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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스페인 여행 6 (2014.1.9 ~1.21) / 세비야 대성당

작성자무명시대|작성시간14.02.13|조회수2,159 목록 댓글 15

 

모로코, 스페인 여행(6)

 

 

 

네째날(2)

세비야 대성당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Jan. 2014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투어를 마치고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이 가까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다시 하늘이 무겁게 가라 앉더니 비가 내리고 스산해진다. 나란히 줄지어 가던 일행들이 비를 피해 흩어지고 덩달아 사진도 자꾸만 어두워진다. 초점도 제멋대로, 각도도 비뚤비뚤,,,

 

10시 30분, 대성당 입장시간이 11시니까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잠시 비를 피해 인근 건물로 들어가 수습을 하자.        

 

 

 

세비야 대성당 광장의 멋진 현대식 트램

 

 

대성당 앞 거리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유일하게 다니는 교통수단은 트램과 청소하는 차량 정도 뿐. 

비가 내리는 월요일 오전이지만 광장 바로 앞이 트램 정차장인데다 대성당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주변에는 제법 많은 인파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이어서 분위기는 쾌적하고 평온하다. 거리를 오가는 트램은 빨간색이 아니다. 노란색도 아니다. 아쉽지만 차갑고 스마트한 도시형 은색이다.  

 

 

 

전통과 현대식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대성당 앞의 관광마차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한 느낌을 준다. 덥수룩한 마부,  앞뒤 크기가 다른 산뜻한 진노랑 휠을 채운 바퀴, 중세풍의 검은색 마차 위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쌍의 관광객이 시내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며 카메라를 향해 환한 미소를 보내주는데  따그닥거리는 상큼한 금속성 말발굽소리가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와 정확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때마침 다가오는 도시형 트램에서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의 오래된 도심에는 그야말로 새빨간 프라하의 그 전차가  있어야 분위기가 산다. 비가 내리는 날의 빨간색 전차! 무드는 여자들만의 전용이 아니다.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 

세계 세번째라는 명성에 부족함이 없다. 500년 전, 한 세기 이상에 걸쳐(1402년부터 1519년까지)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부분적으로 신고딕양식이 가미되었다. 성당 내부는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주를 이룬다. 1987년 성당 앞에 있는 세비야 또 하나의 유적 "알카사르 궁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백 년을 이슬람 문화가 지배했던 도시, 세비야. 

스페인 남부지역의 많은 성당들과 건축물들이 그러하듯이 이 성당도 원래 12세기 북아프리카 이슬람 알모아드 왕조시대에 지은 직사각형 모스크였다. 1236년 무어인들로부터 코르도바를 회복한 페르난도 왕에 의해 1248년 수복된 이후 로마시대부터 이 지역 중심도시였던 세비야에는 과달키비르 강을 따라 선박들이 몰려와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가 융성해지고 사람들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큰 성당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변화에 따라 이슬람 모스크는 15세기에 들어 100여 년에 걸쳐 카톨릭 성당으로 개축된 것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중세 고딕양식의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표적인 건물이다. 하지만 원래 모스크였던 곳을 성당으로 개축하였기에 무어인들의 유산인 이슬람 건축양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말발굽형 아취, 화려한 색상의 파란색 타일, 분수가 있는 안뜰, 그리고 히랄다 탑 등이다. 

 

 

 

 

 

뽀쪽한 첨탑, 아치형 문 등 세비야 대성당은 중세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대성당 앞 광장의 십자가. 무엇을 기리는 것인지?

 

 

 

 

알카사르로 가는 "사자의 문"

 

 

 

 

요새형 궁전인 알카사르, 대성당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알카사르 Real Alcazar de Sevilla는 아랍어로 궁전이라는 말이다.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 주요 지역에 자리를 잡고 지은 초기의 요새들을 후에 궁전으로 개조하여 통치의 기반으로 삼은 요새궁전이다. 똘레도에도 있고 세고비아에도 있지만 이슬람 문화의 정취가 가장 분명하게 남아 있는 곳이 이 세비야의 알카사르다. 

