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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작성자하태길|작성시간16.09.17|조회수442 목록 댓글 0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이사야 431-13

 

사람에겐 극단적인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람은 아주 강한 존재처럼 보입입니다. 사실은 사람은 아주 약한 존재입니다. 작은 세균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입니다.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지진입니다. 강진이 한번 일어나면 수십만 명이 죽기도 하고, 1,000억 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를 내기도 합니다.

 

사람은 위대한 존재입니다. 우주를 탐색하며 태고의 일들을 알아내고 있습니다. 나사에서 1977. 9. 5. 발사한 보이저1호는 1970.3.5.에는 1980.11.12.에는 토성 탐사를 하였고, 201210.3 현재 태양계 가장자리에 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로 여행을 계속할 것입니다. 반면에 아주 무능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참으로 선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던져 남을 구하는 선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참으로 악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은 인간의 악함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인종청소, 지금도 진행되는 분쟁은 우리가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야곱아라고 부르시기도 하고, “이스라엘아라고 부르시기도 합니다. 야곱은 사기꾼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야곱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스라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언제 사람은 강하고, 위대하고, 선한 존재가 되고, 반대로 언제 사람은 약하고, 하잘 것 없고, 악한 존재가 됩니까?

언제 우리는 야곱이 되고, 언제 우리는 이스라엘이 됩니까?

그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이스라엘이 되어, 강하고, 위대하고, 선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 없이 살면 야곱이 되어 약하고, 하잘 것 없고, 악한 존재가 됩니다.

 

본문 속의 역사적 배경은 유다왕국이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입니다. 유다왕국이 망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악을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본문 속의 그들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존재라기보다는 사기꾼 같은 비열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가정은 파괴되고,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인권이 짓밟혀서 인간의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러지 같은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그런 비참한 노예가 되어 있는 그들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비참한 가운데 떨어지더라도 외면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비록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버림받은 존재처럼 되어 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은 아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는 것은 우리를 깨우쳐주어 하나님의 자녀로, 이스라엘로 세우기 위함이지 아주 버리시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돌아보셨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바닥에 내려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수 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사방이 막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더 이상 살 소망이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유일하게 소망이 올 수 있는 곳은 하늘입니다. 사방이 다 막혀 있어도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럴 때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회복이 시작됩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해방될 것인데, 그 해방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다시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온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지배하시는 분이십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해방되어 나올 때 홍해바다 앞에서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애굽의 전차부대가 도망친 노예 집단을 죽이려고 폭풍처럼 달려오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바다 앞에서 이젠 죽었다고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바다에 길을 내셔서 마른 땅으로 바다를 건너게 하시고, 애굽의 전차부대가 바다로 들어섰을 때 바닷길이 물에 잠김으로 애굽의 전차부대를 수장시키셨습니다.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갈 때는 곡식 거두는 시기였습니다. 그 때는 항상 요단강에 물이 넘치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섰을 때 요단강 물이 그치고 땅이 말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에서 올라 올 때 요단강물이 다시 정상으로 흘렀습니다.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것은 다니엘의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벨론 왕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브갓네살의 신상에게 절하라는 것을 거부하자, 그들을 풀무불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상해도 입지 않고 살아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지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에 대한 주권도 갖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갈 때, 애굽을 징벌하고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건져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애굽을 속량물로 내어 주어 희생시키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노예로 70년간을 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실 것입니다. 비록 바벨론 백성의 생명들을 속량물로 희생시켜서라도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 속에 처해 있더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의 압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6.25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비참한 시기를 지났습니다. 지금의 네팔이나 캄보디아 같은 시기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 무역 규모 7위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신 동기는 무엇입니까?

 

4절을 봅시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생활로 볼품이 없어졌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래서 5-7절까지 보면, 하나님은 동서사방에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창조한 자, 나의 자녀들을 내어 놓아라. 그들을 내게로 오게 하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결코 잊혀진 이름이 아닙니다. 아무리 살기에 힘이 들어도, 아무리 외로운 밤을 눈물로 지새워도,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정용철이란 시인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삶이 힘들어 지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새 힘이 생기고 삶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야할 때를 이렇게 말합니다.

슬픔과 아픔이 나를 휩쌀 때면,

좌절하고 낙심 될 때면,

일이 잘 되지 않고 실수하여 야단맞을 때면,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면,

사람에게 실망하고 미움이 일어날 때면,

불평이 가득하고 웃음이 사라질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슬픔이 옅어지고,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새로운 다짐과 노력을 하게 되고, 미움이 사라지고, 불평이 떠나고 미소가 피어오른다고 합니다.

시인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비록 여러분이 실수를 하여 징계를 받고 있더라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처지가 힘든 상황이어도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그 모든 상황에서 건져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보고 사랑하셔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며 너를 내 것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해답은 10절에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켜 건져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건져주신 이유도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사랑하여 주시는 것도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증언할 증인입니다.

먼저는 하나님 만이 참 신이라는 증언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언하여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내는 책임이 먼저 부름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9절을 보면, 열방은 모였고,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을 증언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증언자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이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증언해야할 것은 하나님만이 구원자라는 증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스라엘을 노예 상태에서, 비참한 상태에서 건져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죄의 노예상태에서, 사망에서 건져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속량물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명을 받고 구원받은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어네스트 고든(Ernest Gordon)24세에 영국군 장교로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했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프린스톤 대학교 교목을 하면서, 포로수용소의 이야기를 소설형태로 썼습니다. 그 중의 한 영화가 콰이강의 기적입니다.

포로가 된 영국군 장교 중에 뚱뚱보 앵거스는 대식가였습니다. 포로수용소의 주거환경은 엉망이었고, 배식되는 양식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포로들 끼리 사우기가 일수였습니다. 뚱뚱보 장교 앵거스의 친구가 정글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앵거스는 자기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고, 자기 담요로 친구를 덮어주며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습니다. 친구는 병을 이기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앵거스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의사가 앵거스를 부검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병에 걸려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굶어죽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포로수용소에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죽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싸움을 일삼던 수용소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포로들은 서로를 돌보았고, 그 때부터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포로수용소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작업도구인 삽이 하나 없어졌다면, 일본군 병사가 포로 한 사람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며 누가 삽을 감추었는지 자수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제가 했습니다.”라고 자수하였습니다. 일본군 병사는 총 개머리판으로 그를 때려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삽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삽의 개수를 잘못 헤아린 것이 드러났습니다. 포로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15:13, 개정)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그런 일로 인해서 죽음의 수용소는 사랑이 넘치는 수용소가 되고,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한 두 명이 주님의 사랑을 그들의 몸으로 증언할 때 절망의 수용소는 희망의 수용소가 되었습니다.

후에 고든은 자전적인 소설로 펴내서 포로수용소의 일을 증언하였습니다. 또한 고든은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고든은 수용소 생활을 통하여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증언하여야할 책무를 느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난 자만이 비천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절망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만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을 증언할 자로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삶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만이 독생자를 속량물로 내어주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신 것을 증언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증언으로 비천한 자리에서 존귀한 자리로, 약한 자에서 강한 자로, 악한 자에서 선한 자로 자리가 바뀌는 사람들이 많이 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증언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더 존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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