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원과 보계를 거쳐 이번에는 진령산맥 남쪽, 제갈량 북벌의 총지휘본부였던 **한중(漢中)**으로 내려왔습니다.
**고한대(古漢台)**는 삼국지 역사에서 **'한(漢)나라가 시작된 곳이자, 한나라를 부흥시키려 했던 제갈량의 의지가 서린 거점'**입니다. 현재는 한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과 제갈량의 깊은 인연을 소개해 드립니다.
## 1. 한(漢)의 시작과 제갈량의 '흥복한실'
고한대는 본래 삼국지 시기보다 훨씬 전인 초한지 시절, **고조 유방**이 항우에게 밀려 한왕(漢王)으로 봉해졌을 때 머물던 왕궁의 터였습니다. 유방은 이곳 한중을 발판 삼아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를 세웠죠. 중국 주류 민족을 뜻하는 '한족(漢族)', 이들이 쓰는 글자인 '한자(漢字)'라는 이름이 모두 이 고한대와 한중이라는 지명에서 출발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유방의 후손인 유비가 촉한을 세우고, 제갈량이 평생의 목표로 삼은 슬로건이 바로 **'흥복한실(興復漢室, 한나라 황실을 다시 일으키다)'**이었습니다.
제갈량이 5차례의 북벌을 감행하는 8년 동안 전진기지로 삼았던 곳이 바로 유방이 대업을 시작했던 이곳 한중이었으며, 그 중심에 고한대가 있었습니다. 즉, 제갈량에게 한중과 고한대는 단순한 군사 기지를 넘어 **"우리 왕조의 뿌리를 되찾겠다"**는 강력한 명분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 2. 고한대박물관에 남아있는 제갈량의 흔적: 원섭첩(远涉帖)
지략가로 유명한 제갈량은 사실 **글씨(서예)에도 매우 뛰어난 대가**였습니다. 송나라 때 황실의 서화들을 정리한 책인 《선화서보》에는 촉나라 서예가로 오직 제갈량 한 사람만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 고한대(한중박물관)에는 왕희지가 임모(글씨를 본떠 씀)한 것으로 전해지는 제갈량의 친필 서체, **《원섭첩(远涉帖)》**의 비석 각본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글귀에는 북벌 당시 제갈량의 고뇌와 험난했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 **"군사들을 이끌고 멀리 길을 나서니 도로가 너무나 험난하구나. 보사잔도(褒斜棧道)에 이르고 나니 다행히 모두가 무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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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구멍을 뚫어 만든 아슬아슬한 잔도를 통과하며 군사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승상의 따뜻하고도 비장한 마음이 천년이 지난 지금도 고한대에 유물로 남아 숨 쉬고 있습니다.
## 3. 또 다른 삼국지 보물, 조조의 '곤설(滚雪)'
고한대 내부에는 제갈량의 흔적뿐만 아니라, 잔도를 뚫으며 깎아낸 암벽에 새겨진 고대 서예 작품들을 모아놓은 **'석문십삼품(石门十三品)'** 전시관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제갈량의 숙적이었던 **조조가 직접 쓴 '곤설(滚雪)'**이라는 귀한 친필 석각도 함께 보관되어 있습니다. 한중을 손에 넣었던 조조가 세차게 소용돌이치며 하얗게 부서지는 강물을 보고 "마치 눈이 구르는 것 같구나!" 감탄하며 남긴 글씨입니다. 한 공간에서 조조의 호방함과 제갈량의 비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삼국지 마니아들의 성지인 셈입니다.
결국 고한대는 한나라를 열었던 유방의 '웅장한 시작'과, 그 한나라를 끝까지 지키려 피를 토했던 제갈량의 '위대한 마침표'가 만나는 역사적인 교차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