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운랑과 검문관을 지나 다음으로 발길이 닿는 곳은, 촉한의 운명을 완전히 뒤흔든 비극의 현장 **강유관(江油關)**입니다. 현재 사천성 면양시 평무현(平武縣) 남바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219년 유비가 조위(曹魏)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강유수(江油戍)'라는 군사 기지를 세우면서 시작된 요새입니다. 정면의 거대한 방패가 검문관이었다면, 강유관은 험난한 산맥 사이에 숨겨진 좁은 뒷문 같은 곳이었죠.
현재의 강유관은 번듯한 관광지로 재건되어 있지만, 서기 263년 촉한 멸망 당시에는 위나라 명장 등애(鄧艾)의 불가능천만한 '기적의 등산 작전'이 막을 내린 종착지이자 촉한 몰락의 신호탄이었습니다.
### 등애의 음평고도 작전과 강유관의 허망한 추락
당시 촉한의 대장군 강유(姜維)는 검문관에서 종회(鍾會)의 10만 대군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었습니다. 정면 돌파가 불가능해지자 위나라의 등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지옥의 코스를 선택합니다. 바로 사람이 살지 않는 험준한 산악 지대인 **음평고도(陰平古道)**를 타고 700리(약 280km)를 우회하는 작전이었죠.
길도 없는 절벽을 깎아 다리를 만들고, 길이 끊기면 모포로 몸을 감싼 채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전진한 끝에, 등애의 군대는 만신창이가 된 채로 이곳 강유관 앞에 기적처럼 나타났습니다.
당시 강유관을 지키던 촉나라 장수는 **마막(馬邈)**이었습니다.
* **삼국지연의의 묘사:** 마막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위나라 군대를 보고 겁에 질려 싸워보지도 않고 성문을 열어 항복합니다. 그의 아내 이씨가 항복하려는 남편을 꾸짖다 자결하는 비극적인 서사가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 **역사의 기록:** 정사 기록을 보면 관문 외곽에서 짧은 교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등애의 기습에 허를 찔린 마막이 성을 바치고 항복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 **장사함노, 발도착석(將士咸怒, 拔刀斫石)**
> 강유관이 뚫리면서 수도 성도(成都)로 가는 길이 완전히 열려버렸습니다. 정면의 검문관에서 목숨 걸고 위나라 본대를 막고 있던 강유와 촉나라 군사들은 뒤늦게 황제 유선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 칼을 뽑아 길가에 있는 바위를 내리치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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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관의 허망한 함락은 천혜의 요새 검문관을 한순간에 무력화시켰고, 촉한의 심장에 치명타를 날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