 

8세기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들어와 주요 지역에 요새를 짓고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9세기에 들어 무어인들은 요새를 궁전으로 개조하여 통치의 중심지로 활용한다. 이후 카톨릭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를 탈환하면서 1364년 세비야의 알카사르는 카톨릭 왕궁으로 개조되는데, 당시 건축에 동원된 사람들 대부분이 무데하르 장인들이었기 때문에 카톨릭 지배하에 지은 궁전이지만 이슬람 정취가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알카사르를 지나쳐버렸다. 존재조차도 모르고,,,,,  

 

 

 

대성당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

 

 

 

 

대성당 남문, 산 크리스토발의 문

 

 

 

성당의 정문은 트램이 다니는 서쪽 대로변에 있으나 평시에는 늘 닫혀있다. 이곳은 성당 남쪽에 있는 산 크리스토발의 문으로 주로 개인 입장객들이 성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일인지, 안내하는 이가 특별한 조치를 했는지 단체인 우리도 이곳을 통해 입장을 했다. 그런 까닭에 아쉽게도 단체입장객이 들어가는 팔로스 문으로 갈 기회를 잃어 그만 히랄다탑의 외형을 놓치고 말았다.

 

사전에 충분히 고려했던 일인데 왜 당시에는 히랄다 탑 외형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그뿐 아니다. 대성당 앞에 있는 알카사르의 존재자체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으니,,,,아무리 사전에 잘 익혀두었다해도 현장에서 다른 상황이 전개되면 어설프게 익혀둔 사실들은 전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리고 돌아와서 아차! 한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산 크리스토발의 문 앞의 청동여인상 "엘 히랄디요"

 

 

남문인 산 크리스토발의 문 앞에는 카톨릭 신앙의 승리를 상징하는 청동 여인상이 서있다.  한 손에는 방패를, 한 손에는 종려나무 잎을 든 "엘 히랄디요"라는 이 여인상은 바람이 불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풍향계 역할을 한다하여 "바람개비"라는 뜻의 "히랄다" 라는 이름이 붙었다. 히랄다탑의 꼭대기에도 이와 똑같은 모양의 청동 여인상이 설치되어 있다.

 

 

콜럼버스의 묘, 알투로 메리다의 작품이다 ㅣ 세비야 대성당

 

 

 

 

앞줄 왼쪽에 있는 이가 창으로 찍고 있는 것은 그라나다를 의미하는 석류다.  "그라나다를 함락하다"라는 의미  

 

 

 

산 크리스토발의 문을 들어서면 다른 곳을 둘러볼 새도 없이 곧바로 이 콜럼버스의 묘를 만난다. 바로 문 앞에 있기 때문이다. 안내하는 이는 나중에 따로 사진찍을 시간을 갖도록 하겠으니 우선은 설명을 듣자며 일행을 중앙제단 앞으로 이끌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유럽의 성당들을 수도 없이 돌아보았기에 조금은 식상했지만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지은 성당이라니, 고딕건축물로는 세계 최대라 하니, 콜럼버스의 묘가 있고 금으로 만든 황금의 제단과 무리요, 고야 등 유명화가들의 수많은 성화를 비롯하여 천장에서부터 기둥, 바닥에 이르기까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스페인의 부와 영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라기에 설명을 듣기로 했다. 

 

스페인 지역을 안내해준 지나씨(애칭이다), 그야말로 유럽 역사와 건축양식을 한마디로 분명하게 정리해준다. 단편적인 조각들을 하나로 줄줄이 이어주는 그 탁월한 실력에 평소 안 하던 칭찬까지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콜럼버스의 유해분이 저 묘지 안에 들어있다고 하지만 여러 설이 분분하다.  에스파냐 네 왕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거인들이 묘지를 메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 왜 묘지가 땅에 놓여 있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가? 하는 이야기들은 훌륭한 여행가들이 고생해서 쓴 책들 속에 잘 설명되어 있으니 그 책들을 참고하자.    

 

 

 

은의 제단. 황금의 천장과 성화, 스테인드글라스가 한몸이다. 

