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 이야기를 쓰면서 화가의 국적과 관련된 특이한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오래 전 화가들,
예를 들면 16,7세기 화가들의 경우 당시와 지금의 국가 영토가 다르기 때문에 출생지에 따라 지금의 국가
출신으로 표기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아일랜드계 초상화가라는 말을 듣는 제임스 셰넌
(Sir James Jebusa Shannon /1862 – 1923)은 그 경우가 좀 특이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셰넌을 어느 나라
화가로 표기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봄 날에 In the Spring Time / 127cm x 101.6cm / 1896
가슴 두근거리는 장면인가 하고 드려다 봤더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뒤에서 여인을 끌어안다시피 한 남자의 입이 여인의 귓가에 닿았습니다. 표정을 보니 간절한 고백이 흘러
나오는 것 같은데 여인의 눈빛은 아주 차분합니다. 두 손을 잡은 남자의 자세는 감정의 자세이지만 손을 뺨에
대고 있는 여인의 자세는 이성의 표현입니다. 작은 시내를 끼고 있는 꽃나무 속, 남자의 마음은 화사하게
피고 있는데 어쩌자고 여인은 한 발 물러서는 자세일까요? 봄은 여인들의 계절이라는 말 우리 나라에만
유효한 것일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꽃 나무 아래에서 고백한다고 다 되는 줄 알았어?
남자에게 해 주고 싶은 말입니다.
셰넌은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덟 살 되던 해 셰넌의 가족들이 캐나다
온타리오 지역으로 이사를 가 그 곳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셰넌은 그 지역의 화가 윌리엄 라이트로부터
드로잉을 배웠는데 어려서부터 미술에 대한 재능이 뛰어 났다고 합니다. 이 것을 알아 본 셰넌의 아버지는
아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낼 결심을 합니다.
어린 소녀의 초상화 Portrait of a Young Girl / 43.18cm x 35.56cm / 1890
셰넌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작품의 보관 상태가 나빠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두운 배경과
인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소녀의 얼굴이 신비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커다란 눈망울과 도톰한 입술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어린 아이라기 보다는 성숙함에 더 가깝습니다. young이라는 단어를 ‘어린’이라는 말로
번역해서 그런 것인가 싶어 ‘젊은’이라는 말로 대체해 봤더니 이번에는 너무 어려 보입니다. 가끔은 언어가
상상을 구속할 때가 있지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그림을 보자고 하면서도 머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개념을 부수기가 쉽지 않습니다. 초상화를 보다가 참 별 생각을 다합니다.
1878년, 열 여섯 살의 나이로 셰넌은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오늘날 왕립미술대학의 전신인 사우스
켄싱턴 미술학교에 입학, 에드워드 포인터로부터 드로잉과 회화를 배우는데, 스승인 포인터는 역사와 신화를
그린 작품으로 이름을 떨친 화가였습니다. 나중에 기사 작위를 받았는데 제자였던 셰넌도 기사 작위를
받았으니까 사제가 화가로서 영광을 누린 것인지요. 포인터의 작품도 기회가 되면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이리스 초상화 Portrait of Iris / 205.74cm x 105.41cm / 1891
아이리스는 영어 철자만 놓고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 여신의 이름 이리스와 같습니다. 붓꽃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고 여인들의 이름으로도 자주 쓰이죠. 그렇다면 작품 속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 집니다.
여신 아이리스는 무지개 색 옷을 입고 있다고 하니까 그림 속 여인의 이름이 아이리스 아닐까요?
손에 든 것도 푸른 붓꽃이고 보면 여러 개의 아이리스가 그림에 등장하는 셈입니다. 여인의 눈빛이 아주
강렬합니다. 검은 숲을 배경으로 서 있는 포즈도 당당합니다. 여인의 머리에 올린 손의 자세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대부분 수직으로 달리는 선들 가운데 옆으로 뻗은 여인의 팔이 화면에 변화를 주면서 생동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차가운 느낌입니다. 만나면 인사 정도나 나누지 커피를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그림 속 여인도 저를 그렇게 보겠지만요.
3년간의 공부가 끝날 무렵, 영국에 있는 모든 미술학교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연례 대회에서 셰넌은 출품한
초상화로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즉시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두 점의 초상화 제작 의뢰를 받게 됩니다.
