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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생 중년소녀의 돌로미테 트레킹 2편

작성자카페 지기|작성시간26.07.06|조회수79 목록 댓글 0

56년생 중년소녀의 돌로미테 트레킹 이야기. 2편


돌로미테에서는 하루에도 사계절을 만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침에는 파란 하늘 아래 초원을 걸었는데. 점심이 되자 먹구름이 산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에는 빗방울이 떨어졌고. 조금 기다리니 다시 햇살이 능선을 비추었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그런 시간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넓은 초원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마치 거대한 자연공원에 들어온 듯했습니다. 발밑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었고. 멀리 바위 절벽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풍경이 너무 커서 어디를 봐야 할지 몰랐습니다. 천천히 걸을수록 풍경이 아니라 내가 자연 속 작은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산 정상에 세워진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가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던 사람도 조용해졌고. 사진을 찍던 사람도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았습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바람 하나쯤은 마음속에 담고 내려왔을 것입니다.


세체다 능선에 올랐을 때는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오면서 초록 능선과 회색 바위가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비가 올까 망설였지만. 오히려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연은 완벽한 날보다 변화하는 날이 더 깊은 감동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길을 따라 걷는 길은 보기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사진에서는 평탄해 보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에 숨이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뒤를 돌아보면 조금 전 걸어온 길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습니다. 힘든 만큼 풍경도 조금씩 더 커졌습니다.

거대한 암벽 아래에서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실감했습니다. 수천만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바위 앞에서. 예순이 넘은 세월도 자연에게는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당시 병사들이 몸을 숨기던 동굴에 들어섰을 때는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지금은 여행자가 풍경을 감상하는 곳이지만. 한때는 누군가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였던 공간이었습니다. 평화롭게 산을 걷는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함께 느꼈습니다.

산장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별다른 대화가 없어도 좋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돌로미테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좋은 여행은 많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6년생이라는 숫자는 여권에만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산은 나이를 묻지 않았고. 한 걸음씩 걸어온 발걸음만 기억해 주었습니다.
이번 돌로미테에서 가장 많이 남은 것은 사진이 아닙니다.

아직도 새로운 길 앞에서 설렐 수 있다는 마음. 조금 힘들어도 끝까지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내일도 다시 배낭을 메고 떠나고 싶은 용기였습니다.
그래서 중년소녀의 돌로미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능선 너머에는 또 다른 하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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