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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낳은 독일 베츨라르 탐방기

작성자차이터|작성시간12.06.30|조회수816 목록 댓글 3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낳은 중서부독일의 작은 도시 베츨라르를 찾았다. 지금은 인구 5만 명 정도의 소도시인 베츨라르는 온화한 기후 덕분에 약 5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왔으며, 14세기 중반에 이미 인구 6천 명에 이를 정도로 독일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1689년에는 신성로마제국 독일의 제국최고법원이 위치함으로써 1806년 독일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제국도시로서의 위상을 지켜왔다. 괴테가 17725월부터 9월까지 이곳 제국최고법원에서 수습법관으로 일하면서 샬롯테 부프라는 여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소재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함으로써 이 도시는 더 유명해졌다.

 

잘 알려져 있듯 법률학을 전공한 괴테는 스물세 살이던 1772년 법관 연수생으로 이 작은 도시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네 살 아래인 샬롯테 부프라는 여인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샬롯테 부프는 이미 약혼한 상태로 괴테가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이었다. 괴테는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애정과 질투와 번민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떠난다. 마침 대학에서 함께 법률학을 공부했던 예루잘렘이라는 친구가 그 무렵 유부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고민하다가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괴테는 샬롯테 부프와의 이별의 아픔과 친구 예루잘렘의 자살사건을 연결하여 편지형식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한다. 따라서 당연히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괴테 자신이며, 베르테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인 롯테는 샬롯테 부프인 것이다.

 

나는 베츨라르로 향하면서 샬롯테 부프가 살았던 집과 그녀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베츨라르의 구시가지 광장

 

 

그러나 베츨라르에 도착하자마자 적잖은 의외의 상황을 맞았다. 샬롯테 부프의 집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시내버스 운전기사도, 거리의 주민도 한결 같이 모르겠다며 구시가지에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만을 할 뿐이었다. 그래서 일단 구시가지로 들어서서 가까스로 롯테하우스라는 작은 팻말의 이정표를 찾아 골목을 헤맨 끝에 간신히 그녀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베츨라르의 구시가지 골목

 

 

처음부터 롯테하우스 대신 샬롯테 부프하우스로 물어본 내가 잘못이었을까? 하지만 롯테든 샬롯테 부프든 적어도 그 마을 주민이라면 대문호 괴테의 여인이자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탄생역을 한 역사적 여인 정도는 알고 있어야 당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적잖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샬롯테 부프는 고관대작의 부인도 아니었고 명성이 자자한 여류명사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여인이었을 뿐이므로 후세인들의 관심을 크게 사지 못하는 것도 조금은 수긍할 만했다.

어쨌든 힘겹게나마 그녀가 살았던 집을 찾아 다행이었다. 집은 골목을 타고 올라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여 고풍스런 성당과 마을골목이 내려다보였다.

 

'롯테하우스' 입구

 

 

짙은 회색 지붕의 2층 건물은 낡아서 무척 허름해보였다. 출입문은 잠겨있어 아쉽게도 내부는 구경할 수 없었다. 맞은편에 새로 지은 건물은 그녀에 관한 자료를 모아놓은 박물관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찾았을 때는 문이 닫혀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바깥에서만 둘러보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그녀의 집 외벽에는 그녀의 생가라는 문구가 새겨진 작은 동판이 박혀있을 뿐 다른 어떤 안내문도 보이지 않아 조금 씁쓸했다.

  

샬롯테 부프가 태어나 살았던 집인 '롯테하우스' 외벽에 박혀있는 안내동판

 

  

'롯테하우스' 전경

 

 

높은 곳에 있는 '롯테하우스'에서 내려다보이는 고풍스런 성당 모습

 

 

샬롯테 부프의 집을 둘러보고 골목을 내려오면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예루잘렘하우스라는 이정표팻말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유부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권총자살을 한 예루잘렘이 살던 집이란 말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이정표를 따라 찾았지만 그 집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골목을 돌다가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어느 곱게 늙은 할아버지를 만나 손수 예루잘렘하우스까지 길안내를 해주시는 할아버지 덕분에 작은 광장 모퉁이에 있는 그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꽤 박식하신 할아버지께서는 그 집까지 안내해주시는 동안 괴테가 이곳에서 불과 4, 5개월밖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과 지금 찾아가는 집이 바로 권총으로 자살한 예루잘렘이 살았던 집이며, 괴테를 좋아한다면 그가 오래 머물었던 바이마르 관광을 해보라는 등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예루잘렘이 살던 집은 빗살의 나무가 이리저리 둘러쳐진 전형적인 중부독일의 고전건축양식의 4층 건물이었는데, 외벽에 예루잘렘이 이곳에서 17721030일에 죽었다는 간단한 문구의 동판이 새겨있었다. 지금은 시민들이 거주하는 개인 주택이어서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예루잘렘이 권총으로 자살한 '예루잘렘하우스' 전경

 

 

 

 

'예루잘렘하우스' 정면 벽에 박힌 "이곳에서 예루잘렘이 1772년 10월 30일에 사망했다"는 내용의 동판

 

 

괴테가 어떤 집에 살았는지도 궁금했지만 그것은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베츨라르에는 아기자기한 골목 곳곳에 괴테의 체취가 배어있음에 틀림없는 듯했다. 또한 괴테가 슬픈 사랑을 한 여인 샬롯테 부프의 집이 있었다. 그리고 괴테의 친구이자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의 권총자살이라는 소재를 제공한 예루잘렘이 삶을 마감했던 집이 있었다. 그러니 이 아름답고 작은 도시 베츨라르야말로 만인에게 사랑받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벽하게 탄생시킨 아름답고도 애절한 사랑의 도시가 아닐까!

  

베츨라르 구시가지의 오래 된 성당

 

 

 

베츨라르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잇는 고풍스런 돌다리

 

 

베츨라르는 괴테와 그의 여인을 떠올리고 그의 소설을 음미하며 문학기행을 하기에도 좋지만 작고 아름다운 도시 자체를 여유롭게 거닐면서 상큼하게 반나절쯤의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베츨라르까지는 기차로 1시간 정도 소요되며,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베츨라르역에 내려서는 바로 옆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10분 내에 도달하는 구시가입구에서 내려 길을 건너 구시가로 들어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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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어깨에 엔진 | 작성시간 12.07.0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쫓은 문학기행이셨군요~ 글과 사진 잘 읽고 봤습니다~ 전 괴테의 흔적을 쫓아 이탈리아 기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지 10년이 흘러버렸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상상력이 더 많이 필요할꺼 같아요~^^
  • 작성자파리 전망좋은 방 | 작성시간 12.07.01 괴테의 흔적이 많은 곳에 있지만 그의 대표작의 실제 무대가 된 곳은 더욱 의미가 있을것 같아요. ^^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
  • 작성자카리스마 | 작성시간 12.07.15 선생님 덕분에 슬픈사랑이 담긴 대문호 괴테의 애인의 생가랑 사진 잘 보앗습니다.
    저는 4월에 프랑크푸르트갔을때 뢰머광장을 보고 괴테생가을 찾을려고 이골목 저골목을 헤메었는데 결국 괴테생가는 못찿고 괴테박물관인가?
    건물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온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괴테라고 부르는데 독일어로는 고우테가 해야 맞는발음인듯 하였습니다.
    아무튼선생님 덕분에 괴테의 슬픈사랑이야기 잘 알게되엇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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