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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Leonardo da Vinci / 1452 ~ 1519년 - 1

작성자유 랑|작성시간19.11.21|조회수35 목록 댓글 1

Leonardo da Vinci

    

Leonardo da Vinci / 1452 ~ 1519년  

 

Francesco Melzi - Portrait of Leonardo

Francesco Melzi (ca. 1491 - 1568/1570) was an Italian painter.

 

Monumento dedicado a Leonardo da Vinci e seus pupilos

na Piazza della Scala em Milão, obra de Pietro Magni.

 

The Refectory with the Last Supper after restoration
1498 -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The Last Supper (Italian: Il Cenacolo [il tʃeˈnaːkolo] or L'Ultima Cena [ˈlultima ˈtʃeːna])

is a late 15th-century mural painting by Leonardo da Vinci

in the refectory of the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It is one of the world's most famous paintings.

 

The Last Supper
1498
Mixed technique, 460 x 880 cm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공증인인 아버지와 하녀 사이에 태어났으나 출생 직후 아버지는 귀족 처녀와,

어머니는 도기장이와 결혼을 해버려 사생아가 된 소년은 시골 할아버지 밑에서

외롭게 자라며 자연을 유일한 벗 삼아 유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Leonardo's childhood home in Anchiano

Casa Leonardo, the house where Leonardo da Vinci is believed to have grown up.

It is situated alongside Via di Anchiano, 3km north of Vinci, Tuscany, Italy

 

소년의 아버지는 그래도 가끔씩 들러 아들을 보고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의 낙서를 보고 놀란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무 판을 내어 주며

방패를 만들어 보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얼마 후,아들이 만든 방패를 본 소년의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맙니다.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한 악룡의 형상이 살아 움직이듯, 너무도 정교하게 그려 있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수기 노트에 그때의 회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푸른 도마뱀을 잡아 악룡의 철갑을, 박쥐를 관찰하여 날개를, 자라에서는

등껍질과 발톱을, 풍뎅이에서 뿔을, 물뱀에서 비늘과 혀를 묘사해 냈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화가란,

제 뜻에 따라 아름답거나, 끔찍하거나, 우스운 형상을 이 세상으로 불러오는 존재다.

 

바로 이 소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로 여겨지는, 우리에겐 그림 `모나리자`

더 친근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입니다.

 

지방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사생아로 자라야 했던 상처 때문이었는지

(불우한 출생은 그에게 평생 걸림돌이 됩니다.) 그는, 일생 가정을 이루지 않고

방랑생활을 했는데 죽을 때까지 옆에다 두고 간직했다는 `모나리자`는 어쩌면 그의

채워지지 않은 모성애에 대한 갈증과 그리움에 대한 표현 이었는지도 모릅니다.

 

Mona Lisa (La Gioconda)
c. 1503-5
Oil on panel, 77 x 53 cm
Mus�e du Louvre, Paris

 

이탈리아가 가장 자랑하는 인물,

(그래서 로마공항의 명칭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이지요.)

그가 태어난 지 558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신비로운 인물로 남아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런데 '레오나르도' 뒤에 있는 '빈치(Vinci)'는 성()이 아니고 그가 출생한

마을 이름이라는 거 아시는지요?

 

Leonardo da Vinci's very accurate map of Imola,

created for Cesare Borgia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이름은 "빈치(Vinci)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라는 뜻이지요.

사생아였기에 성도 없이 지어진 서러운 이름인 거지요.

하지만 위대한 이름의 일부가 된 탓에 그의 이름이 회자될 적마다 함께 불려지는

빈치 마을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토록 위대한 사람을 품어 내었을까요?

  

 

 

오래 전부터 역사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토스카나 지방레오나르도 다 빈치 외에

갈릴레오 갈릴레이, 16세기 정치가 마키아벨리, 최고의 고딕 조각가 조반니

사노 작곡가 푸치니, 보케리니 등 많은 인물들을 내었는데

드레아 보첼리의 고향도 이곳 토스카나 입니다.

    

Toscana 지방

 

바로 이곳이 레오나르도가 태어난 곳으로 방패 그림에 놀란 아버지에 의해 피렌체의 유명한

화공이던 베키오 (Andrea del Verrocchio, )의 공방견습생으로 도제수업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난 14살 때까지 이곳의 자연과 벗하며 바람의 움직임, 강물의 흐름, 곤충과 식물 등

생물들을 관찰, 수집, 스케치하거나 점토로 조각을 하며 유년을 보낸 곳이지요.

    

Toscana, Chiesa Di Santa Croce.

 

12세기에 지어졌다는 고딕 스타일의 성당, Chiesa Di Santa Croce.

소년 레오나르도의 그림 재능을 아낀 신부는 그에게 당시 귀했던 종이를 구해다 주곤 했는데

레오나르도가 그림을 그려 보여주면 신부님은 그의 그림을 성당 벽에 붙여놓곤 했대요.

 

 

소박한 내부의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5각형의 세례 실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5살 생일을 맞아 세례를 받은 곳으로 성수대 뚜껑 안쪽엔 이를 기념

하기 위한 '15, April, 1452`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생년월일과 세례명이 새겨 있습니다.

 

 

성당 옆, 마을의 중심지인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는 다 빈치의 노트에 기록되어 있던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후세의 과학과 공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과 모형으로 증명해 놓은

다 빈치 박물관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참고 서적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다 빈치 도서관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처음 고안한 자전거는 앞으로만 갈 수 있고 체인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다고 해요.

    

The Vitruvian Man (c. 1485) Accademia, Venice

 

박물관 앞에는 그의 유명한 `비트루비우스 적 인체 비례도` 조형물이 서 있고

(원본은 비공개로 베니스에 있어요.)

마을의 기념품 가게 또한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념품 대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한 발명품들의 모형이나 그의 복사판 그림 등으로만 채워져 있어 어딜 가나

다 빈치를 느낄 수 있는 빈치 마을은 마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빈치 박물관 같았습니다.

해부학자, 건축가,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의상·무대디자이너, 요리사, 사상가, 엔지니어,

발명가, 지리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군사과학자, 음악가, 화가, 철학, 물리학자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뛰어났던 만능인,

 

A page showing Leonardo's study of a foetus in the womb

(c. 1510) Royal Library, Windsor Castle

Study of horse from Leonardo's journals

Royal Library, Windsor Castle

 

그가 손을 들면 이 손을 빌려 주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다재다능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그가 천재였다는 사실보다는 죽는 순간까지 지녔던 어린 아이와 같은 호기심,

자연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탐구하여 새로운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도전정신,

치밀한 장인정신일 거예요.

 

그러니 레오나르도가 유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탐구정신을 키워 주고

어린 레오나르도의 실험실이 되어 준 작지만 평화롭고 전원적인 빈치 마을은 그의 이름과

함께 불려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los Lucé in France, where Leonardo died in 1519

 

그에 대해 놀라고 그를 더 존경하게 된 건 그런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그의 작업 노트에,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기록을 했을 만큼

겸손하고 천재임을 부인한 지독한 노력가였다는 점입니다.

 

어떤 조건에서든 겸손과 감사는 천재가 아니어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https://en.wikipedia.org/wiki/Leonardo_da_Vinci

 https://commons.wikimedia.org/wiki/Leonardo_da_Vinci?uselang=k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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