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고은이는 날라리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공부하다보면 눈이 혹사되고 나빠져 안경쓰고... 안경쓴 얼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공부한다고 앉아서 책보다 보면 움직이질 못하니 뱃살 나오고 허벅지 굵어지고... 끔찍하다.
대학교 가면 날씬해진다고 엄마가 입이 닳도록 얘기를 해도 입술에 침도 안 바른 얘기다.
공부한다고 책보면 사회를 알아, 인생을 알아, 오로지 교과서만 외우다 시험 끝나면 잊어버리고...
안타까움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거다.
공부하다 보면 얼굴 망가져, 몸매 망가져, 머리 망가져..
결론은 공부하면 안 된다.
그리고 어느 사회든 누가 한쪽을 가리킨다고 모두다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는 것은 민주사회가 아니다,
다른 쪽도 봐야지.
바람 부는 쪽으로 눕는 풀들 속에서 반대로 꼿꼿하게 고개든 잡초.
얼마나 시원하고 상쾌한데...
고등학생 대부분이 공부란 단어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이 순간, 나 봐라. 공부 안 하잖아.
이단아 같이 고고하고픈 아웃사이더의 통쾌함.
이게 고은이의 생각, 철학이다.
공부할 시간에 거울 한 번 더 보고, 운동장 한바퀴 더 도는 게 얼굴과 몸매에 좋다고 생각한다.
민주는 범생이다.
오로지 공부다.
모든 사람들은 크나 작으나 지위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있다.
갓난아기는 엄마 젖을 잘 먹어야 한다. 잘 먹는가, 그걸로 갓난아기를 평가한다.
학생도 평가한다.
몸매로 평가한다고?
학생 그 나이에 몸매가 나올 수 있냐?
다 둥글둥글하고.. 이십대는 되어야 몸매가 나오지.
얼굴로 평가?
우유 빛 나는 애기얼굴에 무슨 평가!
얼굴도 이십대는 되어야 얼굴이 나온다.
그럼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뭔가.
갓난아기가 젖을 잘 먹어야 하는 것처럼,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는 게
사회의 젖을 먹으며 적응하고 커가는 것이다.
학생의 역할, 신분도 모르면서 나이 먹은 사람의 흉내만 내며 인정해달란다.
나이 값이나 해라.
그 나이에 값은 공부다.
자기 일, 공부도 못하는 게 불만은 많다.
이게 민주의 생각, 철학이다.
쉬는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풀고 틈나는 대로 공부하는 게 학생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고은이와 민주는 정반대다.
그래도 둘의 공통점 한 가지는 절친한 친구라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준성이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2. 시작
“결판을 내자!”
고은이가 민주한테 화가 난 듯 소리를 지른다.
어깨를 나란히 걸어가던 민주가 고은이를 쳐다보며
“무슨 결판?”
고은이가 씹던 껌을 길거리에 퉤~뱉으면서
“준성이.... 내가 갖던가 너가 버리던가!“
민주가 조용히 웃으며 들릴락 말락 중얼거린다.
“준성이가 물건이냐, 누가 갖게?”
고은이가 더욱 화가 난다.
꼭 자기 꺼 들고 누구꺼긴 누구 꺼냐 내꺼지.. 하는 저 조용한 말투, 저 웃음.
민주가 남자였으면 그냥 발로 차는건데..
“내기를 해서 이긴 사람이 갖기로 하자. 지는 사람은 깨끗하게 물러나기.”
“무슨 내기를 할건데?”
민주가 마지못해 묻는다.
고은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에게 어려운 것을 시켜서 통과하면 이기기. 못하면 지는 거고, 준성이 포기하기”
민주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도 있잖아.”
“어휴, 바보야 서로 수긍 할 수는 있어야지.”
민주는 고은이가 바보라고 하는 말을 개의치 않고 씨-익 웃다가,
"알았어.“
고은이가 그 말을 듣자마자, 너 딱 걸렸어 하는 표정으로
“준성이에게 뽀뽀하기!”
“내가?”
민주가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고은이를 쳐다본다.
“그럼 네가 하지 내가 할까? 나야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
민주의 얼굴이 복잡한 표정으로 변한다.
“안 해!”
그 말 들은 고은이가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민주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럼... 껴안기, 그냥 양팔로 껴안으면 땡인데~?”
민주가 고개로 싫다고 흔들자 고은이가
“야! 그것도 안 되면 뭐하냐.. 참.....”
