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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역사

[제미나이]장노가 도망가면서 군량미를 불태우지 않은 이유는?

작성자산들바람|작성시간26.06.23|조회수13 목록 댓글 0

장노가 도망치면서 군량미와 보물 창고를 불태우지 않은 것은, 난세의 군주들에게서 보기 드문 **종교적 신념**과 **공공재에 대한 뚜렷한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부하들은 조조군이 군량미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전부 불태우는 이른바 '청야 전술'을 제안했지만, 장노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며 창고를 굳게 봉인만 하고 떠났습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1. "내 개인 재산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다"

장노는 비록 한중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한나라를 뒤엎을 반역자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창고에 쌓인 곡식과 보물을 자신이 백성들에게서 수탈한 전리품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해야 할 공공의 재산**으로 보았습니다.

> **당시 장노가 남긴 말 (삼국지 위서 장노전)**

> "나는 본래 조정(국가)에 귀순하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해 잠시 피해 가는 것일 뿐, 조조 대장군에게 악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 창고의 보물과 군량은 모두 국가의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
>
### 2. 오두미교의 '낭비 금지'와 '자비' 교리

장노는 종교 집단인 오두미교의 최고 지도자(사군)였습니다. 오두미교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음식을 낭비하거나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길거리에 무료 급식소(의사)를 만들어 굶주린 이들을 먹이던 자비의 종교였기에, 아무리 적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수많은 백성을 먹일 수 있는 거대한 양의 곡식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것은 장노의 종교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 3. 조조와의 협상을 염두에 둔 '정치적 포석'

감정적으로 조조와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는 생각이 아니었기에, 퇴로를 열어두는 영리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곡식을 불태우며 초토화 작전을 쓰면 조조의 엄청난 분노를 사서 나중에 붙잡혔을 때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창고를 온전히 보존해 넘겨주면 자신이 조조에게 적대감이 없음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 결과: 조조를 감동시킨 신의 한 수

이 선택은 장노와 그의 가문을 구한 최고의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남정에 입성한 조조는 깨끗하게 봉인된 창고와 장노의 깊은 뜻을 보고 **"참으로 착한 사람이다"**라며 크게 감동했습니다. 결국 몇 달 뒤 장노가 완전히 항복했을 때, 조조는 그를 제후(진남장군, 낭중후)로 임명하고 그의 다섯 아들에게 모두 높은 관직을 주어 가문을 풍요롭게 번창하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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