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국내의 옛교량 산책

청계천 수표교

작성자문양짜기|작성시간07.02.19|조회수65 목록 댓글 0
다리(교량)밑에서

한국의 옛다리


청계천 수표교



장충단 공원 입구에 놓여있는 돌다리로, 원래는 청계천 2가에 있었으나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화강암을 짜맞추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아래의 돌기둥이 특이하게도 2단을 이루고 있다.

그 중 윗단의 돌은 모서리를 물의 흐름과 마주하게 하여 물의 저항을 덜 받도록 하였다.

난간은 연꽃봉오리, 연잎 등을 주제로 설계해 놓았는데 그 조각들이 매우 아름답다.

조선 세종 2년(1420)에 세운 다리로, 당시에는 이곳에 소시장이 있었다 하여 ‘마전교 ’라 불리웠다.

세종 23년(1441) 수표(보물 제838호)를 만들어 이 다리 옆에 세우고 청계천의 물높이를 재어 홍수에 대비하도록 하였고, 영조 36년(1760) 다리를 수리하면서 돌기둥에 ‘경(庚) ·진(辰) ·지(地) ·평(平)’이라는 글씨를 새겨두어 4단계의 물높이를 측정하도록 하였다.

이 때부터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라는 말이 생겨나 ‘수표교 ’라 부르게 되었다.

물길을 건너는 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홍수의 조절을 위해 수량을 재는 역할을 했던 중요한 다리로, 조선조 500여년 동안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왔다.

다리 옆에 서 있던 수표는 다리를 이곳으로 옮길 때 함께 옮겨왔다가 1973년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

청계천 수표교는 중구 수표동 43번지와 종로구 관수동 20번지 사이 청계천 위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세종 2년(1420)에 놓았으며 당시는 근처에 말을 매매하던 마전(馬廛)이 있어 마전교라고도 불렸다. 영조 36년(1760)에 하천 바닥을 파내고 수표교 돌기둥에 '경진지평(庚辰地平)' 네자를 새겨 준천(濬川)의 표준을 삼고 또 따로 수표석(水標石)을 세워 장마철에 물이 불어나는 상황을 수시로 적어 홍수에 대비하였으며, 수표교란 이 수표석에 유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어 현재 장충단공원 내에 보존되어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 같이 놓여 있던 수표석주(手標石柱)는 보물 제838호로 지정되어 청량리 세종기념회관 뜰 안으로 옮겨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표교 건너에 왕의 영정을 모셔 놓았던 영희전(永禧殿)이 있었기 때문에 국왕들이 설날·한식·단오·추석·동짓날·섣달 그믐 등 여러 차례 이 다리를 건너 왕래하곤 하였다. 오늘날 장충동에 옮겨져 있는 수표교를 보면 매끈한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 엮어 놓았고, 돌난간도 아름답게 꾸며 놓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다리이다.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자연재해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던 도성 사람들에게 강수량의 정도를 미리 알아 대피하도록 하여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한 다리라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 다리와 얽힌 이야기로는 숙종이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표교를 건너다가 장통방에 있던 여염집에서 문 밖으로 왕의 행차를 지켜보던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고 마음에 들어 궁으로 불러 들였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장희빈이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