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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극사실주의 [hyperrealism]

작성자가을여행5|작성시간19.09.18|조회수142 목록 댓글 3

극사실주의 [hyperrealism]



    현실을 극단적으로 생생하고 완벽하게 재현하는 미술의 한 경향.
    래디컬리얼리즘(radicalrealism). 슈퍼리얼리즘(superrealism), 포토리얼리즘(photoreaslim)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0년대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 시도되었는데, 본래는 1962년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발생하여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던 전위미술인 팝 아트(pop art)의 영향 아래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몸적물인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주관을 일절 배재하여 마치 사진을 보듯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상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없는 인물이나 장소를 다룬다. 극사실주의는 이미지화하려는 작가의 의식조차를 억제하려는 점에서 팝 아트와 구별된다. 실제로 사진의 슬라이드를 직접 사용하기도 하는데,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어 실물과 거의 완벽하게 같은, 땀구멍까지 묘사된 인물의 조각상과 같은 작품들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극사실주의 極寫實主義 (hyperrealism), 즉 대상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리는 기법.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으로 같은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시도된 비슷한 경향의 미술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극단적인 사실적 묘사에 의하여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일순간 정지시켜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강조해 표현하려는 미술의 한 경향이다. 하이퍼리얼리즘계보는 아메리칸 신페이팅파에서부터 시작된 미국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찾아볼 수있다. 또 공허하고 정서적으로 마비된 듯한 모습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전쟁혐오증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초사실주의(超寫實主義)>라는 뜻이며, <슈퍼리얼리즘(superrealism)>, 포토리즘, 스튜디오 리얼리즘, 샤프 포커스 리얼리즘 등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사대적 태마주의에서 일상으로의 복귀는 종래의 <그린다> 라는 의미와 <일상>이라는 문제를 제기 하였다. 주관을 적극 배격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캔버스에 감광제를 발라 사진을 직접 프린트한 작품도 있다. 사진기의 눈이 포착한 영상은 사실인 것이 확실하지만 그것도 결국 실물로부터 떨어져서 자립한 일종의 허구일 따름이다.

    슈퍼리얼리즘은 세밀한 묘사, 마술적 리얼리즘 등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였던 극단적인 사실주의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연주의가 아니라 극도의 사실표현을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서, 사실주의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허구는 새로운 현실 일 수 있다.

    포토리얼리즘은 모더니즘미술을 거부한다기 보다는 긍정하는 것으로 볼수있다.60년대 후바에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포토링ㄹ리즘 미술을 비웃었다. 그 스타일이 반동적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기껏해야 일시적인 유행일부이었다. 아니면 주의를 끌기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은 꾸며낸 행동이었고 어떤이에게는 장난이었다. 많은 평론가들, 거래상들, 출판업자들은 이 스타일을 진지하게 취급하려 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선구자들은 지원을 해주었다.

    1965년에서 1968년 사이에 전시회가 드무드문 열리고 평가를 받았으며, 그리하여 로버트 백틀, 존
    클램클라크, 오드리 플랙, 말콤몰리 등의 자각들이 대중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반카프를 제외하고는 어떤 개별적인 작가도포토리얼리즘 양식의 잠재성을 집중적으로 전개시킬 의욕도, 능력도, 모험심도 없었다. 즉 루이스 마이즐이 1973년소호의 프린스가에 그의 두 번째 화랑을 열기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포토리얼리즘은 그렇게 성년이 되어고 
    고대해 왔던 지속적이고 완전한 관심을 획득하게 되었다.

    포토리얼리즘은 오랜만에 처음으로, 해석적 비평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현대미술에 있어서 독특한 것이다. 20세기의 대부분을 '형식주의'라는 딱지가 붙은 비평적 접근방식이 예술사조를 지배하였다. 예술작품은 오로지 그
    자체의 검증가능한 내용, 즉 형태, 색체, 재료, 비례 등에 의거하여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품은 그 자체이외에는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포토리얼리즘 미술 바로 직전에 나타난 즉자적인 양식인 미니멀아트는 형식적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아다. 새로운 미술은 첫째 주제를 토대로 예술감상의 가능성을 제기했다.이것은 제한되어이던 비평적 접근을 풍부하게 해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포토리얼리즘에 있어서 과정이라는
    솔직하고 직접적이며 풍부한 예술적 전략을 위한 합당한 주제가 되었다.

