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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유럽 여행 후기

작성자하울타리|작성시간18.09.10|조회수401 목록 댓글 0

estri | 조회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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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여행이라는 말은 듣기만 하여도 설레는 단어이다.

어려서부터 사주에 역마살이 들어있어 많이 돌아다닐 거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를 보면 그 말만은 맞는듯하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저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좋다.

덤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도 들여다보고, 맛있는 것도 먹어 보고,

들어서는 알 수 없었던 것을 보고서야 확신이 가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것을 보거나 낯선 이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세계를 접하기도 하고

일상에서 벗어나 머리를 비우며 또 다른 활력을 찾기도 한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장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떠나니 거의가 출발 전부터 보고서가 완성될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산행을 위한 여행의 경우에는 준비에서 부터 설레고,

다녀와서도 여운이 많이 남는 여행이다.

단체 여행의 경우 그곳도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불편할 때도 있을 수 있으나 그 또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른 때와 별반 차이는 없지만 이번 여행도 많은 시간을 두고 계획하지는 못하였다.

나중에 시간 남을 때 한가한 여행보다는 얼마 후면 끝나는 회사 생활을 앞두고 조금은 시간에 쫓기듯 다녀오는 여행도 조금은 재미를 더할 듯 하여 계획을 하였다.

몇 군데를 목적지로 정해 놓고 휴가 일정과 맞추어 일정을 잡으려 해보았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일정이 맞으면 모객이 안 되어 취소가 되고, 출발이 확정되는 곳에는 휴가 일정이 맞질 않았다.

여행 자제가 권고되는 중동지역과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일본, 가까운 중국을 제외한 지역으로 아무 곳이나 일정이 맞는 곳이면 다녀올 요량으로 여러곳을 검토하다가 나중에는 동유럽에 한정하여 알아보았다.

덕분에 일정 잡느라 출발 전부터 두어 달을 잘 보낸듯하다.

동유럽 여행도 크게는 이번에 다녀온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지역과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한 일정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유럽은 지역적으로 너무 멀어 아는 게 별로 없고, 예전에 공산권이라는 조금은 찜찜한 선입견과 아직은 가보지 않은 곳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조금은 밀린 지역이었다.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가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하게 되었고, 일정을 맞추다 보니 알려지지 않은 여행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용도 타 여행사와 비교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라 망설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 가지 끌리는 점도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항공 A380기종을 이용하여 두바이를 경유, 잠깐 관광을 하고 유럽으로 넘어가는 점이다.

특별히 중동을 들릴 일이 없는 나로서는 버즈두바이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니 매력적인 제안일 수밖에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동유럽이 너무나 생소한 곳으로 아는 게 없으므로

그저 비엔나커피, 다뉴브 강, 사회주의 국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시고 바웬사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정도가 떠올랐다.

출발 며칠 전 동행하는 가이드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분하지만 많이 피곤한 목소리다. 여행 도중 알게 되었지만 가이드의 일정 자체가 굉장히 타이트하게 짜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을 즐긴다 하였다.

사실 일을 즐기면서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 일정지인 두바이의 하늘은 맑았다.

출발 전에 기온차로 복장을 어찌해야 할지 조금은 걱정이 되었는데 의외로 덥지가 않았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요즘 들어 이상기온 현상으로 예년보다 선선한 날이 계속된다 하였다.

사막 한 가운데에 막강한 석유 자본으로 건설된 두바이는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역사라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관계로 모든 것을 최고로만 만들려는 것들이 화려하고 거대하기는 하여도 자연스럽기까지는 않았다.

마치 거대한 신기루가 솟아있는 도시처럼 보였다.

적합하지 않은 자연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가려는 처절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십년도 않되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를 이루었으니 석유 자본의 힘이 다시 한 번 실감난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지리적 요충지답게 24시간 내내 뜨고 내리는 비행기 편이 계속되었다.

사막 한 가운데 남산 높이의 세배나 되는 건물이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교통, 금융, 상업의 요충지로 그만한 수요가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89일 이라는 짧은 일정에 여러 나라를 들리는 일정으로 잡힌 여행이라 많은 것을 볼 수는 없다.

