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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두아르 프레르 - 가난함 속에 있는 아름다움

작성자디아니|작성시간20.07.22|조회수52 목록 댓글 0

사실주의 화가들의 주제를 보면 정치적이거나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기법이 주제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유리한 점은 분명히 있겠지요. 사실주의 화풍을 유지하면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라고 평생을 그림으로 말한 화가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에두아르 프레르 (Pierre-Édouard

Frère / 1819~1886)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프랑스어 발음으로는 프헤르가 옳다고 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불어를 배워야 할까 봅니다.

 

 

 아침 식사          The Morning Meal

 

딸만 넷인가요? 막내는 아직 엄마 무릎을 벗어 나지 못했군요. 그래도 언니들이 먹는 음식으로 손을 뻗고

있습니다. 나도 좀 먹자---. 상에 차려진 음식도 성찬은 아닙니다. 큰 수프 그릇을 가운데 두고 앉아서 먹는

소박한 아침 상입니다. 아이들 많은 집, 아침 먹는 시간은 전쟁인데 이 집은 깔끔하고 편안합니다.

 

프레르는 파리의 음악 관련 출판 업자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형 테오도르 프레르도 오리엔탈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는데 음악 관련 일을 하는 집에서 화가가 두 명이나 배출된 셈입니다. 생각해보면 음악도 미술도

다 예술이죠.

 

 그림을 보는 아이   Children Looking at Prints / 35.2cm x 26.8cm / 1855

 

확대경을 통해서 그림을 살피는 아이의 표정이 아주 의젓합니다. 의자에 올라서야 할 정도의 어린 나이인데도

표정만큼은 어느 전문가 못지 않습니다. 그 옆에 있는 엄마의 표정도 심각합니다.

아이에게 그림 보는 법을 가르치시는 중인가요? 좋은 아드님을 두셨군요! 저 나이에 저렇게 하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징징거리는데 말입니다.

 

17세가 되던 해 프레르는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합니다. 아카데믹 화가였던 폴 들라로슈 지도 아래 공부를

하는데 나중에 밀레나 장 제롬 같은 훗날의 대가들이 공부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화실의 분위기는 아주 치열

했습니다. 때문에 재주 있는 학생보다는 마음이 강한 학생이 살아 남았다는 말을 듣습니다. 화실이 아니라

정글이었던가요?

 

재미있는 이야기   A Good Story / 32.7cm x 24.1cm / 1863

 

그래서, 그 다음은?

, 그러니까, 어디 보자. 글씨가 잘 안 보이네.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놓은 동생은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숨이 넘어 가는데 책을 읽어 주는 누나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할머니처럼 몸을 창가에 기대고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는 중입니다. 그래도

동생을 위해 책을 읽어 주는 착한 누나입니다.

 

1842, 프레르는 살롱에 작품을 처음 출품했고 다음 해에도 출품을 했는데 수상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 뒤 5년간 프레르는 살롱에 출품하는 일을 중단합니다. 사람들은 이 5년 동안 프레르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크기는 크지 않았는데 아마 이 영향이었겠지요.

 

꾸중    The Reprimand / 26.5cm x 20.8cm / 1863

 

저런, 왜 혼이 났을까요?

가만히 보니 바닥에 떨어진 책이 구겨져 있습니다. 혼이 날만도 했군요. 한 손으로는 벽을 집고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는 중입니다. 한쪽 발은 계단에 걸쳤습니다. 저도 저렇게 해 보았더니 한결 편했습니다.

혹시 꾸중을 듣다가 체득한 노하우일까요?

그만 울고 책 똑바로 펴 놓아야지, 어서!

 

1847년 프레르는 파리 근처의 에쿠엥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갑니다. 그리고 평생을 그 곳에서 삽니다.

많은 사실주의 화가들이 생생한 파리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프레르는 시골 마을로 들어간 것이죠.