민주가 고개를 돌리더니
“우리 내기하지 말자.”
고은이가 ‘어... 이럼 안 되는데’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별수없지. 타협이라도 해야지.’ 다시 제안한다.
“참, 그럼.. 준성이 손잡기. 억지로 말고... 아니, 준성이가 너 손잡기, 그것도 부드럽게.”
고은이의 집요함을 떨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민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그래”
“민주야 너는 손목 잡히면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거 얘기해라."
민주가 한참을 고민한다.
‘쟤는 뽀뽀나 껴안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애이니깐 안 되고...뭘 해야 하지...’
고은이가 민주 어깨를 어깨로 툭 치며 재촉한다.
민주가 입을 뗀다.
“라울 법칙을 지윤이한테 알기 쉽게 설명해서 이해시키기.”
고은이가 눈을 크게 뜨며 민주를 쳐다본다. 과학에서 법칙의 법자만 나오면
두드러기나는 고은인데 그걸 고은이가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지윤이한테 이해시켜?
“웬, 라울법칙... 그게 뭔데!”
“오늘 화학시간에 라울법칙을 배웠는데.. 수업 끝나고 지윤이가 모르겠다고 하길래,
내가 설명을 해줬는데 이해 못하는 것 같더라.”
“그 돌탱이를 어떻게 이해시켜!”
“지윤이는 돌탱이 아냐. 너보다 반 등수 25등이나 높잖아.”
고은이네 반은 딱30명이다. 지윤이가 이번에 반5등을 했다.
“이건 너무 하잖아. 내가 이해하기도 힘든데 지윤이를 어떻게 이해시켜.”
민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한 목소리로
“그럼, 하지말자.”
이 말을 들은 고은이가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아냐, 그래 하자.”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이어서,
“너는 준성이한테 손목 잡히고, 나는 지윤이한테 라울인가 하는 법칙 이해시키고...,
일주일 후에, 아니 3일후에 결판내자.”
3. Round one
① 고은이
“지윤아, 라울법칙이란 용액에서 어떤 성분의 증기 압력은 그 자신의 몰분율에 비례한다.
그리고 증기압력이란, 증발과 응결이 같을때 즉 동적 평형상태일 때,
증기가 나타내는 압력을 말해. 다 이해됐지?”
“.....?”
지윤이가 ‘뭔소리여’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고은이도 지윤이 표정을 살피더니 ‘어느 부분이 빠졌나’ 고민하기 시작한다.
조금 후에 표정이 밝아지며
“아.. 몰분율이 어렵구나? 몰분율은 전체 몰수에서 성분 몰의 비율이거든.”
지윤이가 고은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전부 다 모르겠는데.”
고은이 얼굴이 한순간 변하더니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같다.
고은이가 지윤이를 어이없다는 듯이 보다가 눈을 옆으로 돌려 민주를 보며 눈치를 살핀다.
민주가 짐짓 딴 짓을 한다.
“알았어. 다시 설명 할게.”
고은이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설명할 준비를 한다.
“한국사람, 중국사람, 일본사람들이 보여서 누가 더 인내력이 있는가 시합을 한거야.
돼지우리에 돼지 열 마리를 넣고 각 나라마다 사람들 10명씩을 넣고
1시간 뒤에 누가 더 많이 남나 하는 시합이거든.”
고은이가 지윤이 얼굴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한국사람 10명이 돼지우리에 들어갔어.
1시간이 되니깐 일곱사람이 버티고 버티다 튀어 나왔어.
그리고 중국 사람들이 들어갔는데 다섯사람이 튀어 나왔고,
한국 사람은 1시간 뒤에 세사람 남고, 중국은 다섯사람 남은거지.“
여기까지 말하고 알겠냐는 듯이 지윤이를 쳐다본다.
지윤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주를 보며 씨-익 웃더니 고은이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여기서 돼지우리가 사람-돼지 용액이라면 튀어나오는 사람 수가 증기 압력이 되는거야.
한국은 증기압력이 일곱이고, 일본은 튀어나가는 증기압력이 다섯.
증기압력이 크면 튀어나가는 증기가 많다 그 얘기야.”
지윤이가 눈을 반짝이며
“그럼, 아까 말한 동적평형상태가 뭔데?”
고은이 눈이 빠르게 돌아간다.
“여기서 동적 평형이란...
시합을 하다가 예외란 없는거거든. 돼지우리에 있던 사람이
<저는 소변이 보고 싶거든요. 잠깐만>,
<저는 한 시간 참을 수 있는데 십분만 있다 갈래요> 등등...