    한점의 사진 이미지는 기계적인 과정을 밟아 나왔을 뿐 , 상상력을 통하여 물질적으로 '조성된'것이 아니다. 사진은 실재하는 것의 겉현사에 매달리는데, 바로 이런 연유에서 사진이 흥미거리나 시각적 리얼리즘에 대한 훌륭한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감정을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확대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던 추악함 - 모발에 가려진 점 이라든가 미세한 흉터까지도 그대로 클로즈업되어, 보통이라면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사실성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게 만든다.

    미술은 어느 특정한 콜랙션의 코랙션 대상이 될 수없으며 현장성, 실재성을 띠면서 대중과 유리되게되었고, 그 존재방식에서 실체성과 형상성을 추방함으로써 전통적인 비평가의 기능을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가속적 변모를 노출시켜왓다. 이제 미술가 자신을 포함하여 미술에 관심을 둔 모든 사람이 물을 수 있는 단하나의 물음은 "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마지막 afdma이 된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불음에 대하여 '리얼리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찾아볼 수있고, 또한 팜아트의 대두와 하계 강조된 일상성과 현장성 그리고 미니멀아트의 평면성과 전면성강조에서 드러난 리얼리티의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 , 여기에 고도의 개발된 현대 사진술의 재현성에 자극되고 힘입어 여러형태의 이른바 '새로운 사실주의' 가 나타난 과정을 목격하여 왔으니, 이런 새로운 리얼리즘에 대두는 무엇보다도 먼저, 외골수로 나가려다 궁지에 몰린 현대미술을 역사의 관점에서 되돌리려는 노력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며,m 또한 '표현'으로서의 예술의 막다른 길에서 '재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또하나의 큰길을 뚫어 예술자체를 구원해 보려는 예술가 자신들의 절실한 요청의 결과라고 이해될 수있다.

    사진을 택하여 그리는 극사실주의는 자연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그리기 때문에 3차원의 자연물을 2차원에 올길 때 일어나는 이미지와 리얼리티의 부조화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즉 그들은 평면이미지를 평면이미지로 확대하는 것이지 3차원은 실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현이라는 문제에서 비켜 날수가 있었다. 또한 사진을 이용하는 작가들은 전체를 구성하면서 종합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극히 적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완성시켜나가면서 전체로 확대해나가기 때문에 자신의 감성을 빼 거의 기계가 하듯 객관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

    팝과 미니멀 아트에 다 관련이 이으며 미니멀리즘이 지녔던 근본적인 극한점, 즉 삭제, 축소로 인해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통해서 행해진 반발과 이탈이라는 점에서 팜과 미니멀의 두 측면을 지녔으며 동시에 이 둘을 극복한 아이러니컬한 측면을 지닌다. 가장보수적인 형태의복귀라는 팝아트에대한 하나의반동으로 서 탄생한 하이퍼 리얼리즘은 팝아트의 경우보다그의 등장에이Tdj 화상-수집가의 연합작전이 더 큰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있다.

    그러나 슈퍼리얼리즘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예술자체의존재방식에 대한 반성으로서 그 독립된성격이 형성 되었다고 볼수있기 때문에 , 수퍼리얼리즘을 팝아트의 후계자라고 할 경우 이제까지의 작품을 행위에로 전환시킨 팝아트와는 반대로 행위를 작품으로 역회전시키고, 추상미술에의해 거부되고 해체되고 마침내 증발해 버린 주제를 작품에 되살려 놓음으로서 팝아트의흐름에 역행하는 면도있다.