소박한 이웃들과 어울려 살면서 프레르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프레르는 자신의 집을 개방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놀러 오는 동네 아이들이 그의 작품 모델이

되었습니다. 집안 일을 돕는 아이, 동생을 돌보는 아이,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빨래 하는 날   Washing Day

 

빨래하는 엄마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아직은 키가 한참 모자랍니다. 까치발을 하고서도 간신히 빨래 통 안을

드려다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엄마도 어린 딸의 마음을 알았는지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창 밖에서 들어 온

햇빛이 엄마와 딸을 포근하게 안았습니다. 요즘은 세탁기 돌리는 법을 가르쳐야 되겠지요?

 

 

이런 가난한 아이들의 따듯한 모습은 18세기 프랑스의 장 시멩온 샤르뎅 같은 화가들에게 기원을 두고

있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플랑드르 화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죠. 당시 하층 계급에 대한

관심은 사회 전체의 주요 관심이었기 프레르 뿐만 아니라 많은 화가들도 관심을 가졌던 분야이기도 합니다.

 

 고양이 밥 주기    Feeding the Kitten

 

밥을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아기 고양이가 안타까웠는지 슬며시 스푼에 음식을 담아 고양이 앞에 내려

놓았습니다. 아이의 눈에 새끼 고양이는 친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음식도 같이 먹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요즘 엄마들이 보면 기겁할 일입니다.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아이였을 때가 있었는데, 자라면서 뭘 먹고

이렇게 된거죠?

 

프레르의 접근 방법은 밀레나 부르통 같은 화가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삭을 줍거나 거리에서 넝마를 입고

구걸을 하는 구걸꾼을 그렸지만 프레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간단 명료하게 묘사했습니다. 때문에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동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박하고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어린 아이의 첫 걸음   Baby's First Steps / 45.7cm x 37.4cm / 1876

 

어린 아이의 첫 발을 떼는 모습을 그린 화가는 꽤 많습니다. 두 발로 세상을 딛고 걷는다는 것이 그만큼

경이롭고 기쁜 일이기 때문이죠. 아직은 양 손을 벽과 의자 팔걸이에 맡겼지만 조금 앞에 있는 엄마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손을 떼어야겠지요. 망설이는 아이의 시선은 온통 엄마의 손에 닿아 있습니다.

저렇게 어렵게 두 발로 섰는데 커가면서 왜 제대로 못 걷는 거죠? 나이가 들었어도 똑바로 걷는 연습을

시키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옥 말고요.

 

프레르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프랑스의 알려 지지 않은 지방으로 자주 여행을 했습니다. 농부 옷을 입고

들판과 농가들을 걸으면서 농부들과 함께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사람들 속에 녹아 들어가면서 그의 진실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기상      Getting Up / 26.3cm x 20.6cm / 1878

 

제 맘대로 제목을 붙인다면 혼자서도 잘해요입니다. 침대에서 일어난 아이가 혼자 양말을 신고 있습니다.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아이 부모가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어떻게 아이를 키우셨어요?

혹시라도 셋째를 낳게 되면 저렇게 키워 봐야지 하는 결심을 했습니다.

 

1850년에 살롱에 출품한 작품으로 프레르는 처음 3등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은메달을 수상

했고 1855년 세계 박람회에서도 3등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1855년이 프레르에게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였습니다.

 

 구멍이 났구나   Worn Through / 46cm x 37.4cm / 1882

 

학교 가는 아이의 스타킹에 구멍이 난 것을 본 할머니는 바로 실과 바늘을 들었습니다. 사는 것이 녹녹하지

않은 살림에 새 바느질로 헤진 곳을 꿰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도 할머니의 손길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할머니 조심하세요하는 듯 합니다. 잠시 후면 할머니의 사랑이 헤진 스타킹 구멍 뿐만 아니라 아이

의 빈 마음도 채우겠지요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은 프레르가 그린 아이들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프레르의 작품을 두고 렘브란트의

색상과 워드워즈의 깊이, 레이놀즈의 우아함, 안젤리코의 성스러움이 혼합된 작품이라고 소개를 했는데 당시

영국에서 러스킨이 가지고 있던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 것은 프레르에 대한 최대의 찬사였습니다.