한곳에 육십 여년을 살아봐도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나라당 하루씩 잡힌 일정으로 많은 것을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그 나라를 대표할만한 목적지를 선택하여 일정을 잡은듯하다.

뮌헨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자고 유럽에서의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

호프 브로이 하우스는 독일어를 공부한 나에게는 친숙한 이름이라 더욱더 반가웠다.

이른 시간이라 유서 깊은 곳에서 한잔의 맥주를 못마셔본 것이 서운한 마음이다.

이어서 들른 프라우엔 성당은 여느 성당과 비교하여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잘 정돈된 성당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실용적인 독일인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할슈타트는 소금광산지역이었지만 워낙 풍광이 좋아 지금은 관광과 휴양도시로 바뀐 곳이다. 가는 길은 수많은 높은 산들과 호수가 이어진다.

차안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여준다.

이런 멋진 풍광 때문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명화를 촬영한 장소라 한다. 산악지형에 거대한 빙하호수가 곁에 있어 가파른 지형에 기대어 지어진 집들이 동화속 풍경 같다.

꾸미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에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다니는데도 혼잡하지가 않고 평온한 분위기다.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봉우리와 널따란 호수에 한가롭게 헤엄치며 노니는 백조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소금도시라는 잘츠부르크로 갔다.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고 활동을 하던 그와 인연이 많은 도시이다.

이곳 역시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장소인 미라벨 정원이 있다.

영화에서는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그 지역 대주교가 자기 정부에게 주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사실 때문에 조금은 반감이 되는듯하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외관에 내부에는 예수님의 일생을 묘사한 섬세한 천정화가 눈길을 끈다.

돔성당이라고도 불리며 모차르트가 영세를 받은 곳이고 연주를 하던 곳이라고도 한다. 유럽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고 하지만 미사시간이 아니라 그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성당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느낀 일이지만 어두운 실내에서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피사체 부분이 밝게 보인다는 점이다.

카메라가 좋은 건지, 거기까지 감안한 건축 설계기술인지, 아니면 또 다른 힘이 작용하는 건지 그 신비스런 현상은 여행 내내 나를 즐겁게 해주는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다음 일정은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스키크롬로프로 이어진다.

빨간 지붕과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의 전망대가 인상적인 도시이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동화속 풍경이 연출된다.

아무 곳이나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대도 캘린더 화보처럼 아름답다.

마치 하회마을처럼 조그만 물길이 도시를 감싸고 흐른다.

도로에 깔린 돌이 달을 정도로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꾸불꾸불한 골목길이 정겹기만 하다. 머나먼 이국땅이라기보다는 어렸을 적 뛰놀던 골목길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성과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위에는 두 분의 조각상이 있는데 십자가 예수고상과 마주보는 자리에 프라하 까를교에서 보게 되는 파이브스타 넷포무스키 성인이다.

고해성사의 신부님이라고도 하고 가장 소원을 잘 들어주시는 성인이라 한다. 후광으로 별 다섯 개를 두르고 서 계신다.

붉은 지붕의 매력과 맛있는 점심 그리고 흑맥주와 커피 한잔의 유혹에 빠져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바쁘게 성당으로 향한다.

여행 내내 어느 곳을 가도 마을의 한가운데에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시 어디서나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많은 곳을 다녀 보지는 않았어도 다른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곳 성당에는 예수성심상과 성모성심상이 함께 모셔져 있는 것이 특이하게 보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평화롭게만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대평원과 우리 눈에 익숙한 밭고랑이 보이질 않는다.

그저 눈에 보이는 곳까지가 하나 우리네 셈법으로 한 마지기인 모양이다.

흙도 비옥해 보인다.

겨울이 끝나가는 철이라 그런지 특별한 농작물은 보이질 않는다.