    하이퍼 리얼리즘은 "정밀사진 같이 대상을 포착하면서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포커스가 없는 화면이 특징이며, 될 수있는한 쿨하고 중성적이며 비원근적인 방법을 특징으로 한다. "고 알려져있지만, 1. 주제의 등장 2. 주재제현의 정확성, 정밀성 3. 일상적 소재의 선택 4. 초점을 가지지않는 평면성 5. 표현의 중성화등이 특성이다.

    이렇게 카메라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줄수있다는 인간시각의 위위성의 회복, 증발된주제를 되살리고 소재를 일상성에서 생활자체로 확대시켜,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인간 자신을 무대의주인공으로 되살리려는 노력, 그러면서도 화면은 어디까지나 평면성을 유지하며 작가의 표현에 의한 주과적 해석이 아니라 우리앞에 놓여진 객관적 실재롯의작품을 보여주려는 수퍼리얼리스트의노력은 , 결국 사람들에게 '사물을 보는 다른 보다 나은 방법'을 보여주려하는 듯하다.

    *포토리얼리즘의 작가로 구별하는 기준은

    1. 포토리얼리스트는 정보를 모으기 위해 카메라와 사진을 이용한다.
    2. 포토리얼리스트는 정보를 캔버스에 옮겨 놓기 위해 기계적 혹은 반기계적 수단을 사용한다.
    3. 포토리얼리스트는 완성된 작품을 사진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가술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4. 중심적인 포토리얼리스트 중의 하나로 인정되려면 1972년까지는 포토 리얼리스트로서 작품을 전시 했던 작가여야 한다.
    5. 작가는 포토리얼리즘 작품의 개발과 전시를 위하여 적어도 5년을 바친사람이어야한다.

    이상은 루이스 K.마이즐 주장이다. 사실, 포토리얼리즘 이전의 사실주의들은 어느정도 인상을 주의적이었으며, 아니면 적어도 하나의 인상이었다. 포토리얼리즘이 기여한 기법은 장인적 기술과 제도의 기술을 현대예술에 복귀시킨 것이다. 대부분 포토리얼리즘작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포토리얼리즘 기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그들은 추상회화를 배우고 아카데믹한 회화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펄스타인이나, 몰리는 포토리얼리스트가 나타나기 직전에 영향을 주었던 작가들이다.

    포토리얼리스트들이 표현매체로서 판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역시 1972년 아니면 1973년이었으며, 그 이후로 그들은 고도로 혁신적인 판화를 많이 제작해다. 포토리얼리즘 판화제작은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 작가들은 그런 문제를 전문적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했다. 판화집들은 순전히 상업적인 의도를 가지고 다소 서둘러 한 일이었지만, 판화에 대한 미래의 좀더 성공적인 시도를 위한 구미를 자극하긴했다.

