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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다녀온 작가님 글입니다.
동구의 미(美)와 자유를 걷다 – 나를 찾아 떠난 시간
언젠가부터 내 삶에선 '자유'란 말이 낯설었다. 시계를 보며 살아가는 하루하루,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으려 애쓰며 웃는 날들. 그럴듯해 보이는 일상은 있었지만, 나라는 사람은 점점 사라져갔다. 그때 문득, 지도를 펼쳤다. 손끝에 닿은 곳은 동유럽.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조용하고, 그래서 더 끌렸다.
16일의 여정은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시작되었다. 회색빛 건물과 오래된 기찻길, 공산주의의 흔적이 스민 도시.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치장되지 않은 풍경이 오히려 나를 환영하는 듯했다. 브란성과 시나이아 수도원, 중세의 숨결이 남아 있는 벨리코투르노보에서는,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요한 시간’을 마주했다.
그리고 릴라. 불가리아의 산속에 숨은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말 그대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돌담 사이로 빛이 비치고, 수도사들의 발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던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 어딘가, 묵은 먼지가 털려나가는 듯했다.
소피아와 베오그라드를 지나 사라예보로 향하는 길.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그곳의 터널 속을 걷는데, 눈물이 맺혔다. 누군가는 이 도시를 '어두운 역사'라 말하겠지만, 나는 그 속에서 끝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따뜻함을 느꼈다. 어쩌면 상처는 기억보다, 온기를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가장 특별했던 하루는 단연코 드브로브니크에서의 자유일정이었다. 여행사 일정표에는 '자유시간'이라 적혀 있었지만, 내게 그것은 '회복의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성벽을 따라 걸었다. 바다와 도시가 나란히 펼쳐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고, 바람은 내 머리칼을 헝클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좋았다.
카페 부자(Buža)에서 마신 커피 한 잔. 절벽 끝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을 되짚었다. 잘 살아왔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누군가는 그것을 '관조'라 하겠지만, 나는 그저 '살아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이어진 플리트비체의 물소리, 루비니의 노을, 블레드 호수의 잔잔한 물결. 모든 장면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마음에 남았다. 나는 많은 유럽 도시들을 여행했지만, 이처럼 잔상이 길게 남는 여정은 처음이었다.
이 여행은 단지 유럽을 보는 일정이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여행이었다. 조용한 거리에서, 오래된 성당 벽 아래에서, 아무도 없는 골목의 벤치에 앉아 나는 나와 마주했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 누구의 기준에도 맞추지 않아도 되는 나.
이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분명히 달라졌다. 어쩌면 진짜 자유란, 두브로브니크의 햇살 아래에서 나를 허락해주는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동유럽
그곳에는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었고, 말없이 안아주는 여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잊고 지낸 나 자신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 길 위에서 만난 나는, 지금의 나보다 조ㅓㅂ금 더 따뜻했고, 조금 더 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