간간이 거대한 유채 밭과 목장의 목초지가 보일뿐이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들도 보인다. 척박하고 산지가 많은 지형에 조그만 땅뙈기라도 활용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네 농촌 사정을 생각하며 조금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태풍등 자연재해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지금의 우리를 이루어냈고 금수강산이라 여기며 살아온 우리네 선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에는 연주회 관람이 예정되어있다. 예술의 도시니 만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관람하고 싶었다. 약 육백 석 규모의 연주회장은 내부나 외부가 화려하였다. 13인조의 소규모 관현악단과 두 명의 솔리스트, 두 명의 발레리나가 출연하였다. 비교적 친숙한 라데츠키 행진곡과 피가로의 결혼등 요한쉬트라우스와 모차르트 곡이 연주되었다.

1부에서는 악기별 하모니가 맞질 않고 소프라노의 고음부가 올라가지 않아 조금은 부자연스러웠으나 휴식후 2부에서는 완벽한 조화로 만족한 연주를 선사하였다. 휴식시간에는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에서 우아하게 샴페인 한잔 쭈 우 욱!

오전에는 쇤부른 궁전 관람이다. 유럽을 통치하며 비엔나를 유럽의 중심으로 만든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궁전이라 한다.

1400여개의 방이 있으며 짜임새 있게 꾸며진 드넓은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눈으로만 담아오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비엔나의 스테판 성당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의 이름에서 따온 듯하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미사가 이루어진 유서 깊은 곳이라 한다. 랜드 마크답게 그 규모가 엄청나다.

물론 인접한 건물들 때문도 있지만 어디에서도 성당 전체를 카메라에 담기가 힘들다.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듯하다.

외관은 첨탑과 종탑등 단순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교한 조각품들이 볼만하다. 성당 내부도 다른 성당과 달리 돔이 없어서인지 천정화도 없고 성화보다는 조각품들이 많아 보인다.

비엔나의 명동이라는 게른트너 거리 관광후 1435년 문을 열었다는 Lindenkeller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감자와 닭고기, 소시지가 들어있는데 입에는 맞았다.

다음 행선지는 부다페스트이다. 길이 참 좁은데도 우리나라 버스보다 큰 차를 잘도 운전한다는 생각이 든다.

중세 때부터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도시들이라 옛 마차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도로 폭이 좁다고 한다.

하지만 1주일 정도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한 번도 경적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교통사고도 한 건도 본적이 없다.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있던 두 개의 도시가 합쳐져 오늘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한다. 시내에 들어가기 전 언덕에 올라 시내 조망을 한다.

한마디로 그림이다. 파란하늘과 벽돌색 지붕들 그리고 하얀 벽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머릿속에는 공산국가였다는 나쁜 이미지가 너무나 강하게 부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듯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가 공산국가였다니.

어찌 보면 통치자들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애꿎은 민초들만 곤욕을 치루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부의 요새에 올라 또 한 번 시내 조망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나쁜 생각이 나올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에 오르자 말을 탄 조각상이 보이는데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 이슈트반 성인이라 한다.

인근에 성당이 있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성당 입구에 낯익은 조각 탑이 보인다. 미리내 성지에 있는 성삼위 조형물이 이곳에서 차용한 듯 같은 모습의 조각상이 성당 앞 광장 높은 탑에 조각이 되어 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저녁에 도나우 강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감상한다고 한다.

이슈트반 성당은 스테판 성당이라고도 하며 헝가리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건국의 아버지 이슈트반 황제를 기념하는 성당이라 한다. 거대한 돔과 내부의 화려한 천정화와 소성당의 모습을 마침 미사시간이라 촬영하지 못하였다.

멀리서 눈으로만 바라보고 왔다. 중앙 돔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인 첨탑으로 이루어진 외관도 화려하지만 내부 또한 금색바탕에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슬라브족과 게르만족이 대부분인 유럽에서 보기 드문 마자르족이 많은 헝가리여서 그런지 조금은 낯설지가 않다. 식당에도 고추가 우리네와 친숙한 모습으로 엮여져 벽에 걸려 있다.

야경도 주간 풍경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았던 국회의사당의 풍광이 가장 압권이었다.

소금광산이 있는 크라코프로 가는 길에 동유럽의 알프스라는 타트라를 경유한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간다. 어제 밤에 유람선을 타고 선실 밖에서 야경을 즐길 정도로 따스하였는데 이곳에는 눈이 오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가을을 빼고 봄, 여름(두바이), 겨울을 체험한다.