    따라서 슈퍼리얼리즘은 , 시각의 다원화를 통해 존재 파악의 폭을 확대시킨 큐비즘의 시각이 일대 혁명이었듯이 , 인간시각의 가능성을 새로운 국면에서 열어보여준 하나의 혁명이라 할 것이다.그들의 작품들은 이제 자기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단지, 보는 입장, 이른바 대상자체의 자기성에만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한히 대상성을 지워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말레비치의절대주의 회화나 마르쎌뒤샹의 막다른 길을 피하여 가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그러나 그결과는 도리어 나르시소스의 비극을 재촉할 뿐이었다. 자기의 허상을 지워버리려던 실험이 오히려 자기를 있게하는 기반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미니멀아트가 실험보다도 진지하게 그리고 무엇인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물음의 해답은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이른바 쉬포르 수포르 쉬르파스의 등장이다. (순순평면), 이는 뒤샹과 말레비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실험이었다. 말레비치의 연장은 말라르메의 백지이며 또 그것은 뒤샹의 기성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현이 아니라 표현의 죽음이다. 그렇다면 쉬포르 쉬르파스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바면, 그것은 순수자아의 불안이다. 기체와 수분의 어느것도 아닌 수은의 불안한 상태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러한 불안은 구조주의의 등장과 하게 더욱 두드러지고 구조주의가 이들 미니멀아트의 지위를 위협했다. 그들은 이제 자기를 더이상 문제삼지 않는다. 단지, 보는 입장, 이른바 대상자체의 자기성에만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다.그런의미에서 포스트미니멀은 탈존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니멀아트가 심리적 실험에서 과학적 방법론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팝아트는 미니멀아트의 토양에서 자란 미국적 아트이다. 하나의 기성품은 먼저 그린다는 고전적인 미술행위의 종식을 의미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지만, 동시에 팝적인 사물로서의 목적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레디메이드를 방법정신으로 계승발전하려는 데서 액션패인팅이 나타나고, 반대로 레디메이드를 목적으로 바라보는데서 팝이 성립된다. 팝의 작가들이 zospel의 뉴프론티어나 케네디, 킹복사의 암살, 반전시위와 같은 시세를 배경으로 그 존재이유를 가졌다면, 이들 하이퍼 리얼리즘의 작가들은 그것의 종말, 이를테면 월남전의 악몽으로인해 모든 미국적인 이상에 대한 환멸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념적인 것, 의미에서는 모든 보수적인 세계관에 대한 반동으로서 하이퍼는 탄생되는 것이다. 하이퍼가 일체의주관성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사진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때문이다.인상파 화가나 하이퍼 작가들이 한결같이 주관성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같은 풍경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래의 것을 확대시킴으로써 일상적인 용품과 관계되었건 팝이 주관성을 배제 한다는 점에서 이미 진보적인 성격을 띤다. 팝의 작가들은 기성품을 크게 모작하여 유럽인의 낡은 문명을 거부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그 거부의 수단은 어느사이엔가, 은근히 거부의 몸짓이 아니라 긍정의 몸짓으로 수용한다. 하이퍼는 이제 모방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그대로 보게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하이퍼는 팝의 후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한다. 팝아트와는 달리 극히 억제된 것으로 극사실주의는 미국적 즉물주의의 발상, 또는 미니멀 아트의 물개성주의와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종래의 추상미술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이라는 의미와 사진 그자체와 양쪽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가들은 팝 아트의 작가들보다 대체로 한 세대쯤 젊은데 작품제작에 사진이나 슬라이드를 직접 간접으로 이용하는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 컴몰리 등과 사진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연의 풍경이나 모델만을 대상으로 하는 필립 펄스타인, 시드니 틸림 등의 두 계열로 나뉘어진다.

    극사실주의가 조각에 적용될 때는 삼차원이라고 하는 조각의 기본 요건에 따라 한층 실물에 가까워진다. 1960년대 초 에드워드루셔가 제작한 유화와 사진집이 그 선구적인 작품이다. 1972년 도큐멘타전과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전을계기로 정점을 이루었고, 시대의흐름에 대한 역행이라는 비판도 받았으나 대주에게는 어는 미술보다도 인기가 높았다. 듀안 핸슨과 존 드 안드레아의 작품의 한치의 헛갈림도 없는 충격적인 실물을 제시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1. 고잉스 (Goings, Lalph 1928 ~ /미)

    대학 졸업 무렵까지 추상표현주의 작업을 하던 랠프 고잉스는 1961-62년, 자신에게 추상회화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잡지에 실린 사진을 모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내 팝아트 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1967- 68년경부터 직접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2. 리처드 에스테스

    에스테스는 1967년부터 도심 풍경을 찍은 사진으로 작업해왔다. 거리의 상점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을 이용했던 추기 작품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내부 모습과 유리창에 반사되는 반대편 거리의 이미지들이 함께 재현되어 있기 때문에 한 화면에 두 공간의 임지가 뒤섞여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혼돈스럽기까지 했다.

