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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역사

[제미나이]유비는 설단처에서 기꺼이 왕에 올랐나요?

작성자산들바람|작성시간26.06.23|조회수12 목록 댓글 0

역사 속 영웅들의 명분 싸움을 정확히 짚어내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유비는 속으로 그 자리를 간절히 원했겠지만, 겉으로는 **'기꺼이'가 아니라 '대단히 마지못해, 눈물을 머금고'** 왕위에 오르는 정교한 연출을 해야 했습니다.

앞서 조비가 황제가 될 때 '3번 거절하는 쇼'를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유비의 한중왕 즉위식 역시 **자신의 평생 브랜드인 '한나라의 충신'이라는 명분을 지키기 위한 지독한 정치적 밀당**이었습니다.

그가 기쁜 내색을 숨기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세 가지로 정리해 드립니다.

### 1. '황제의 허락 없는 왕'이라는 치명적인 약점

한나라의 시조 유방은 과거 백마를 잡아 피를 나누며 **"유씨 성을 가진 자가 아니면 왕이 될 수 없고, 공이 없는 자는 왕이 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천하가 함께 치리라"**는 엄격한 철칙을 세웠습니다.

유비는 유씨 성을 가졌고 한중을 장악한 공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현재 황제(헌제)의 정식 임명장(조서)**이 없었습니다. 조조가 헌제를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비가 냉큼 "좋다!" 하고 왕이 되면, 겉으로는 조조와 다를 바 없는 '반역자'로 몰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 2. 신하들의 '강요된 상소'라는 무대 연출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갈량과 법정은 철저한 기획을 준비합니다. 유비가 스스로 왕이 된 게 아니라, **"신하들과 백성들이 울부짖으며 제발 왕이 되어달라고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맡았다"**는 그림을 만든 것입니다.

* 제갈량, 마초, 법정 등 무려 **120여 명의 고위 문무백관이 연명한 상소문**을 유비에게 바쳤습니다.

* "지금 조조가 찬탈을 노리는데, 장군께서 명격을 높여 대항하지 않으면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천하의 의인들이 실망합니다"라는 논리였습니다. 유비는 이를 몇 번 사양하다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 3. 황제에게 올린 눈물의 변명 (표문)

유비는 설단처에서 한중왕에 오른 직후, 허창에 있는 헌제에게 표문(편지)을 보냈습니다. 조조 때문에 전달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천하 백성들이 보라고 올린 프로파간다였습니다.

> "폐하, 부족한 제가 감히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은 결코 사사로운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역적 조조를 처단하고 한나라 왕실을 구하기 위해, 신하들의 뜻에 떠밀려 임시로 직책을 맡은 것뿐입니다. 대업을 완수하면 즉시 왕의 인장을 폐하께 반납하겠습니다."
>
### 요약하자면

조비의 양위가 **"나 이제 황제 한다!"**라는 권력욕의 당당한 선포였다면, 유비의 한중왕 등극은 **"내가 조조라는 괴물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권력의 칼을 빌리는 것뿐이다"**라는 서글픈 호소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유비는 설단처에서 누구보다 기뻤겠지만, 겉으로는 철저하게 엄숙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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