해발이 이천 미터가 넘는다 하니 남한 땅 어디보다 높은 지형이다.

스키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지금은 시즌이 끝나서인지 한적하다.

눈은 오지만 매서운 추위는 아니다.

언덕위에 작은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올라가 보니 아담하고 정숙한 분위기의 성당이다.

이번 일정중 들린 성당에는 안토니오성인을 현양하는 성당이 많이 보인다. 이곳도 역시 성인의 이름이 보인다.

여행일정도 막바지에 이른다. 소금광산이 있는 크라코프로 향한다.

여러 차례 TV를 보았던 곳이라 궁금증이 더했다.

제 규모는 상상이상으로 컸다.

광산이래야 석탄광산만을 봐왔던 우리에게 규모나 갱도의 크기 등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관광지로 개발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먹는 음식을 다루었던 곳이라 그런지 분진도 없고, 치열한 땀의 현장이라고는 느껴지지가 않았다.

성당도 미사를 보기 위한 곳은 아니고 일하던 광부들이 만들어 놓은 곳이라 한다. 제대에 모셔진 분도 예수님이 아닌 소금광산과 관련된 왕이어서 교회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부 규모가 상상이상으로 크고, 좌우 벽면을 성인들과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수많은 조각품들은 정교하고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 있는듯하다. 소금이라는 광물이 먹는데 그칠 뿐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일으킨다. 다양한 변화도 놀라울 일이지만 그것을 만들어내고자 생각해낸 인간의 지혜도 놀랍다.

나오는 길에 신자석도 있어 실제 미사를 드리던 곳처럼 보이는 소박한 성당이 보인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유리화도 보인다.

지하 삼백 미터 깊이에 있는 시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도시처럼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적지 않은 규모의 식당과 회의실도 갖추어 있었다.

이동하는 차안에 피아니스트가 상영되고 있다. 이차대전 당시 유태인 피아니스트가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홀로코스트가 진행되는 점령지 상황에서 유태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극도의 불안하고 어려운 심리상태가 잘 묘사되어있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상영된 작품이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이다. 모두들 영화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이번 여행은 삼십 명 정도가 동행하였는데, 나이도 구성도 출신지도 다양하지만 며칠 사이에 마치 예전에 알았던 사이들처럼 어울리게 되었다.

딱히 어느 그룹이라고 구분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준비해온 반찬도 나누고, 간식과 커피, 술도 나누어 먹으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까지도 스스럼없이 나누게 되었다. 이 또한 여행을 즐겁게 마칠 수 있는 요인 중에 하나였다.

수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왔다. 폴란드 국민들이 가장 많고 요즘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한다. 일본인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코스라 한다.

처음 본 것은 유태인들을 수송해온 화물차였다. 그 작은 열차 안에 수백 명을 태우고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앞으로의 사태를 직감한 이도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황량한 이곳에서 내렸겠지. 대다수의 사람은 도착 수 시간 내에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한다.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은 노동력이 있는 자들로 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다가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한다.

수용소 생활을 견디다 못해 둘러쳐진 전기 철조망에 스스로 몸을 던진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가스실, 생체시험실, 화장시설, 위령비, 화장실, 수용시설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들이 없다. 대부분은 독일군들이 자기들의 만행을 감추려고 철수하면서 파괴하였으나 미처 파괴하지 못한 시설들이 일부는 파괴된 채로 일부는 복원하여 세워져 있다.

마지막 일정인 프라하로 향하는 길이다.

드넓은 대지에 간간이 널따란 유채 밭이 검정색 토양과 대비되며 멋스럽게 보인다. 간간이 빨간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과 어디서나 눈에 띄는 자리에 잡은 뾰족탑 성당이 보인다.

간간이 낯익은 한국 기업들의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 까지 현지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차창 밖의 풍경은 변함이 없으나 모두들 말이 없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끔찍한 일을 경험한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우리네 조상들의 아픔이 생각나서인지도 모른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먹기 위해 작은 도시로 들어간다.