 

형제애   Brotherly Love / 1885

 

가난한 집 맏이는 일이 많습니다. 바닥에 던져 놓은 가방을 보면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동생들을 재우는

일을 맡았던 모양입니다. 한 손으로는 막내의 요람을 흔들고 있고 또 한 손으로는 자신만큼 큰 동생을 안아

재우고 있습니다. 입을 보니 자장가라도 불러 주는 것 같습니다. 먼 훗날까지 맏이는 동생들의 든든한

되겠지요. 참 좋은 형이고 오빠군요. 그리고 -- 저도 맏이입니다.

 

당시 프랑스 보다는 영국이 부유했고 때문에 프랑스 화가들은 영국 후원자들이 필요했는데 프레르의 경우

러스킨의 극찬에 가까운 평으로 영국에서의 성공이 보장되었습니다. 프레르의 작품이 영국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말할 것 도 없고 나중에는 그의 작품을 따르는 많은 영국 화가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진실하면

언젠가는 세상이 반드시 알아 주는 것 맞죠?

 

난로에 불을 붙이기   Lighting the Stove / 46cm x 38cm / 1886

 

엄마가 잔 가지를 난로에 넣고 불을 붙이는 동안에도 여자 아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고 사내 아이는

난로에 손을 올려 놓았습니다. 어지간히 추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화면은 차가워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색상이 따뜻해서 일까요? 참 이상하죠 ---, 이 작품에도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프레르 작품 속의 성인 남자들은 다 어디엘 간 겁니까?

 

곧 그의 작품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섬세하고 진실한 일상의 모습들, 특히 아이들의 모습이

대서양을 가운데 둔 영국과 미국의 관객들을 사로 잡았습니다. 크기가 작은 그의 작품은 집에 걸어 놓기

좋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어린 뜨개쟁이   Young Knitter

 

뜨개쟁이란 말이 있습니까? 언제가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써 봤는데 어감이 나쁘지는 않군요. 손녀를 앞에

앉혀 놓고 할머니는 뜨개질 강의가 한참입니다. 손을 잡아주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혹시라도 바늘에 손을

다칠까 봐 걱정이 가득 어려 있습니다. 아이의 표정도 진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웬만해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 중 하나이지만 늘 만나고 싶은 풍경이기도 합니다.

 

1868년부터 1885년까지 정기적으로 런던의 로얄 아카데미에 작품이 전시되면서 그의 작품에 대하 수요는

더욱 늘어났습니다. 또 그가 살던 에쿠엥에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프레르는 등대 같은

존재였죠. 그 젊은 화가들 중에는 지난 번 소개한 헨리 베이컨도 있었습니다.

 

유년 생도   Young Soldiers / 61cm x 81.3cm / 1889

 

유년 사관학교의 간식 시간입니다. 아무리 사관 생도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생도 대장쯤 되는

아이가 물 당번인 아이에게 물을 가져 오라고 하는 모습도 보이고 한 쪽에서는 총을 모아 놓는 사총을 하는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허겁지겁 달려 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풀 밭에 아예 누워 버린 녀석도 보입니다.

프레르의 그림 중에서 가장 활기찬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레르의 따뜻한 인간성은 이 때도 발휘되었습니다. 그림을 구입하는 화상들에게 제자들의 작품을 선전하고

제자들과는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제자들이 파리나 런던에 정착하면 자주 찾아가서 그들을 격려

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1886년 전시회를 끝으로 40년을 살았던 에쿠엥에서 67세로 세상을 떠 납니다.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아들도 풍속화와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가 됩니다.

 

마을 길    Village street

 

프레르를 교감예술 (Sympathetic Art)의 리더라고 합니다. 교감 예술이라는 말이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교감일 수 도 있겠지요. 그가 가난하지만 긍정적인 아이들을

묘사한 이유 중의 하나를 들어 보면 그는 화가이기 전에 좋은 사회 운동가가 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하류 계급의 아이들이 작품 속 아이들의 행동을 따른다면 바람직한 사회 구성원과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

동의합니다. 프레르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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