원래 셰넌은 공부가 끝나고 나면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뜻하지 않은 영예와 성공이
그의 몸을 런던에 주저 앉혔습니다. 셰넌이 포인터의 최고 제자가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죠.
정글 이야기 Jungle Story / 87cm x 113.7cm / 1895
엄마가 읽어 주는 이야기가 드디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입니다. 턱을 괴고 있는 아이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 보다는 귀로 듣는 것이 상상의 정도를 더 키우죠. 가운데 아이는
이미 상상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들어 간 모습입니다. 눈은 커질 대로 커졌고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두근거리는 심장의 움직임이 그대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커지자 상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1881년과 1882년 여왕으로부터 주문 받은 초상화가 차례로 로얄 아카데미에 전시되었습니다. 셰넌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초상화 주문이 줄을 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배를 타고 온지 4년 만에,
만 스무 살 청년이 거둔 성과였습니다. 1880년 중반, 셰넌은 동료였던 존 싱어 서전트와 함께 영국 초상화
분야를 평정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었습니다.
엄마와 딸 (세넌부인과 키티) Mother and Child(Lady Shannon and Kitty) / 1900~10
아이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떤 장면인지 아이의 눈이
커졌습니다. 아이의 표정과 자세가 마치 무슨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혹시 무서운 장면을 떠 올리고
있는 걸까요? 손 끝마다 붉은 색이 더해져서 느낌이 더욱 그렇습니다. 혹시 봉숭아 물을 들인 걸까요?
외국에서도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올리는지 알 수 없으니 뭐라고 단정지을 수 가 없군요. 그렇지 않다면
손가락의 빨간색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림을 봐야 하는데 자꾸 손가락에 신경이 쓰입니다.
언덕 위의 셰넌 부인과 키티 On the Dunes Lady Shannon and Kitty
1886년, 셰넌은 플로렌스와 결혼을 하고 다음 해에 딸 키티를 얻습니다. 그는 이 두 모녀를 모델로 하여
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평론가의 말을 따르면 공식적인 작품보다는 모녀를 그린 비공식적인 작품에서 셰넌의
진정한 예술적 기질이 더 잘 보인다고 합니다. 당연하지요, 아내와 딸을 그림으로 옮기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만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아마, 낙원을 걷는 기분이겠지요.
바이올렛 양 Lady Violet / c.1900
셰넌의 후원자인 바이올렛의 초상화입니다. 앉은 자세로 봐서는 대상을 앞에 놓고 스케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상을 향해 위로 치켜 뜬 눈과 꽉 다문 입술을 보면 아주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입니다.
자세도 아주 단정합니다. 우리의 전통 초상화는 그 사람의 내면 기질을 표현했다고 하지요. 서양 화가들의
초상화에도 그 사람의 기질을 포함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곱게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묘사한 것이죠.
보라색이 주는 신비한 분위기도 일조를 하고 있군요. 실제로도 이런 모습이었겠지만 자신의 최대 후원자에
대한 고마운 감정도 분명 어딘가에는 담겨 있겠지요.
1887년 사냥복장을 한 Henry Vigne (누굴까 하고 웹을 뒤적거려 봤지만 이 사람이다 싶은 내용은 찾지를
못했습니다. 당대에 사냥과 관련 된 기사에 그의 이름이 보이긴 합니다)의 초상화가 로얄 아카데미에 전시
되면서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둡니다. 이 작품은 그 후 파리와 베를린, 비엔나의 전시회에서 셰넌에게 메달을
안겨준 작품이 됩니다. 이 무렵 나중에 그랜비 후작 부인이 되는 바이올렛 매너스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그의
명성은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뜨개질하는 노라 워드와 키티 셰넌
Knitting, Nora Ward and Kitty Shannon / 92.71cm x 70.49cm / c.1900~1905
어렸을 때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신기했습니다. 저녁이면 실 뭉치를 무릎에 놓고
뜨개질을 하셨는데 며칠이면 동생 조끼가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배워보겠다고 말씀 드리면 ‘사내 아이가
하면 고추 떨어진다’라고 하셨죠. 지금 생각하면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한 번 배워 볼 걸 그랬습니다.
그랬다면 배우는 내내 마치 그림 속 소녀의 얼굴처럼 저도 환하게 빛이 났겠지요.
1892년, 셰넌은 웨스트 런던에 꽤 근사한 화실을 구입했는데 죽을 때까지 이 곳에서 살았습니다.