 

 

 

성 안토니오의 환상, 무리요 作 ㅣ 대성당 안의 "성 안토니오 예배당"

 

 

 

 

중앙제대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중앙부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아일 Aisle과 스물다섯 개의 예배당(소성당)이 있다.  중앙제대에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목각한 작품에 대항해시대 식민지로부터 들여온 황금을 입혀 만든 바로크 풍의 "황금제단"이 있다. 성경 이야기를 그림형태로 만든 것인데 이는 글을 모르는 문맹시대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보수 중이어서 제단은 굳게 닫혀 있었다.

  

 

 

코로스석과 중앙제대 사이 아일의 천장

 

 

 

 

중앙제대 앞의 코로스석. 좌우에는 흑단으로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이 코로스석은 세비야 대성당이 다른 성당들과 특별히 차별화되는 구조다. 이 코로스석은 성직자들이 꼬로(운율에 맞추어 읊는 라틴어 음표로 된 기도문)를 외우는 장소로(일반 성가대가 아니다) 성당의 주출입문과 중앙제대에 이르는 중앙부 한 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따라서 주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 코로스석에 막혀 곧바로 중앙제대에 이를 수가 없다. 이러한 구조는 여타의 성당에서는 절대 볼 수가 없는 독특한 구조로 이러한 결과물이 탄생한데는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대항해시대 식민지로부터 축적한 부와 카톨릭 세력이 지닌 막강한 힘의 결과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견해가 있다.  

 

 

코로스석의 흑단 파이프 오르간

 

 

 

 

 

주출입문 방향에서 본 코로스석  

 

 

 

알폰소 5세 묘

 

 

대성당에는 이슬람 무어인들로부터 세비야를 수복한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4명의 왕과 기부금을 낸 부자들, 유명인사들의 묘지가 있다. 군주의 묘라든가 유명인사들의 묘지가 있다는 것이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니다. 그런데 부자들의 묘지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면죄부를 사고 팔던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다섯 개의 아일 중 하나

 

대성당에는 중앙 네이브를 중심으로 양쪽에 다양하게 장식된 25개의 작은 예배당이 늘어서 있다. 이는 당시에는 각 성직자들이 각자의 예배당에서 자신들의 신자들을 모아 개별적으로 미사를 집전했기 때문에 한 성당 안에 이렇게 작은 예배당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콜럼버스 아들의 묘, 주출입문인 승천의 문 앞에 있다

 

 

 

 

서쪽 주출입문인 "승천의 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1685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성물실의 성물들

 

 

 

 

성물실의 성물들

 

 

 

페르난도 3세, 세비야 출신의 대표적인 조각가 페드로 롤단의 작품

 

 

 

 

회의실 천장. 무리요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무염시태, 1807"가 있다.

 

무염시태, 원죄없는 잉태라는 의미.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원죄와 흠이 없이 순수하게 보존되었다는 카톨릭 교리, 

 

 

 

 

보물실의 황금십자가

 

 

 

보물실을 나와 히랄다탑을 오른다. 히랄다탑은 대성당의 종루다. 사방 14미터 정사각형 탑으로 12세기말 이슬람 알모하드 왕조시대의 둥근지붕을 지닌 모스크의 미나렛이었던 것을 기독교 세력이 세비야를 수복한 후에도 헐지 않고 사용하다가 14세기 경 대지진으로 반 정도 무너진 것을 1565~1568년에 걸쳐 28개의 종이 딸린 "플라데스코" 양식의 종루를 설치했다. 탑의 꼭대기에는 산 크리스토발의 문 앞에 있는 것과 같은 승리의 청동여인상인 "엘 히랄리요" 설치되어 있다. 히랄다는 "바람개비, 돌다, 풍향계"를 뜻한다. 

 

 

 

히랄다탑을 오르면서 격자창을 통해서 본 대성당 외벽

 

 

 

탑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다. 왕이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걸어서 오르는 일이 그리 힘들 정도는 아니다. 히랄다탑의 매력은 오래된 건축물로서의 역사적 가치도 뛰어나지만 탑 위에서 내려다 보는 고색 짙은 도시 세비야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탑으로 오르는 중간 중간에 설치된 큼직한 창들을 통해 성당의 외벽이며 지붕, 산타 크루즈 지구 등 세비야 구시가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훌륭하고 사방이 탁트인 종탑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원한 세비야의 경관을 조망하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일이다.   

