 화가가 우선인가.

 

 

 

 

잠자는 아이들   Sleeping children / 1870

 

헛간에 마대를 쌓아 놓은 곳에 아이 둘이 잠이 들었습니다. 몸을 웅크리고 자는 아이는 사내아이이고 햇빛을

받고 있는 아이는 여자 아이입니다. 맨 발인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깊은 잠이 든 모습입니다. 무슨 꿈을 꾸는

것일까요 ---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이겨 낼 수 만 있다면 무슨 꿈인들 문제이겠습니까?

 

 

새 사냥꾼   The bird-catcher / 1870

 

손으로는 덫과 연결된 줄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풀피리를 입에 물고 새를 유혹하는 중입니다. 할아버지 옆에

앉은 아이의 눈에는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참 신기한 것이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으면 보는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 당연히 가장 힘든 것은 엇갈린 시선들이 많을 때이죠. 무엇인가에 같은

목적을 향해 시선을 같이 하는 것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페로프의 결혼에 관한 자료를 얻을 수가 없어서 화가 이외의 생활을 드려다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그의

첫 번째 아내의 초상화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두 번 결혼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 봅니다. 결혼이 그렇게

중요하냐구요? 물론이죠. 예술가들에게는 무덤이기도 하지만 천국일 수 도 있거든요.

페로프는 결핵에 걸려 48세의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 납니다. 너무 이른 나이 아닌가요?

그나저나 하늘에서는 무엇을 그리고 계신가요, 페로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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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화가 진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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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여행 | 작성시간 18.11.30 멋진풍치와 내용입니다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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