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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역사

[제미나이]관우는 오만한 사람이었을까요?

작성자산들바람|작성시간26.06.23|조회수11 목록 댓글 0

냉정하게 역사적 사실(정사)과 소설(연의) 모두를 살펴봤을 때, **네, 관우는 대단히 오만하고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대중문화 속에서 그를 허점 없는 '무신(武神)'이나 '의리의 화신'으로 기억하지만, 역사 속 관우의 인생을 결국 파멸로 이끈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바로 그 **오만함과 독선**이었습니다. 그의 오만함이 유독 잘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 1. 동료들을 철저히 아래로 보았던 성격

관우는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료 장수들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 **"늙은 군졸과는 함께 벼슬하지 않겠다" (황충 무시):**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뒤 관우를 전장군, 노장 황충을 후장군으로 임명하자, 관우는 "장부라면 어찌 저런 늙은 군졸과 같은 반열에 서겠는가!"라며 황충을 모욕하고 임명장을 받지 않으려 떼를 썼습니다. 사신이 겨우 달래서 직책을 맡긴 일화가 유명합니다.

* **제갈량에게 보낸 확인 편지 (마초 견제):** 명장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하자,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내 "마초의 능력이 누구 정도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확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죠. 눈치 빠른 제갈량이 "장비 정도와 겨룰 순 있으나, 수염이 아름다운 그대(관우)의 독보적인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아부성 답장을 보내자, 관우는 크게 기뻐하며 이 편지를 손님들에게 돌려가며 자랑했습니다.

## 2. 국가 외교를 파탄 낸 "호부견자(虎父犬子)"

관우의 오만함이 낳은 최악의 외교 참사는 손권과의 관계에서 터졌습니다. 오나라의 지배자 손권이 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결혼시키자고 제안(혼담)을 보냈을 때의 일입니다.

정상적인 정치가라면 거절하더라도 외교적 수사를 썼어야 했지만, 관우는 손권의 사신 앞에서 이렇게 호통을 치며 쫓아냈습니다.
> **"호랑이의 새끼를 어찌 개의 자식에게 시집보내겠느냐!"**
>
한 세력의 주군인 손권을 '개'에 비유하며 엄청난 모욕을 준 것입니다. 이 오만방자한 태도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손권은 결국 조조와 손을 잡고 관우의 뒤통수를 칠 결심을 하게 됩니다.

## 3. 부하들을 멸시하다 당한 배신

관우는 말단 군사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지만, 오히려 지위가 있는 사대부나 관료 부하들은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형주를 비우고 번성을 공격하러 갈 때, 후방 보급을 맡았던 미방(유비의 처남)과 부사인이 보급을 조금 늦추자 관우는 **"내가 돌아가면 너희들부터 처단하겠다"**며 대놓고 협박했습니다. 평소에도 관우에게 멸시를 당해 불만이 가득했던 두 사람은 오나라 군대가 밀고 들어오자 싸워보지도 않고 성문을 열어 항복해 버렸습니다. 믿었던 부하들의 배신으로 관우는 도망칠 곳을 잃고 맥성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 역사학자의 냉정한 한줄평

삼국지의 저자 진수(陳壽)는 관우의 열전 마지막에 그의 성격을 아주 정확하게 꿰뚫는 평가를 남겼습니다.
> **"관우는 굳세고 교만하며,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했다. 그는 자신의 단점으로 인해 결국 파멸에 이르렀다."**
>
흥미롭게도 의형제였던 장비는 '유지식인(선비)들을 존경하고 군사들을 난폭하게 대하다가' 부하에게 암살당했고, 관우는 '군사들을 사랑하고 지식인과 권력자들을 개 무시하다가' 파멸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셈입니다.

결국 관우는 완벽한 신이 아니라, **"능력이 너무 출중한 나머지 타인을 인정할 줄 몰랐던, 지극히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영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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