 

 

 

히랄다 탑을 오르면서 본 구시가지 산타크루즈 지구.

예전 유대인들이 살던 곳으로 흰색 벽체의 집들은 안달루시아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형태다

 

 

 

 

 

 

대성당의 북쪽 벽면. 사진 오른쪽 아래로 오렌지 뜰이 보인다

 

 

 

격자창살과 빛바랜 느낌의 기와, 그리고 첨탑의 조화

 

 

 

 

대성당의 돔. 사진 왼쪽 위에 마리아 루이사 공원과 스페인광장이 보인다

 

 

 

 

34층?

 

히랄다탑은 34층이다. 탑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아니라 비탈길로 되어 있어 실제 34층은 아니겠으나 94미터인 탑의 70미터 지점에 종탑이 있으니  그리 낮은 것만은 아니다. 탑의 각층 코너마다 번호가 붙어있는데 34번이 마지막이다.    

 

 

34번 층에서 종루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

 

 

 

히랄타 탑의 종들, 정사각형으로 사방에 28개의 종이 설치되어 있다.

 

 

 

 

 

 

 

 

히랄다탑에서 내려다 본 성당과 세비야의 산타크루즈 지구. 사진 오른쪽 아래부분이 성당의 오렌지 뜰이다

 

 

 

 

히랄다탑에서 본 세비야 구시가지의 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

 

 

 

 

 

나랑호스 정원,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나랑호스Naranjos 정원은 성당의 안뜰로 60여 그루의 오렌지 나무들이 있어 오렌지 정원이라 한다. 안뜰의 바닥은 수로가 조성되어 있어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해준다. 이 안뜰은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로 원래 이곳은 이슬람 모스크의 일부로 사원으로 들어가기 전 손발을 씻던 안마당이었다. 현재 대성당에 남아있는 이슬람 모스크의 흔적 중 하나다.

 

 

 

 

오렌지 정원과 연결된 성당 내부 북쪽 출입구

 

 

 

 

성당 북쪽 출구 "콜럼버스의 문"

 

이 문은 성당의 북쪽에 있는 오렌지 정원에서 밖으로 나가는 출구다. 이곳으로 입장은 하지 못한다. 마치 열쇠구멍과도 같은 문의 외형이 매력적이다. 이 문을 나서면 세비야 구시가지의 상업지구와 주택가로 연결된다.

 

 

 

세비야 구시가지

 

 

 

세비야 구시가지. 트램 외에는 다니는 차량이 없다.

 

 

세비야 대성당 투어를 마친 시각은 오후 12시 40분,  아무리 양보해도 하루는 투자해야 한다는 대성당 투어를 1시간 40분 만에 돌았으니 얼마나 주마간산격인가. 대항해 시대의 부와 영화가 집중된, 수많은 명화들과 조각, 예술작품들, 보물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돌아볼 여유는 없다. 미련은 그만, 잠시 점심 겸 휴식을 하고 다음 여행지 론다로 가자.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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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무명시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2.20 내용이 정확히 맞는지 염려가 됩니다. 여행하는 동안 사진 찍느라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요,,ㅎㅎ
    다음 여정을 기다리는 기쁨을 드리게 돼서 즐겁습니다. 혹, 잘못된 부분이 있거든 알려주세요. 건강하시구요~~
  • 작성자들찔레 | 작성시간 14.02.19 사진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군요. 게다가 흥미로운 설명까지. 다음편도 기대됩니다..ㅎㅎ
  • 답댓글 작성자무명시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2.20 즐겁게 봐 주시니 저도 즐겁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나머지 부분도 준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 작성자능금이 | 작성시간 14.03.01 사진이 어쩜 이리도 잘찍사 했네요
    제게도 1ㅇㅇㅇ장에 사진이있지만 님에 사진에 메료 되네요
    다시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님이 다녀 온길을 우리도 22일을 차 리스해서 다녔지요
    잘보고 갑니다
  • 작성자무명시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02 같은 길을 무려 22일 간이나 다녀오셨군요. 저는 짧은 일정이어서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는데 22일 간을 차 리스해서 다니셨으면 여유로웠겠군요. 부러운 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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