작지만 건물이나 거리마다 역사가 살아있고 품위가 있는 왠지 포근한 시골 고향 같은 분위기가 물씬하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골목에서 만나는 이웃 같은 느낌이 든다.

조그마한 도시치고는 식당이 멋스럽다.

아주 오래된 석조 건물의 외벽을 담장이가 멋스럽게 덮여져 있다.

분위기 넘치는 식당에서 체코 전통음식인 스비치코바를 맛나게 먹었다.

노란소스에 삶은 소고기와 빵을 찍어 먹는데 한국인이라 그런지 밥도 곁들여 나왔다.

식당도 운치가 있고 밥도 맛있지만 도시에 들러서면서부터 멀리서 보이던 성당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부지런히 먹고 성당으로 향한다.

여유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

나중에야 어렵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그만 도시는 올로모우츠라는 보헤미안의 유서 깊은 도시임을 알게 되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외관이 엄청나다.

아무리 뒤로 물러서도 전체를 담을 수가 없다.

내부로 들어가니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지금껏 보아온 여느 성당들과는 조금은 다른 내부 구조이다.

중간쯤 되는 곳에 성체 조배실이 보이고 저 멀리 제대가 보인다.

성 바츨라프 성당이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도 방문하신 곳이라 한다.

교황 재위시 성인품에 오르신 St Sarkander 성인을 현양하는 성당이기도 하였다. 오래 머무르지는 못하였고 사진으로만 남기기에도 바쁜 시간 이였지만 하마터면 대단한 명소를 놓칠 뻔하였다.

졸다가 구경하다가 프라하에 도착하였다.

프라하는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적어도 두 번을 보아야 한다고 한다.

야경 구경을 위해 저녁을 먹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며 시내를 구경하였다. 화약탑이 보인다. 프라하 왕궁으로 이어지는 구시가지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문인데 화약 창고로 쓰인 연유로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한다.

구시가지를 지나 까를 교로 향한다. 그사이 사방이 어두워져 저 멀리 보이는 왕궁이 아름답게 보인다. 까를교에는 많은 성인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성인이 달리 성인이 아닌가 보다. 조명빨 역시 끝내 주게 좋아 보인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빛나는 성인들의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체스키크롬로프의 다리에서 보았던 넷포무스키 성인도 보인다.

역시 머리 위에는 파이브스타가 장식되어 있다. 동상 밑을 잡고 소원을 빌면 들어 주신다 하여 양옆이 반들반들 빛이 난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나 보다.

나도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빌어 본다.

마지막 날 일정이다.

어제 밤에 보았던 거리를 오늘을 낮에 다시 보기로 한다.

마치 우리나라 가을 날씨처럼 하늘이 맑고 푸르다.

강 건너 대통령궁이 웅장하게 보인다. 그 옆으로 비타 성당도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시내 들어서면서부터 멀리 보이던 성당이다.

다니는 곳마다 대표적인 곳만을 찾는 이유도 있지만 우리네와 비교하면 하나처럼 웅장하다. 비타 대성당이라하는데 시간 관계상 내부는 들어가질 못하였다.

바로 앞이 대통령 집무실이라 하는데 의외로 경비가 허술하다. 우리나라 관공서 보다 통제를 하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낮에 보는 까를교는 또 다른 모습이다.

어젯밤에 보았던 성인들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신다. 어제는 신비스럽게 보였는데 오늘은 위엄이 있지만 포근하고 친근하게 느껴져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참으로 신비스럽다.

강위에서 노니는 수많은 백조들이 여행의 평화로움과 느긋함을 더해 준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그 모습은 편안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천문시계탑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이른 시간임에도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도 여러 무리가 보인다.

자유분방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깨기라도 하듯 질서를 지키며 이동하고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문 시계탑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매시 정각마다 울리는 종소리를 듣기 위해 모인 관광객들이라 한다.

10초 만에 끝나는 아주 간단한 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인다.