이런 경우는 시합에서 인정이 안돼. 소변을 보게 되면 거기고 보고, 꾹꾹 참아서,
참을 때까지 인내력이 포화될 때까지 1시간동안 버텨야지. 그때를 동적평형상태라 하겠지.
그 상태에서(1시간 후) 한국 튀어나간 증기압력 일곱 명, 중국 증기압력 다섯 명."
지윤이가 이해됐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궁금한 듯이
”왜 차이가 나는거야. 우리는 증기압력 일곱 명, 중국은 다섯 명.“
고은이가 그건 뻔한 것 아니냐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야...참 궁금한 것도 많네. 그러니 남자친구가 없지.. 한국 사람이 많이 튀어 나왔단 얘기는
우리가 깨끗하단 거지. 그리고 서로 이기려고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잡아당기겠지,
참으라고 다독거리며, 이게 분자사이의 인력이고...
열나고 냄새나고 못살겠어서 막 움직이겠지, 이게 분자 운동에너지(EK=3/2kT)야.
인력과 운동에너지로 많이 버티고 못 버티고 나누어 지지.
증기압력은 이 둘 때문에 크고 작고 하는거야.”
“와~ 너 그거 인력, 운동에너지는 어디서 배웠냐?” 민주가 감동을 한다.
“그거야.. ㅁㅈ 한테 배웠지, 크크크... 아무튼 이해시키면 되잖아.”
지윤이가 조용히 무얼 생각하는 것 같다.
고은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이상한(모르는)질문 할까봐 미리 차단하기 위해 지윤이를 툭친다,
생각을 끊어놓을 마음으로..
“너 뭐 생각해!”
“아니, 궁금해서...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이상한 질문하면 어떻하나 긴장했던 고은이가 가슴이 놓인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일본 사람 열 명이 들어갔는데, 한참 후에 여덟이 튀어 나오는 거야.!”
“얘~ 그건 말도 안돼. 걔네들이 그렇게 깨끗하다고.”
지윤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큰소리 친다.
민주도 고은이에게 따지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자, 고은이가 얼른 소리치듯 먼저 말한다.
“돼지가....”
“... ??? !!!”
푸하하...낄낄낄....
한참 후 지윤이가 웃다말고
“돼지 증기압력은 여덟이네 ㅋㅋ”
“그래, 튀어나가는 증기압력이 여덟이지.
여기서 사람하고 돼지가 우리 안에 섞여 있는데, 돼지보다 사람이 더 많으면
사람이 더 많이 튀어나오고,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좁잖아. 사람이 많으니깐..
그리고 돼지가 더 많으면 돼지가 튀어나오는 압력이 더 크겠지.
이게「라울의 법칙」이야.”
지윤이가 감동어린 목소리로
“그래, 알겠어. 그런데 몰분율은 뭐야?”
고은이가 선생의 거만한 표정으로 웃음을 띠는 여유까지 가지고
“사람과 돼지 중에서 비율을 말하는 거야. 사람의 몰분율은 전체 중에서 사람 수의 비,
돼지의 몰분율은 전체 중에서 돼지 수의 비... 몰분율이 크면 증기압도 크다. 그러니깐
사람이 돼지보다 더 많으면 사람이 더 많이 튀어나간다. 이게 라울법칙이야.”
민주가 한마디 했다.
“감동이다.”
② 민주
고은이와 지윤이가 준성이쪽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
지윤이는 라울법칙 이해하면서 민주와 고은이의 시합도 알게 되어,
심판이 되겠다고 자청해 참여를 시켰다,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
복도에서 내내 서성이던 민주가 준성이가 교실의자에 앉자마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슬그머니 준성이 옆에 앉는다.
일찌감치 뒤에 앉아서 보고 있던 고은이, 지윤이가 킥킥대며 웃는다.
민주가 책가방에서 책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준성이한테 뭔가를 얘기한다.
준성이가 연필을 꺼내 쓰기 시작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던 고은이가 지윤이한테
“쟤네 뭔 소리 하는 거냐? 멀어서 들리질 않네.”
지윤이도 고개를 그쪽으로 하고 있다가는
“나도 들으려고 해도 안 들리네. 뭘 저렇게 속삭이냐?”
둘이 투덜거리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준성이가 민주의 손을 잡는다.
그러다 뭐라고 하고, 민주가 모르겠다는 표정 지으면 다시 준성이가 민주 손을 잡고...
