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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흐의 사랑..시엔

작성자골롬바2|작성시간19.07.16|조회수14 목록 댓글 0
 

고흐의 사랑..시엔


이 땅 위에 홀로 버려진 여인, 시엔은 누구인가.

빈센트 반 고흐가 화가로 입문하던 시절,

그러니까 무명의 반 고흐가 주목한 인물이 시엔이다.

사촌 케이 보스와의 사랑이 아버지의 거센 반대로 불발로 끝나고 1882년 사촌 모베가 있는

헤이그에 가서 만난 여자가 시엔, 클라시나 마리아 흐릭이다.

 

슬픔,  1882,

뮤지엄&아트 갤러리

 

4월의 눈부신 햇빛 아래 그녀를 본다. 벌거벗은 채 두 무릎을 세워 얼굴을 푹 파묻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내가 나를 위로하듯, 그녀와 똑같이 얼굴을 무릎 사이에 깊이 파묻고 이 봄 내내 있어야 할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가 스물아홉, 아니 서른 살에 검은 분필로 거칠게 그린 <슬픔>의 그녀는

서른세 살 처절했던 봄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웅크리고 앉은 바윗돌 옆에는 풀이 드문드문, 앙상한 어린 나무 가지에도 꽃이 드문드문.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지독하게 고통스럽지만,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바야흐로 봄이다.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고 했던가.

웅크린 내 등과 머리 위로 벚꽃 잎은 자꾸만 눈처럼 떨어져 쌓이고,

발레리의 그 유명한 시구처럼, 나에게도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언제나 시작하는 바람, 얼음 계곡을 방금 빠져나온 듯 싱싱한 그 바람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윗가 풀들이 어느새 발목을 뒤덮고, 하루종일 벚꽃 잎 허공에 난분분히 날리던 날,

나는 겨우내 얼룩졌던 창유리를 닦고, 벽 거울을 닦고, 흐릿해진 내 눈, 무겁게 짓누르는 내 마음을 닦았다.

벌거벗은 채 牡?뮈?앉아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잇는 시엔이라는 여자를

<슬픔>이라 명명한 반 고흐는 그 여인을 보고 그렇게 이름지을 수밖에 없었던 연유를

미슐레의 글을 빌어 말했다.

 "어찌하여 한 여인이 이 땅 위에 홀로 버려진 채 있는가?"


<고흐, 앉아 있는 시엔, 1882, 크?러 뮐러 미술관, 오르텔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서른세 살의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자였다.

얼굴은 예쁘지 않고 얽기까지 했으나 반 고흐의 눈에는 실루엣이 아주 단아하고 매력적이었다. 이미 어린 딸과 뱃속에 또 다른 아기를 가지고 있던 오갈 데 없는 시엔을 반 고흐는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하고자 했다.

그녀와 가정을 이루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홀로 헤이그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시엔, 반 고흐의 얽음뱅이 사랑은 더 이상 그의 생애에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반 고흐가 그때 시엔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푹 숙인 고개를 들고,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얽음뱅이 얼굴이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여인으로 부활했을지도 모른다.

"햇빛 쏟아지는 찬란한 봄날, 나는 왜 그녀, 슬픔에 잠긴 시엔을 제일 먼저 기억하는 것일까.

봄은 내 어머니를 빌어 나에게 생명을 주었지만, 봄은 또한 죽음을 빌어 나에게 사랑을 앗아갔다.

생명과 죽음이 운명을 가르며 극과 극을 오가는 현기증 나는 봄날, 나는 슬픔을 지독한 몸살로 끙끙 앓곤 하는데, 내가 끝날 것 같지 않은 슬픔의 진창에서 빠져나와 유리창 밖으로 눈을 돌릴 때면, 내가 나를 속이듯, 한층 깊어진 거울 속으로, 한층 넓어진 세상 속으로 나를 던질 때면, 봄은, 내 검고 푸르고 눈부셨던 봄날은 아스라이 끝을 보이곤 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날은 오고, 또 간다.

포도나무 덩굴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내 어머니는 바닷가 태생지로 돌아가셨지만, 나는 본다. 그녀, 오 나의 시엔, 내 어머니이자 나의 봄날을, 그 검은 슬픔을 오래 울어주던 그녀를….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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