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돌로미테 트레킹 추억속으로.
3년 전 오늘이네요.
그날 저는 커다란 배낭 하나를 메고 스위스로 향했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여행은 풍경보다 제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새벽 안개를 뚫고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던 날.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내던 설산들. 눈앞에 펼쳐진 빙하와 만년설. 그 순간마다 가슴은 어린아이처럼 뛰었습니다.
체르마트에서는 마테호른을 만났습니다.
마을 골목 끝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산은 사진으로 보던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한참 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습니다. 평생 한 번은 꼭 만나야 할 풍경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융프라우에서는 태극기를 펼쳤습니다. 하얀 설산과 푸른 하늘 아래에서 흔들리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멀리 떠나왔지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산길을 걷다 보면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날고. 누군가는 초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풍경을 소비하지 않고 풍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한여름인데도 눈밭을 걸었습니다.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눈이 함께 있던 풍경. 그 모습이 꼭 인생 같았습니다. 기쁨과 아픔. 희망과 걱정. 모두 함께 존재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산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루체른의 오래된 다리에서는 꽃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급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조금은 미안해졌습니다. 인생도 여행도 결국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바라보며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사진을 꺼내 봅니다.
사진 속에는 눈부신 설산도 있고. 빙하도 있고. 산악열차도 있고. 마테호른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풍경이 아닙니다.
그 모든 풍경 앞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던 60대 소녀의 모습입니다.
2023년
그날 저는 스위스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밴장이 손님 대필 했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카페 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9 젊은 시절에는 여행이 세상을 보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유명한 곳을 찾아가고.
남들이 찍은 사진 속 풍경을 직접 확인하고. 조금 더 멀리 가는 것이 좋은 여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여행은 세상을 보는 일이 아니라 결국 나를 만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머나먼 이국의 광장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노신사의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무엇이 저분을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얼마나 많은 계절을 지나왔을까.
얼마나 많은 이별과 만남을 품고 살아왔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시간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사진 속 낡은 해바라리 그림도 그랬습니다.
화려한 색은 이미 바래고 선명함도 사라졌는데 이상하게 더 따뜻했습니다.
새것은 눈길을 끌지만 오래된 것은 마음을 끕니다.
오래된 것은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젊은 날의 아름다움보다 세월을 견뎌낸 얼굴이 더 깊어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원래 빈티지한 물건을 좋아합니다.
새 가구보다 오래된 나무가 좋고.
반짝이는 장식보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물건이 좋습니다.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