    70년대 들어 그는 점차 촬영가도를 다양화하고 시야를 넓혀 공간을 확대 시켰고, 70년대 말부터는 작품의 가로 길이를 늘인 파노라마식 화면을 구사하기 시작하며, 그 첫 작품이 바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작품의 전형적인 특징인 상점 유리창의 반사이미지를 볼 수 있는 <타임즈 광장, 오후 3:53, 겨울>은 그가 즐겨 이용하는 사각寫角으로 촬영하여 공간이 하나의 소실 점을 향해 사라지는 매우 고전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3. 클로즈 (Close, Sharles 1910 ~ /미)

    클로즈는 가장 대표적인 극사실주의 작가로서 인물, 특히 얼굴 사진만을 소재로 일관하고 있다.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이 그림들은 증명사진처럼 머리 부분만 확대되어 마치 거인의 초상 같은 이미지로 상당히 압도적이며, 머리카락 한올, 모공, 솜털들과 미세한 부분을 극명하게 노출시키고 있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클로즈의 동료 미술가인 조 주커(Joe Zucker)로, 미국 중서부의 자동차 영업사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셔츠와 넥타이 차림에 머리가지 단정하게 손질하고 촬영하였고, 클로즈는 이 사진을 그대로 이용하였다.이렇게 클로즈는 인물을 그저 치밀한 묘사의 대상으로 여길뿐 클로즈는 자신의 작업을 '초상화'가 아닌 '머리'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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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사실주의 (Hyperrealism/Superrealism)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입니다. 같은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시도된 비슷한 경향의 미술을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사실적 묘사에 의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일순간 정지시켜 강조해 표현하려는 미술의 한 경향으로 '초사실주의'라는 뜻이며, 슈퍼리얼리즘, 포토리즘, 스튜디오 리얼리즘, 샤프 포커스 리얼리즘 등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주관을 적극 배격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면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대상으로 취급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캔버스에 감광제를 발라 사진을 직접 프린트한 작품도 있습니다. 사진기의 눈이 포착한 영상은 사실인 것이 확실하지만 그것도 결국 실물로부터 떨어져서 자립한 일종의 허구일 따름이며, 슈퍼리얼리즘은 세밀한 묘사, 마술적 리얼리즘 등 어느시대에나 존재하였던 극단적인 사실주의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연주의가 아니라 극도의 사실표현을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서, 사실주의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 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팝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러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를 다룰 뿐입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확대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며, 우리가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던 추악함-모발에 가려진 점 이라든가 미세한 흉터까지도 그대로 클로즈업되어, 보통인이라면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사실성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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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보레알리슴

    1960년 4월, 밀라노의 아폴리네르화랑에서 최초로 선언하여 “사회의 현실을 논쟁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다”는 뜻을 밝히고, 이어 6월 파리의 리브도로워트화랑에서 “현실은 허구를 능가한다”는 표어를 내걸고서 ‘파리―뉴욕 누보레알리슴전(展)’을 개최하였다.

    구성원은 이브 클랭,  니키 드 생팔, F.아르망, B.세자르 등 외에, 뉴욕의 네오다다이즘의 미술가들도 참가하였다. 그들은 추상표현주의에의 반동으로 현대의 도시적 현실의 제시를 노리는 일종의 반예술을 전개하였다.

    극사실주의 또는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하죠.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리얼리즘으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따라서 극사실주의는 팝 아트와 같이 매일매일의 생활, 즉 우리 눈앞에 항상 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만, 한편 팝 아트와는 달리 아주 억제된 것이어서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만 취급한다. 그러나 감정이 배제된 채 기계적으로 확대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육안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추악함, 이를테면 모발에 가려진 점이나 미세한 흉터까지도 부각되어, 보통이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현상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게 한다.

    극사실주의는 미국적인 즉물주의(卽物主義)가 낳은 미술사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종래의 추상미술과 사진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로는 작품제작에 슬라이드를 직접 ·간접으로 이용하는 C.클로스, H.캐노비츠, M.몰리 등과 사진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연의 풍경이나 모델만을 대상으로 하는 P.펄슈타인, S.틸림 등이 있다.
     
