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맞습니다! **당 현종은 실제로 한중(漢中) 땅을 밟았습니다.**
방금 전 이야기 나눈 '석문잔도'와 '촉도'의 지리적 배경과 정확히 연결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당 현종이 한중에 오게 된 것은 여행이나 순행이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피난길이었던 **'안록산의 난(756년)'** 때문이었습니다.
장안(현재의 시안)에서 사천성 성도(청두)로 도망치기 위해서는 진령산맥의 험난한 잔도를 넘어 **반드시 한중을 거쳐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 양귀비를 잃고 눈물로 넘은 한중길
당 현종의 한중행은 역사와 문학에서 매우 가슴 아픈 참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마외역의 비극:** 안록산의 반군이 수도 장안을 압박하자, 현종은 양귀비와 친인척들을 데리고 급히 촉나라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장안을 떠나 얼마 못 간 '마외역'이라는 곳에서 호위 군사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나라를 망친 주범인 양귀비와 그 사촌 오빠 양국충을 죽이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협박이었죠. 결국 현종은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하게 됩니다.**
* **험난한 촉도와의 사투:** 촉나라 시인 이백이 *"촉나라 길 가기란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구나(蜀道難)"*라고 노래했던 그 험난한 절벽 길을, 70세가 넘은 은퇴 직전의 늙은 황제가 시름에 잠긴 채 통과해야 했습니다.
* **한중(당시 명칭 '양주') 도착:** 진령산맥의 험한 잔도를 간신히 빠져나온 현종과 피난 행렬은 마침내 분지 지형인 **한중(당시 행정구역명 양주 梁州)**에 도착해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현종은 이곳 한중에서 며칠간 머물며 흐트러진 군대를 수습하고 양식을 보충한 뒤, 다시 잔도를 따라 최종 목적지인 성도(청두)로 향했습니다.
## 지리적 요충지, 한중의 증명
유비가 조조를 꺾고 왕이 되었던 한중은 이처럼 당나라 시대에도 **'중원(장안)과 사천성을 연결하는 유일한 관문'**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황제가 직접 이 험한 길을 걸어 한중을 지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과거 삼국지 시대에 제갈량이 왜 그토록 이 길을 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벌을 감행했는지를 반증하는 역사적 명장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