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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역사

[제미나이]장합과 삼국지

작성자산들바람|작성시간26.06.23|조회수9 목록 댓글 0

앞서 이야기한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이 전사했을 때, 위기 일발의 위나라 군대를 구해낸 장수가 바로 **장합(張郃)**입니다.

장합은 조조 휘하의 다섯 명장인 **'오자양장(五子良將)'** 중 한 명으로, 황건적의 난(184년) 시절부터 촉나라 제갈량의 4차 북벌(231년)까지 약 50년간 최전선을 누빈 **삼국지의 산증인이자 최고의 베테랑**이었습니다.

## 장합의 50년 군공기

* 원소 밑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184년 ~ 200년
황건적의 난 때 군을 이끌며 등장한 후 원소의 부하로 활약했습니다. 공손찬을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우며 명성을 떨쳤으나, 관도대전(200년) 당시 원소의 참모인 곽도의 모함을 받아 조조에게 투항하게 됩니다.

* 조조의 날개가 되다
200년 ~ 219년
조조는 장합을 얻자 "한신이 유방에게 온 것과 같다"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후 오환족 토벌, 장로 토벌 등 조조가 가는 거의 모든 주요 전장에서 핵심 장수로 활약했습니다.

* 정군산의 구원투수
219년
하후연이 급작스럽게 전사하자 혼란에 빠진 군대를 수습하여 유비의 맹공을 막아냈습니다. 유비마저도 "하후연이 아니라 장합의 목을 베었어야 했는데!"라며 그를 하후연보다 훨씬 더 경계했습니다.

* 가정 전투, 제갈량을 무릎 꿇리다
228년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촉나라의 요충지였던 '가정(街亭)'에서 산 위에 진을 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마속을 격파했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베어야 했고(읍참마속), 1차 북벌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 목문도에서의 최후
231년
제갈량의 4차 북벌 당시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하다가, 목문도(木門道)라는 계곡에서 촉군의 화살 매복에 걸려 전사했습니다. 당시 위나라 총사령관이었던 사마의의 무리한 추격 명령 때문이었다는 정사의 기록이 있어, 사마의의 시기 질투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 제갈량이 가장 두려워한 장수

삼국지 정사(역사서)를 쓴 진수는 장합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 "변화에 능하고 진형의 배치를 잘 다루었으며, 전술과 지형을 예측하는 데 뛰어났다. 제갈량 이하 촉나라의 모든 이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
장합은 여포나 관우처럼 개인의 무력이 압도적인 장수라기보다는, **지형을 읽고 군사를 부리는 지략이 뛰어난 '덕장'이자 '지장'**이었습니다. 조조 시대에 쟁쟁한 명장들이 다 죽고 난 후, 조예(조조의 손자) 시대에 이르러 장합은 위나라 최고의 보물이자 촉나라에게는 거대한 벽이 되었습니다.

## 소설(연의)이 바꾼 장합의 이미지

우리가 흔히 읽는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합의 위상이 조금 깎인 면이 있습니다. 장비에게 술책으로 당해 대패하거나, 조운(조자룡)의 무력에 겁을 먹고 달아나는 등 유비 진영 장수들의 강력함을 돋보이게 하는 '전투력 측정기'처럼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 장합은 유비와 제갈량이 전술을 짤 때 **"장합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가장 먼저 체크했을 정도로 노련하고 무서운 supreme commander(최고 사령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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