    구상주의 미술이라고 하셨는데요.

    구상은 원래 '추상'과 반대되며, 육안으로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혹시 프랑스의 신구상주의를 의미하시는 것인지요?


    누벨 피큐레이션은  (Nouvelle Figuration) (Neo Figuration) (new Figuration)이라 부를수도 있으며 정치적인 교감을 지닌  미국의 팝아트와 같은 부류에 있는 프랑스의 비유적인 회화이며 이야기 구상 회화이다.
    뉴피큐레이션이 처음 관심을 끈 시기는 1965년 (Daily mythologies)와 1964년 건축 그리고 이야기 구상 (ARC, and Narrative Figuration (Creuze Gallery)으로 신구상주의그룹은 단결및 서명을하며 운동을 전개한다.

    누벨 피큐레이션그룹은 정체되는 심상에 의하여 시간의 대표의 전통적인 문제에 대한, 영화관 및 연재 만화의 특정한 사물에 예의주시하며 시적 차원으로 이끌어 내고 이것에 유래하는 일상 생활및 신화(모랄 정치, 사회)의 장면에 그들의 관심사를 예술로 표현한다.
    발레리오 아다미 (Valerio Adami), 에로 (Erro), 질 아이오 (Gilles Aillaud), 이퀴포 코로니카 (Equipo Cronica)가 대표작가입니다.   

    극사실주의 [hyperrealism]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처럼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며, 아무 뜻없이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다루어진다.


    로베르토 베르나르디 차원 2006년
    캔버스에 유채, 19.75 x 27.5 In


    로베르토 베르나르디 비타민 물 2007년
    캔버스에 유채
    26 x 27.5 In


    로베르토 베르나르디 만남 2004년
    캔버스에 유채, 25 x 61.5 In
    개인 소장


    로베르토 베르나르디 꿈 2004년
    캔버스에 유채, 20 x 27 In
    개인 소장


    로베르토 베르나르디 나의 캐러멜들 2007년
    캔버스에 유채, 19.5 x 27.5 In


    로베르토 베르나르디 내가 좋아하는 것 2004년
    캔버스에 유채, 17 x 18 In
    개인 소장


    루치아노 벤트론 포토프시아
    캔버스에 유채, 23 x 31 in


    루치아노 벤트론 그 다음 날
    캔버스에 유채
    80 x 100 cm


    루치아노 벤트론 뜻밖의 목소리
    캔버스에 유채, 100 x 80 cm


    루치아노 벤트론 환희의 메아리
    캔버스에 유채, 100 x 80 cm


    데니스 피터슨/ 어떤 눈물도 흘리지 마세요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24 x 36 in


    데니스 피터슨/ 먼지에서 먼지로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48 x 48 in


    데니스 피터슨/ 천일 밤의 여행
    캔버스에 폴리와 유채, 20 x 60 in


    데니스 피터슨/ 헤어 스프레이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38 x 32 in


    데니스 피터슨 내가 처한 어려움이 보이지 않습니까?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37 x 29 in


    Gus Heinze
    "Caffe Roma"
    2006, acrylic on gessoed panel, 32 x 33.5


    >Gus Heinze

    "Cocktails"
    2006,acrylic on gessoed panel, 32 x 36.5


    >Gus Heinze
    "Walk to Work"
    2006, acrylic on gessoed panel, 32 x 34


    >Gus Heinze
    "57th and Madison"
    2005, acrylic on gessoed panel, 34 x 32


    >Gus Heinze
    "Early Spring"
    2002, acrylic on panel, 30 x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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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배길지기 | 작성시간 19.09.18 우와..
    • 작성자겨울앓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9.18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 작성자Annabel walter | 작성시간 19.09.19 안녕하세요 친구 제발 내 사진을 어떻게 올릴 수 있습니까? 새로운 누군가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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