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60대 여인의 돌로미테 트레킹 후기

작성자카페 지기|작성시간26.06.09|조회수60 목록 댓글 1

밴드에서 글을 읽다가,..

밴장이 대필 해드립니다.

3년 전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그때는 그냥 걷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진을 보니 저는 산을 걸은 것이 아니라 제 인생의 한 페이지를 걸어가고 있었더군요.

60대가 되어 배낭을 메고 낯선 이탈리아 돌로미테를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였습니다. 무릎도 예전 같지 않았고 숨도 쉽게 차올랐습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 꿈꾸었던 세상을 뒤늦게 만나러 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체다 정상에 올라 처음 그 풍경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늘을 향해 솟은 거대한 바위산과 초록빛 초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사진 속에서는 웃고 있지만 사실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눈앞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벅차올랐기 때문입니다.


정상에 세워진 십자가 아래에서는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살아오며 힘들었던 시간들과 지나온 세월들이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고비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높은 산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작아 보였고 내가 안고 살던 걱정들도 조금은 가벼워 보였습니다.


노란 꽃이 끝없이 피어 있던 알페 디 시우시 초원에서는 잠시 소녀가 되었습니다. 누가 본다고 신경 쓰지 않고 꽃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60대가 되면 점잖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날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웃고 싶었습니다. 꽃향기와 바람이 지나가던 그 시간은 지금도 사진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은 호숫가 마을에서 비를 만났습니다. 멀리 산은 구름에 가려지고 잔잔한 물결만 호수 위를 흘러갔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맑은 날만 좋아했는데 이제는 흐린 날도 좋습니다.

인생에도 맑은 날과 흐린 날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망대에 올랐던 날은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멋진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곳이었지만 온 세상이 하얗게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결국 길은 나타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로미테의 웅장한 산들도 좋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마을들이었습니다. 꽃이 걸린 창문. 천천히 산책하는 노부부. 카페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 평범한 풍경들이 이상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알겠습니다.
행복은 젊음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행복은 아직도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돌로미테에서 저는 산을 오른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제 인생을 다시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 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9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한 자,
    험담을 들은 자,
    험담의 대상자 등을 모두 죽일 수 있다.
    유대인의 지혜가 집약된 탈무드에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말을 하기에 앞서 늘 3가지 체에 걸러봐야 합니다
    마음 편안한 하루길 되시기바랍니다.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