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장완(蔣琬)과 강유(姜維)의 사이는 아주 좋았습니다.** 두 사람은 제갈량 사후 촉나라를 이끌며 서로 깊이 신뢰하고 협력했던 관계입니다.
간혹 제갈량 사후 촉나라 지휘부 내에서 북벌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는 인상 때문에 두 사람의 사이가 나빴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실제 역사 속 두 사람의 관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1. 제갈량이 이어준 신뢰 관계
제갈량은 죽기 전, 촉나라의 내정과 정치는 장완(그리고 비의)에게 맡기고,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강유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라는 유훈을 남겼습니다.
특히 제갈량이 장완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유를 엄청나게 극찬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강유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충성스럽고 성실하며 사려가 깊소. 영남 지역의 인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군사적 재능을 가졌으니, 그에게 군사 훈련을 맡겨 재능을 발휘하게 해야 하오."
>
장완은 스승인 제갈량의 안목을 그대로 믿었고, 권력을 잡은 뒤 강유를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 2. 장완의 전폭적인 신뢰와 공동 작전
장완이 촉나라의 최고 권력자(대사마)가 된 후, 강유는 장완의 핵심 참모이자 오른팔로 활약했습니다.
* **상용 기습 작전 공동 기획:** 238년, 장완과 강유는 위나라의 상용 지역을 수로(물길)로 급습하려는 거대한 북벌 작전을 함께 세웠습니다. 비록 장완의 고질적인 지병 때문에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이 군사적으로 긴밀하게 호응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 **강유를 서쪽 전선의 사령관으로 임명:** 장완은 자신의 몸이 아파 직접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강유를 **진서대장군**이자 **양주자사**로 임명하며 서쪽 국경(위나라 및 강족 민족 접경지)의 전권을 맡겼습니다. "내가 뒤를 받칠 테니, 지휘 능력이 뛰어난 강유 네가 선봉에 서라"는 식의 완벽한 역할 분담이었습니다.
### 💡 왜 사이가 안 좋았다는 오해가 생겼을까?
유저님이 제갈량 사후 촉나라 지휘부의 갈등을 기억하신다면, 그것은 장완이 아니라 **그 다음 후계자인 '비의(費禕)'와의 관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장완이 죽고 정권을 잡은 **비의**는 철저한 '현상 유지 및 내실 다지기' 학파였습니다. 공격적인 북벌을 원하는 강유에게 비의는 항상 이렇게 말하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 "우리 실력은 제갈 승상보다 한참 못하네. 승상께서도 못한 위나라 중원 정벌을 우리가 어찌 하겠나? 그저 나라를 잘 지키고 백성을 기르는 게 상책일세."
>
이 때문에 비의는 강유가 북벌을 가려고 할 때마다 군사를 딱 **1만 명 이하**로만 제한해서 주었습니다. 이 시기 강유가 품었던 군사적 답답함과 두 사람의 전략적 이견 때문에 '제갈량 사후 후계자들끼리 사이가 안 좋았다'는 인상이 남게 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장완은 강유를 전적으로 믿고 큰 무대를 열어주려 했던 든든한 지원군이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불화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