1904년 그는 아내와 딸을 대동하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을 찾습니다. 기록만 놓고 본다면 여덟 살 때 떠난
고향을 찾은 것이죠. 뉴욕에서 개인전을 포함 몇 번의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그 후로도 세 번 더 미국을
찾습니다. 나이 들면 자신이 태어났던 곳이 그리워지는데 셰넌도 그런 기분이었을까 물어 보고 싶습니다.
꽃 파는 소녀 The Flower Girl / 1900
소녀라기 보다는 꽃 파는 여인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꽃 바구니를 팔에 낀 여인은 품에 안은 아기의 손을
잡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엄마의 모습입니다. 여인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 때문이지요. 나무 그늘 밑, 잎사귀
사이로 들어 온 햇빛들이 여인의 얼굴과 아기의 몸 이 곳 저 곳에 얼룩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르누와르 작품에 이런 묘사가 자주 보였죠. 썩은 살 같다고 당시 평론가들은 르누와르의 작품을 비난했지만
그 ‘얼룩’ 때문에 작품이 얼마나 생생해졌는지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요? 고단해 보이는 여인의 얼굴과 달리
아이의 눈은 아주 초롱초롱합니다. 힘들어도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 눈빛 때문입니다.
1887년 로얄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된 셰넌은 1909년, 정회원이 됩니다. 영국에서 화가로서의 영예는 다
누린 것이죠.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예순이 되던 해 영국 왕실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주기로 합니다.
단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셰넌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기사 작위를 받습니다. 이제 제임스
셰넌 경이 된 것이죠. 그리고 그 다음 해 예순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미카엘 축일 Michealmas /113cm x 80cm
천주교 신자들을 잘 알고 계시겠지만 9월 29일은 대천사장 미카엘 축일 입니다. 같은 천사인 가브리엘과
라파엘 축일도 이 날입니다. (제 세례명이 라파엘입니다^^) 다른 성인들과는 달리 천사들은 축일 날짜를 지정
하기가 어려웠겠지요. 기록을 참조하면 예전부터 가을 추수에 임박해서 천사 축일을 정해놓고 축제를
즐겼다고 합니다. 가을은 거두어 들이는 시기이니 모든 것이 넉넉할 때입니다. 꽃 한 다발과 노랗게 익은
과일을 든 소녀가 혹시 축제에 참여하러 가는 미카엘 천사의 모습 아닐까 싶습니다. 날개가 없다고요?
날개가 있어야만 천사인가요 --
셰넌의 작품이 인기를 끌었던 시대는 빅토리아 여왕과 그 뒤 에드워드 왕 시대였습니다. 소위 ‘벨 에포크’
시절이었죠. 그가 당시 런던의 초상화계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 기술
때문이었습니다. 근대 프랑스 화가들의 기법처럼 거친 붓 칠과 함께 18세기 아카데믹 화가들의 구성 기법을
접목시킨 그의 작품은 화려한 색상과 안정적인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들 때 세상은
찬사를 보냅니다.
히워드 벨씨의 딸 로나와 도로시 Lorna and Dorothy Bell, Daughters of W.Heward Bell, Esq.
검은 색 옷을 입은 여인은 심사가 아주 불편합니다. 자신도 멋을 냈다고는 했지만 눈부신 흰 옷의 동생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겠지요. 누구의 얼굴이 더 예쁜가는 사람들마다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의 무릎 위에 앉은 강아지도 같은 생각인
모양입니다. 표정도 자주 하면 버릇이 되고 흔적으로 남습니다. 가끔 거울을 보면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지만
미간 사이에 생긴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모진 시대를 넘어 온 흔적치고는 참 고약하게 남았습니다.
셰넌은 로얄 아카데미를 비롯 여러 화랑에 작품을 꾸준하게 전시했습니다. 꾸준하게 전시회에 출품한 화가들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떠 오르는 생각은 성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생활비를
위해서 일 수 있지만요.
이쯤에서 셰넌의 국적을 어디로 해야 할까요? 아일랜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으니 아일랜드라고 우길 수 도
있겠군요. 그러나 태어난 곳은 미국이고 자란 곳은 캐나다였죠. 생애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냈고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미국 국적을 포기 했다고는 하지만, 어느 나라 화가라고 표기 되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