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외국의 역사

[제미나이]유비가 서서를 얻지 못한 이유는?

작성자산들바람|작성시간26.06.23|조회수13 목록 댓글 0

정확히는 유비가 서서(徐庶)를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참모로 얻었다가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빼앗긴 것'**에 가깝습니다.

신야성 시절 유비의 첫 번째 정식 군사(책사)가 된 서서는 조조군의 명장 조인이 펼친 복잡한 진법인 '팔문금쇄진'을 귀신같이 깨부수며 유비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유비는 드디어 자신에게도 날개가 달렸다고 기뻐했으나, 얼마 못 가 서서는 눈물을 흘리며 유비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어머니를 향한 서서의 깊은 효심**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소설(연의)과 실제 역사(정사)의 기록이 조금 다르게 전개됩니다.

### 1. 《삼국지연의(소설)》의 이야기: 조조 측의 '위조 편지' 작전

서서의 활약에 깜짝 놀란 조조와 그의 모사 정욱은 서서를 빼앗아 올 계략을 꾸밉니다. 서서가 지독한 효자라는 점을 노려, 허창에 있던 서서의 어머니를 모셔온 뒤 그녀의 필체를 모방해 **가짜 편지**를 쓴 것입니다.

> "네가 역적 유비 밑에 있다가 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어서 허창으로 와서 나를 구하거라."
>
편지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서서는 유비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조조에게 가겠다고 청합니다. 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효심을 가로막을 수 없어 말 한 필을 선물하며 그를 보내줍니다.

### 2. 《삼국지정사(역사)》의 이야기: 피난길에 붙잡힌 어머니

실제 역사에서는 위조 편지 같은 드라마틱한 계략은 없었습니다. 대신 더 현실적이고 비극적이었습니다.
조조가 형주를 향해 대군을 몰고 내려올 때, 유비는 신야성을 버리고 백성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당양 장판파에서 조조의 정예 기병(순풍대)에게 기습을 당해 유비 진역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납니다. 이 혼란 속에서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군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서는 유비에게 가슴을 치며 "어머니가 붙잡히셨으니 제 마음은 이미 유비 님 곁에 있을 수 없습니다"라며 조조에게 갈 것을 청했고, 유비는 이를 허락했습니다.

### 🐎 떠나며 남긴 위대한 유산: 주마천제갈(走馬薦諸葛)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위해 말을 타고 떠나다가, 문득 말머리를 돌려 유비에게 와서 추천한 인물이 바로 **제갈량(공명)**이었습니다.

서서는 자신보다 수십 배는 뛰어난 천재가 이 근처 융중에 살고 있으니 반드시 세 번 찾아가서라도 아군으로 삼으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이 조언이 촉나라 역사의 시작이자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 💡 **조조 진영으로 간 서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 소설 속 서서는 조조에게 가자마자 어머니가 가짜 편지에 속아 온 아들을 크게 꾸짖고 자결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서서는 조조 밑에서 높은 벼슬을 지내면서도 **"평생 조조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계책도 내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실제로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를 두고 '서서가 조조 진영에 들어가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의 **서입조영묵무일언(徐入曹營默無一言)**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