시계가 만들어진 시기가 조선 초기 무렵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시간도 정확하지만 12사도와 닭울음 그리고 시계 옆의 네 가지 조각상은 허영, 욕심등 살아가면서 경계해야할 교훈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옆에는 구시가지 광장이 있다.

종교개혁가로 알려진 루터신부 보다 100년 전에 종교개혁을 외치다 처형된 얀 후스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구 시청 광장에는 거리음악가들과 마임 예술가,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사람과 많은 먹거리를 파는 포장마차와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주변에는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등 시대별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으니 이 광장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어젯밤 야경에도 신비스런 모습을 하고 있던 틴 성모 성당이 광장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건물인데 첨탑의 모양이 특이하다.

첨탑에 또 다른 뾰족탑을 몇 개가 더 덧붙인 형상이다.

내부는 촬영을 금하고 있어 겨우 제대만 찍을 수 있었다.

성당 제대 중앙에는 황금색 성모마리아 상이 있었는데 얀 후스와도 관련이 있다 한다.

어느 성당에나 당연히 있어야할 성모마리아 상이지만 일상 속에 무심코 지나는 일들이 조금만 더 내용을 알면 알수록 재미가 더 해지는 부분이다.

광장을 벗어나 조금 더 걸어가니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인 바츨라프 광장이 나온다.

바츨라프 성인은 폴란드 건국의 아버지이지만 올로모우츠에 있는 바츨라프 성당을 다녀왔기에 조금은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발걸음 가던 대로 일정을 따라가며 기억을 되살려 기록 해 보았다.

가는 곳마다 성당만은 일정이 허락하는 한 최우선 순위로 둘러보았다.

매일미사를 못 하게 된 것을 그것으로라도 갈음하고 싶었고,

우리에 비해 많이 쇠락하게 되었다는 유럽의 교회를 보고 싶었다.

깊이 있는 접근은 불가능하나 나라마다 대표성이 있는 곳을 다녀온 듯하다. 지금은 EU라는 공동체로 묶여 있지만 역시 나라마다 나름대로의 특성은 있는 듯하였다.

화폐가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름을 알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여행을 하다보면 도마다 언어나 산세, 지형이 다르고 음식이 조금씩 다른 것과 같다.

드넓은 대지와 맑은 공기, 강마다 넘쳐 나는 물과 비옥해 보이는 토지가 부러웠다. 그 속에 사는 여유 있는 삶도 보기에 좋았다.

조상들의 찬란한 문화나 팔아먹고 산다는 편견도 없어지게 되었다.

우리처럼 많은 공장지대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다지 넓지 않은 도로에는 수많은 트럭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들이 드넓은 농토와 많지 않은 인구로 농, 축산업만으로도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집들이 있었지만 같은 모양을 찾아보기는 쉽지가 않았다.

하나같이 잘 정돈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듯하였다. 이들이라고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외세의 침입도 있었고, 암흑기라 불리던 중세 시대도 거쳤다. 이념 논쟁에 공산치하에도 있었고, 종교전쟁도 거쳤다.

수많은 시련과 시행착오가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질서와 여유를 찾은 듯하였다. 인간 중심의 질서가 눈에 좋아 보인다.

서구화라 하지만 철저한 개인주의, 상업주의가 우선인 미국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런 질서의 밑바탕에는 천 년 전부터 받아들인 기독교 정신이 바닥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박제화되어버린 줄 알았던 서양의 기독교가 그들의 생활 속에 깊게 심어져 신앙이 아닌 생활화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도 터미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처럼 휴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같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평일에 떠나는 사람들보다 휴일에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밝다.

아무래도 평일에는 업무를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 많고 휴일에는 시간을 쪼개어 휴식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여행을 다녀 온지가 제법 되었지만 기억을 되살리며 글을 쓰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새로운 것을 보는 즐거움과 많은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지만 서로간의 배려심으로 불편함이 없었다.

두바이의 날씨가 덥지 않았고, 좋지 않다는 동유럽 4월의 날씨가 신기할 정도로 좋았다.

그밖에 많은 요인들이 여행을 즐겁게 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교황님이 나오시기에 충분한 여러 여건을 가진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충분하다기 보다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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