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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병종의 시화기행] 완벽 추구한 ‘붓의 노동자’… 그림에 묻혀 살다 (36) 성실한 화가 구스타프 모로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2.01.16|조회수15 목록 댓글 0

[김병종의 시화기행] 완벽 추구한 ‘붓의 노동자’… 그림에 묻혀 살다 (36) 성실한 화가 구스타프 모로

 

문화일보 2020년 06월 23일(火)

▲ 교수화가 구스타프 모로의 망중한, 39.5×54.5㎝, 종이와 먹과 채색, 2020.

■ (36) 성실한 화가 구스타프 모로

미술관이 된 집… 삶 자취 가득
정원도 없고 넓고 텅 빈 실내만
들어오면 나가기 힘든 미로같아
스스로 유배… 그림에만 몰두

화가·교육자 두 가지 길 성공
판타지에 역사 버무려 작품화
극사실적 묘사·채색 돋보여


나는 미술대학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학생들과 함께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르쳤다기보다는 그들의 반짝이고 도발적인 상상력을 구경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지금도 석·박사 과정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세월이 깊어 갈수록 마음 저 밑바닥에서 고개를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림이란 게 애초에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긴 할까 하는 생각. 구스타프 모로, 화가와 교육자의 길을 모두 잘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이는 성공적으로 이 두 가지를 해내었다. 좋은 예술학교 선생이란 언어보다는 실천으로써의 삶을 보여주는 일. 그는 제자들에게 삶으로 자신의 성실성과 탐구 정신 그리고 화업 일생을 보여준다. 바로 그런 면에서 좋은 스승이었다. 두 부류의 화가가 있다.

 

한쪽은 체질로서의 화가. 그는 주로 자신의 내재적 열정과 상상력을 ‘몸’으로 풀어낸다. 피카소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다른 한 부류는 그림으로 생각을 구축한다.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 조르주 브라크를 필두로 하는 미술가군이 여기에 속한다. 그들은 ‘시각’보다는 ‘생각과 관념’을 중시해 손으로 풀어내는 ‘표현적’ 요소를 최대한 억제하려고 한다. 모로는, 내 나름의 시각이지만 작품의 성향이 양자를 겸비한 화가가 아닐까 싶다.

사실 비가 오는 날 우산 받쳐 들고 그의 미술관을 찾아가서 드로잉, 판화, 유화 등 방대한 작품을 직접 보기까지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세상의 미술관들에 걸려있는 그의 작품은 한두 점씩에 불과했고 내 머릿속에서 그의 존재감은 에클 보자르의 좋은 미술 교수 정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삶이 통째로 담긴 듯한 그의 집이자 미술관에 가서야 화가 모로, 교육자 모로의 전모를 볼 수 있게 됐다.

 

그간 미술관 순례를 꽤 많이 했지만 모로 미술관처럼 한 예술가의 삶이 통째로 담긴 공간을 체험하기는 쉽지 않았다. 예컨대 전시를 위한 전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 삶은 뒤로 숨고 작품만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모로 미술관은 그의 육신만이 빠져나간 듯 삶의 자취와 흔적들로 가득하다.

구스타프 모로 하면 미술사에서는 상징주의 작가로 한두 줄 일별하고 지나간다. 그런데 미술에서 상징주의란 말처럼 애매한 표현도 없다. 도대체 뭘 상징한다는 것인가. 그 상징의 실체는 무엇인가가 흐릿하고 애매하다. 내가 보기에 두루뭉술하게 상징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화가 자신이 무척 불편해했을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은 상징보다는 서사적 리얼리즘에 가까웠다. 신화와 판타지 역사와 사실이 버무려진 세계였다.

거기에 한결같이 극사실적 묘사와 채색을 취하고 있어서 모르긴 해도 제작 자체가 시간과의 싸움이었을 것 같다. 작업실과 살림집을 연결하는 중앙 통로는 어지러울 정도로 위대하게 돌아가는 나선형 계단(사진)이었다. 그는 당시로는 드물게 장수한 화가(1826∼1898)였는데 만년의 그가 저 가파르고 좁은 나선형 계단들을 어떻게 오르내렸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어쩌면 꼬장꼬장한 성격에 마른 체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가운을 입고 세 층 높이의 그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오르내리는 미술 교수 모로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이 건물엔 단 한 평의 정원도 없다. 따라서 풀과 나무도 없다. 입구는 비좁고 실내는 광활하다. 무려 세 개 층을 오르내리는 통로는 비상구 같은 중앙의 나선형 계단이 유일하다. 들어오면 나가기 힘든 구조이다.

 

마치 입체미술의 미술 속 미로 같은 공간인데, 화가는 이 공간에 스스로를 유배시켰던 듯하다. 산책하는 한 조각의 정원도 허용함이 없이 일단 이 공간에 들어오면 식사와 독서, 잠과 작업이 동시적으로 그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그만의 세계. 여기서 그는 강의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책 읽기와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몰입했으리라.

모로 미술관에는 거의 관객이 없다. 몇 시간을 머물렀지만 겨우 한두 사람이다. 비 오는 날씨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미술사에서 그의 이름은 상당 부분 가려있거나 건너뛰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그러나 오늘날 그 이름이 높건 말건, 그가 전 생애를 걸고 삶과 예술에 자신을 바쳤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자기 콘텐츠가 약할수록, 빨대를 밖에 꽂고 호흡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내적 충만함보다 바깥으로부터의 환호와 박수에 연연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창조의 샘물을 마시며 밖이 아닌 이 심리적 내재공간에서 그림의 물길을 끌어올린 사람이었다.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상징미술의 선구자’ 모로

엄청난 독서광… 글쓰기 재능도
신화·종교·사회 서사적 구조에
낭만적 상상력 더한 작품 추구


프랑스 화가 구스타프 모로(자화상)는 흔히들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분류한다. 전업 예술가들이 대부분인 시절에 에콜 보자르의 교수를 지내면서 화가로서의 인생도 함께 꽃피워냈다. 엄청난 독서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글쓰기에도 능숙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왕성한 독서력을 기반으로 신화와 역사 종교와 사회의 서사적 구조에 낭만적 상상력을 곁들인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파리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그의 생가 겸 작업실에는 엄청난 대작에서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이 소장돼 있다. 특히 ‘이야기그림’ 연작의 세필 드로잉과 판화 연작들이 인기를 끈다. 작업실에는 그가 사용했던 화구들이 그대로 전시돼 있는데 특히 세밀화를 많이 그려 물감 묻은 세필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미술의 칸트라고 할 만큼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 강의와 자신의 작업을 철저히 분리해 작가와 교수의 길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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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나홀로 테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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