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후반부, 오호대장군의 필두인 **관우**의 무시무시한 명성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위의 명장 **방덕(龐德)**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의 조우는 서기 219년 '번성 전투'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는 삼국지 역사상 가장 뜨겁고도 비장한 명장들의 혈투이자 대를 이은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 1. 의심을 깨부수기 위해 '관(棺)'을 짜서 출전한 방덕
방덕은 원래 서량의 용장 마초의 심복이었습니다. 마초가 유비에게 항복할 때 홀로 위나라에 남아 조조의 장수가 되었죠. 그러다 보니 번성 전투가 터졌을 때 위나라 조정에서는 그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방덕의 옛 주군(마초)과 친형(방유)이 모두 촉나라에 있는데, 그에게 군사를 주어 관우를 막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심이 쏟아진 것입니다.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해야 했던 방덕은 출진하기 전, **자신이 들어갈 목관을 직접 짜서** 마차에 싣고 조조와 군사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 "내가 관우를 죽여 그 목을 이 관에 담아오거나, 아니면 내가 관우에게 죽어 이 관에 담겨 돌아오겠다!"
>
이 목숨을 건 배수의 진은 흔들리던 위나라 군대의 사기를 단숨에 끌어올렸고, 조조마저 그의 기개에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 2. '백마장군'의 맹활약과 관우의 부상
전장에 도착한 방덕은 항상 흰 말을 타고 선봉에서 적들을 쓸어버려 촉군 사이에서 **'백마장군'**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관우와의 정면 대결에서도 방덕은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두 명장이 수십 합을 겨루며 팽팽하게 맞서던 중, 방덕은 거짓으로 패해 달아나는 척하다가 뒤를 돌바 서서 **관우의 왼팔(혹은 이마)에 화살을 명중**시켰습니다. 천하의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떨어뜨리고 부상을 입어 후퇴했을 정도로 방덕의 무예와 기세는 매서웠습니다.
## 3. 수몰칠군(水淹七軍)과 엇갈린 영웅들의 최후
하지만 하늘의 기운은 관우의 편이었습니다. 가을 장마로 한수가 범람하자, 관우는 물길을 터 위나라 대군을 수몰시키는 **'수몰칠군'** 계책을 성공시킵니다.
위나라의 명장이자 총사령관이었던 우금은 목숨을 구걸하며 관우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방덕은 물에 잠긴 상황에서도 부하들과 함께 작은 배 위에서 끝까지 활을 쏘며 저항하다가 배가 뒤집혀 포로로 잡혔습니다.
생포된 방덕 앞에 선 관우는 그의 용맹함을 아끼며 포섭하려 했습니다.
*"네 형과 옛 주군이 모두 우리 촉나라에 있으니, 내 밑으로 들어오면 장수로 삼아주겠다."*
그러나 방덕은 눈을 부릅뜨고 유비와 관우를 역적이라 욕하며 외쳤습니다.
> "위왕(조조)께서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하를 호령하시나, 너희 유비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내가 국가의 귀신이 될지언정, 어찌 역적의 장수가 되겠느냐! 어서 목을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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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그의 굳은 절개에 탄복하면서도, 끝내 회유할 수 없음을 알고 눈물을 머금고 방덕의 목을 베었습니다.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 우금의 비겁함에 분노하고, 방덕의 의로운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 4. 대를 이은 비극적인 복수극
두 영웅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져 더 큰 비극을 낳았습니다.
방덕이 죽은 지 40여 년이 흐른 뒤인 서기 263년, 위나라가 촉나라를 멸망시킬 때 위의 장수로 참여한 방덕의 아들 **방회(龐會)**가 성도에 입성했습니다. 방회는 아버지를 죽인 관우 가문에 복수하기 위해, 당시 성도에 살고 있던 **관우의 후손들을 단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몰살**해 버렸습니다.
결국 관우와 방덕의 만남은 서로에게 칼을 겨눈 파멸의 관계였지만, 난세 속에서 각자의 군주를 향해 보여준 **지극한 충성심과 꺾이지 않는 자존심**만큼은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했던 명장들의 순간으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