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17년 4월 9일부터 5월 16일까지 프랑스 북부 아라스 근방에서 벌어진 **아라스 전투(Battle of Arras)**는 앞서 살펴본 독일군의 '힌덴부르크 라인'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영국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프랑스군의 대공세(니벨 공세)를 지원하기 위해 독일군의 방어선을 정면으로 몰아친 대규모 공세였습니다.
### 1. 지하 도시에서 시작된 기습 (웰링턴 채석장 터널)
아라스 주변은 과거 중세 시대부터 석회암을 캐던 지하 채석장 터널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습니다. 영국군은 연합군 공병들을 동원해 이 지하 동굴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전기, 수도, 병원까지 갖춘 **거대한 지하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공세 당일 아침, 독일군의 철저한 감시를 피해 **지하에 숨어 있던 2만 4,000명의 연합군 병사들이 독일군 참호 바로 앞 땅속에서 동시에 솟구쳐 나오며** 대기습을 감행했습니다. 이 기습으로 초반에는 독일군 전선을 빠르게 돌파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 2. 캐나다의 탄생이라 불리는 '비미 고지 전투'
아라스 전투의 가장 빛나는 성과는 북쪽 외곽에 있던 전략적 요충지, **비미 고지(Vimy Ridge)**를 탈환한 것이었습니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끝내 차지하지 못했던 난공불락의 고지였으나, 이번에는 캐나다군 4개 사단이 연합해 철저한 사전 훈련과 새로운 포병 전술(크리핑 바라지, creeping barrage)을 도입하여 단 사흘 만에 고지를 완벽히 점령했습니다.
> 🇨🇦 **역사적 의미:** 이 전투는 캐나다인들이 영국군의 일부가 아닌 '캐나다군'이라는 독자적인 정체성과 자부심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 캐나다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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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늘을 붉게 물들인 '피의 4월 (Bloody April)'
지상전 못지않게 공중전도 참혹했습니다. 당시 영국 공군은 지상군을 지원하기 위해 무리하게 정찰기를 띄웠으나, 성능이 훨씬 뛰어난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던 독일 공군에게 무차별 격추를 당했습니다.
이 한 달 동안 영국군은 무려 240여 대의 항공기와 수백 명의 조종사를 잃었습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최고의 에이스인 **'붉은 남작(Red Baron)'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이 이끄는 부대가 맹활약하며 연합군 비행사들에게 공포를 안겨준 시기이기도 합니다.
### 📉 전투의 결과와 비극
초반의 기습 성공과 비미 고지 점령이라는 큰 성과가 있었지만, 힌덴부르크 라인을 기반으로 한 독일군의 완강한 종심 방어벽에 가로막히면서 결국 아라스 전투 역시 지루한 소모전으로 흘러갔습니다.
약 한 달간의 짧은 전투 기간 동안 **영국군 약 15만 명, 독일군 약 12만~13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하루 평균 사상자 수로 따지면 그 끔찍했던 솜 전투나 베르댕 전투보다도 더 높은 수치였습니다. 게다가 원래 목적이었던 프랑스군의 대공세가 완전히 실패로 끝나면서, 아라스 전투는 전략적으로 전쟁을 끝내는 결정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 참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에도 아라스에서 전차전이 벌어졌으나, 대개 역사에서 '아라스 전투'라고 하면 이 1917년의 참호전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