여러 번 반복된다.
고은이와 지윤이에게 확실히 보라는 반복인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고은이 지윤이가 쪼르르 민주한테 달려간다.
“어떻게 한거야?”
민주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전기에서 플레밍 왼손법칙을 모른다고 했거든...”
4. Round two
① 고은이
“이것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데... 라울법칙도 힘들었는데, 무슨 뭐? 증기압력 내림?
이건 뭐냐?”
삼일 전에 고은이가 민주한테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다.
지윤이가 두 손을 가지런하게 무릎위에 얹어 놓고 고은이가 설명하기를 기다린다.
“저번에 돼지우리에서 사람이 튀어나가는 인원수가 증기압력이라고 했잖아”
“응”
“이번에는 돼지우리가 높아서 돼지는 못 튀어나가고 사람만 튀어나온다고 하자.
그러면 돼지가 많으면, 즉 돼지의 몰분율이 높아지면 사람의 비율이 떨어져서, 사람의 증기압력이 떨어지겠네.”
“응, 맞아”
“이걸 설탕물에다 적응시키면 되거든. 물이 사람, 설탕이 돼지라고 하면...
물은 증발되는데 설탕은 증발이 안 되거든.
물에 설탕을 조금씩 넣기 시작하면 설탕의 몰분율이 많아지고,
상대적으로 물의 몰분율이 작아져서 물이 튀어나오는 증기압력이 떨어지지”
“맞아, 그게 라울법칙이잖아.”
지윤이가 추임새를 넣는다.
“다 끝났네. 물에 설탕을 넣으면 넣을수록 물 증기압력이 떨어지겠네.
그 떨어진 증기압력차이를 증기압력 내림이라 하는 거야.”
오늘은 수월했다.
② 민주
“꺅”
민주는 고은이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웬, 뽀뽀!”
며칠 동안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그렇다고 안한다고 할 수도 없고.
벌써 오늘이다.
고은이와 지윤이는 교실 뒤쪽에 능글능글한 미소 짓고 앉아, 둘이서 계속 속닥거린다.
가서 쥐어박을 수도 없고...
준성이 옆에 앉기까지는 계획대로 잘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계획이 없다는 거다.
시간은 흘러가고 수업시간은 다가오고, 이 수업 끝나면 집으로 갈 테고 준성이를 만날 시간은
수업 전 지금 5분, 이 시간뿐이다.
‘어떡하나..’
책상위에 책을 펼치고 보고 있긴 있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온통 그 생각뿐이다.
고은이 지윤이도 지금 이시간이 마지막 기회란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지윤이 이해시키는 거라면 자신 있는데... 내가 고은이 한테 저번에 심한 문제를 냈나?’
‘그래도 잘했잖아.’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민주가 결정을 내린 듯 이빨을 한번 꽉 물고 나서, 안경을 갑자기 책상에 내려놓고 눈을
비빈다.
“어~눈에 뭐가 들어갔나.”
준성이가 들리게 중얼거렸다.
준성이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준성이가 쳐다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은데, 잘 안 빠지네.. 눈 좀 불어줄래?”
“잠깐만.”
준성이가 샤프를 책상위에 내려놓고 민주 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가슴 가득이 공기를 빨아들이면서 입술을 쑥 내미는데..
민주가 안경도 벗고 한눈은 뭐가 들어가서 안보이고, 방향감각을 잃은 듯,
왼쪽 눈을 과감하고 빠르게 위로 올려 준성이 쪽으로 다가간다.
고은이와 지윤이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
고은이와 지윤이가 볼 때는 민주가 두 손이 형식적으로 왼쪽 눈에 놓여 있다뿐이지 쑥내민
준성이 입술 쪽으로 민주의 입술이 빠르게 다가가는 모양새였다.
5. Round three
① 고은이
전쟁이다.
그 생각밖에 없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거다.
저번 게임에서 민주가 포기하고 끝날 줄 알았다.
‘그래, 끝까지 가는 거다. 준성이는 내껀데... 감히.’
“지윤아, 끓는점 오름이란...”
목소리를 최대한 깔았다.
그런 일로 속보이게 할 수는 없다.
“우선, 물이 끓는 것은 물이 튀어나가는 증기압력하고 대기압과 같으면 일어나는 거야.
내가 열 받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은 외부에서 열 받게 한 만큼-
같은 만큼 부글부글 끓는 거거든...”
민주를 한번 흘겨보고 계속이어서 말을 했다.
