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56년생. 중년 소녀의 돌로미테 트레킹 11일 후기

작성자카페 지기|작성시간26.07.07|조회수89 목록 댓글 0

56년생. 돌로미테 트레킹 11일.

쉰여섯도 아니고 예순여섯도 아닌.
1956년에 태어난 우리는 어느새 인생의 후반을 걷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키우고 부모를 모시는 것이 하루의 전부였습니다.

여행은 늘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여유가 생기면.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돌로미테 11일은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아직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내 두 다리가 아직도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첫날 브라이에스 호수 앞에 섰습니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산이 비치고.
함께 온 일행들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장난을 쳤습니다.

나이가 들면 웃음이 줄어드는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예순도 일흔도 다시 소년과 소녀가 되었습니다.

트레치메 트레킹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9km가 넘는 길. 오르막도 있었고. 돌길도 있었습니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길이 그림이 되어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걸음이 모두 풍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우론조 산장을 지나고.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고. 로카텔리 산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누군가는 천천히 걸었고. 누군가는 앞에서 기다려 주었습니다.

빨리 걷는 사람이 잘 걷는 것이 아니라.
함께 끝까지 걸어주는 사람이 좋은 동행이라는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산장에서 먹었던 저녁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걸은 뒤 먹는 따뜻한 한 끼는 어떤 최고급 레스토랑보다 맛있었습니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고.
오늘도 무사히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세체다 초원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초원.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날카로운 돌봉우리는 하늘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구름은 햇빛을 가렸다가 다시 비추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산은 계속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돌로미테는 하루에 여러 번 여행하는 곳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앞에 섰을 때는 오래 머물렀습니다.
젊은 날에는 성공을 위해 기도했다면.
이제는 건강하게 걸을 수 있는 오늘에 감사했습니다.

욕심보다 감사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조금 더 편안해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11일 동안 함께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낯선 여행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함께 걷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힘들면 기다려 주고.
산장에서 같은 식탁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오래된 친구처럼 가까워졌습니다.
돌로미테가 아름다운 이유는 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산을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56년생인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젊은 날보다 분명 짧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떠나는 여행은 더 소중합니다.
다음을 기다리기보다.

오늘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오늘 볼 수 있을 때 보고.
오늘 웃을 수 있을 때 웃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이번 여행이 알려주었습니다.

돌로미테는 정상에 오르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는 여행이었습니다.

앞만 보며 살아온 세월 끝에서.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가끔은 들꽃 앞에 멈추고.

가끔은 함께 걷는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긴 트레킹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11일의 일정은 끝났지만.
돌로미테는 마음속에서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을 걷게 되더라도.
산은 그대로일 것이고.
조금 더 나이가 든 우리는.

이번보다 더 천천히.
이번보다 더 깊게.
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배낭길잡이 카페여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