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사천성 분지의 주요 도시인 면양시(绵阳市)에 다다릅니다. 이곳 서산공원(西山公园)의 울창한 숲속에는 제갈량의 뒤를 이어 촉한을 이끌었던 제2대 승상(정확히는 대장군 겸 녹상서사), **장완(蒋琬)**의 묘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갈량이라는 거대한 태양이 저문 후, 흔들리던 촉한을 12년간 굳건하게 지탱해 낸 인물이 바로 장완입니다. 제갈량, 비의, 동윤과 함께 **촉한사상(蜀漢四相)**으로 칭송받는 명재상이죠.
### 왜 한중이나 성도가 아닌 '면양'에 묻혔을까?
제갈량이 사후 한중 정군산에 묻힌 것과 달리, 장완은 왜 당시 '부현(涪縣)'이라 불리던 이곳 면양에 묻혔을까요? 여기에는 그의 마지막 북벌 전략과 건강 악화라는 안타까운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 **수로를 이용한 새로운 북벌 계획:** 장완은 제갈량이 험난한 산길(진령산맥)을 걷다 보급 문제로 실패한 것을 거울삼아, 면양의 부강(涪江)과 가릉강을 타고 위나라의 위흥이나 상용을 기습하는 '수로 북벌'을 구상했습니다.
* **의지의 좌절과 최후:** 이를 위해 243년 군대를 이끌고 최전선인 한중에서 이곳 면양(부현)으로 본진을 옮겨왔습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지병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칼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한 채 246년 이곳에서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 유선이 내린 시호 '공후(恭侯)'와 장완의 인품
> **"지위가 높아져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늘 침착하고 도량이 넓어 제갈량의 빈자리를 완벽히 메웠다."** — 정사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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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자 촉한의 황제 유선은 늘 공손하고 충성스러웠던 그에게 '공후(恭侯)'라는 시호를 내리고 국가적인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현재의 장완묘는 고요하고 아늑한 정원 형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삼국지 마니아들이 북벌의 험난한 요새(검문관, 강유관)를 둘러본 뒤, 촉한을 지키기 위해 고뇌했던 한 재상의 넋을 기리며 조용히 사색에 잠기기 좋은 숨은 명소입니다. 바로 옆에는 삼국시대 촉나라 사상가 양웅을 기리는 자운정(子云亭)도 함께 있어 연계해 둘러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