“증기압력이 큰 액체는 열을 받으면, 쉽게 증기 압력이 커져서 대기압과 금방 같아지지.
조금만 가열해도 증기압, 대기압이 같아져서 쉽게 끓는다. 즉, 끓는점이 낮아진다.”
지윤이가 고은이만 쳐다본다.
웬만하면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고은이의 아픈 마음을 아는 것처럼.
“...증기압력이 낮은 얘들은 한참 열은 받아야 대기압과 같아지고 즉, 끓는점이 높아지지.”
목이 탄다.
지윤이가 쪼르르 달려가더니 음료수 1개를 사온다.
“물에 설탕을 넣으면 물의 증기압력이 떨어지지. 설탕은 증발이 안되니깐..
설탕을 점점 더 넣을수록 물의 증기압력은 떨어지고, 증기압력이 떨어지니깐... 끓는점은 점점 올라가지.”
“아, 그래서 가열하면 소금물의 농도가 커져서 - 물 증기압력이 점점 떨어져서 -
소금물의 끓는점이 점점 올라가는구나!”
“그래, 끓는 물에 데일 때보다 끓는 간장(소금물)에 데이면 더 큰 화상을 입는다고 하잖아.”
② 민주
최악이다.
준성이를 끌어안으라니, 그것도 애들 다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은이는 친구가 아니다. 웬수다.
그 사건이후 며칠 동안 준성이 얼굴을 못보고 피해 다녔다.
그런데 이번 게임은 준성이를 못보는게 아니라 반 친구들 전체를 못보는게 아닌가, 걱정이다.
‘성공하면 혼삿길 막히고, 실패하면 준성이를 잃어버리고...’
도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되는가.
‘그래, 밀어붙이는 거다. 최선을 다한 다음에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는 거야!’
물리시간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준성이 옆에 앉았다.
“안녕!”
“으~응 안녕!”
서먹서먹하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고...
칠판을 쳐다봤다.
당연히 작용 - 반작용 뉴턴3법칙을 나가고 있다.
작용-반작용 예에 대해서 선생님이 설명을 자세하게 하신다.
“선생님!”
민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왜?”
“선생님, 관성부분은 알겠고 힘의 평형도 알겠는데,
작용-반작용은 감이 잘 안 잡히고 헷갈리네요.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엄청 진지하게 물어본다.
뒤에 앉아있던 고은이가 긴장하기 시작한다.
‘저것이 뭘 꾸미려고 그러나.’
“민주야, 지금 작용-반작용 두 번 설명했는데 어쩌냐?”
두 번째 설명이 끝났다는 걸 염두에 둔 민주는 시치미를 뚝 떼고, 열심히 들었는데
이해 안된다는 간절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쳐다본다.
“설명 또 하면 똑같을 것 같고 간단한 실험을 하자.”
“선생님, 둘이서 마주서서 한쪽이 밀면 민 사람도 힘을 받는다고 하던데...”
민주가 실험방향을 살짝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래, 그럼 거기 민주와 준성이 나와 봐라.”
민주가 머뭇거리며 마지못해 일어나서 나갔다.
뒤에서 보고 있던 고은이가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저 여우같은 게 무슨 일을 꾸미려고 그러지?’
“민주야, 너는 두 손바닥 바깥쪽을 향하게 쭉 내밀어 봐라. 넘어질 수 있으니
민주 두발은 나란히 두지 말고 한발은 뒤로 빼라.
그리고 준성이가 두발 붙이고 두 손으로 밀어봐라.
민주는 준성이 움직임 잘 관찰하고..”
준성이가 민주 두 손을 향해 두 손으로 밀친다.
그 순간이었다.
민주가 두 손을 살짝 내렸다. 두 손이 힘들어서 내리는 것처럼,
공주가 ‘아이 귀찮아’ 하는 것 처럼.
아무 생각없이 밀던 준성이가 놀라서 두 손을 벌렸다. 오므리고 밀면 안 되니깐(?)
준성이가 민주한테 상체가 빠르게 다가왔다.
민주가 눈을 더 크게 뜨고 놀래는 척하며 두 팔을 살짝 벌렸다.
잠시 잠깐, 한순간 다른 애들은 못 보았겠지만, 고은이와 지윤이는 보았다,
민주의 여우처럼 교활하게 웃는 미소를.
민주가 쑥스러워하며 애교 넘치는 귀여운 목소리로 자그마하게 말했다.
“어머나!”
------------------------------------------------<끝> 박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