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주 동안《살림길, 오늘 이곳에서》 책을 도구 삼아 공부했어요. ^-^
배움 갈무리하며 우리 일상에 깃든 여섯 주제로 저마다 갈무리글 써보았습니다.
하늘땅살이, 마을밥상, 경제, 정치, 교육, 평화-
어쩐지 커다랗게만 보이던 주제도 우리네 푸르른 삶에서는
한없이 가깝고 친근한 일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
함께 정성껏 길어올린 나눔들, 소중하게 나누어요.
#생명살림의 근본, 하늘땅살이 _지현
나는 2장의 ‘1. 반생명문화와 생태계 파괴’에서 나오는 “바이러스는 백신으로 이길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술적 처방이 아니라 생태적 삶에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이 부분을 보며 나의 일상이 떠올랐고 선생님이 하셨던 말도 떠올랐다. 선생님은 예를 들어 학교에서 큐브를 하는데 “집중해야 할 때도 해?” 그러면 ‘큐브 학교에서 금지’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얼핏 보면 해결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큐브를 하는 사람이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면 결국 똑같은 상황이 된다. 그렇기에 그냥 ‘금지’시키는 건 가장 낮은 수준의 해결법이고 잘 이야기하며 풀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것들 떠올리며 내 일상에도 적용해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학교에서 아무리 많이 배워도 내 안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배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학교에서 아무리 열심히 약속을 잘 지키며 지내도 집에서 지켜지지 않으면 잠시 백신효과를 본 것과 비슷한 상황이겠다 생각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번 들살이였다. 들살이 다녀온 후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이번 들살이 때는 같이 살림 정리하고 펼치고 할 때 살펴주는 사람, 붙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작년에 선배들이 보여준 것을 우리가 3학년이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그 모습이 주목됐다고 하셨다. 이 말 하셨던 게 이번 ‘반생명문화와 생태계 파괴’에서 떠올랐던 이유는 ‘들살이 때 잘하지 못했다면 평소에는 잘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하나 더 생각났다. “평소 학교 점심시간 때도 아드님, 따님 거의 분리돼서 노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느꼈고 이것 역시 3학년이 먼저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셨었다. 이 말까지 떠올리니 정말 주변 살피며 보내고 있지 못했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평소 학교에서 잘하지 못했던 게 들살이를 가서 잘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렇다면 잠시 백신효과를 보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생태적 삶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우선 집에서부터 잘하는 게 중요하겠다. 학교에서 배운 것 집에서도 해가는 것, 구체적으로 가장 작게는 숙제를 수업 때 배운 거 복습하는 의미 떠올리고 잘해가는 것, 그리고 좀 더 크게는 잘 안 하던 살림이나 요리 같은 것도 학교에서 해가고 있으니 들은 말 떠올리며 여름학기부터는 더 열심히 동생, 동무들 만나가고 학교살림, 그리고 주변 살피는 것, 동생들도 우리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더 책임 있게 해가고 싶다.
이 주제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전체적으로 ‘하늘땅살이’라는 큰 주제 읽으면서는 하늘땅살이하지 않는 삶과 지금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 삶으로 오기까지 많은 노력과 실천, 애씀을 보여주고 거기에서 얻은 행복, 자족하는 삶을 알려주고 있다고 정리됐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삶이 마을 이모삼촌들 선배들이 열심히 일궈온 것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도 이모삼촌 선배들이 열심히 살아온 만큼 책임 있게 또 고마운 마음으로 지내야 하겠다 싶었고, 그런 애씀들이 동생들에게도 전해진다는 것 잊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 살아가야겠다 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책 전체 읽으며 정말 뜬구름 잡는 내용 하나 없는 이모삼촌들이 겪고 경험해온 것들이 담겨 잇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정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뿌리내리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겠다 생각 든다. 책 읽기 전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그런 마음도 들었는데 읽다보니 그냥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내용들이었다. 이상-
#함께 사는 이들이 둘러앉는 사귐의 밥상 _성혜
마을밥상을 주제로 다룬 글은, 내 일상 가운데서도 특히 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에 편안하게 읽혔고, 그만큼 더 일상의 고마움이 크게 다가왔다. 마을밥상은 식구들과 둘러앉아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사랑방이자,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일으켜주는 고마운 노동의 장이다. 눈빛과 안색만으로도 내 마음이 금방 들통나는 신비로운 곳이고, 어느 때는 손님이 되고 어느 때는 주인이 되기도 하며 노동과 사랑과 책임을 함께 배울 수 있는 배움의 터이다.
“어느 날 평소와 안색이 다르거나 기운이 좋지 않은 이들도 밥상에 와서 함께 밥을 나누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떤 정황이 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나누게 되고 어느새 기운을 전환한다.” (86쪽)
이 대목을 읽으며 어느 날 밥상에서의 풍경이 떠올랐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며칠 동안 풀리지 않는 감정으로 힘겨웠던 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떠올랐던 듯하다. 우연히 마주앉아 밥 먹게 된 한 벗이 내 안색을 알아차리고는 조심스레 마음을 물어봐주었다. 그 물음 한 마디에 눈물과 함께 힘겨웠던 마음이 터져나왔는데, 그 벗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며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그 벗의 따스한 눈빛과 표정이 큰 위로가 되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듣지 못했을 멀리 앉아 있던 벗들 가운데서도 설거지하고 돌아서는 내 등을 별 말 없이 토닥여주기도 했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의 따스했던 눈빛과 온기만큼은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다.
“마을밥상에 오는 벗들은 밥상을 평가하거나 차림을 보고 불평하지 않는다. 이는 마을밥상을 운영하고 이용하는 이들이 유통과 소비가 아닌 생산을 중심에 두고 만나기에 가능한 일이다.” (94쪽)
“어느 때는 손님이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내가 주인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배움인지 느낀다. 나누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준다. 그 사랑을 받고 나눈다.” (92쪽)
한 푸른이가 마을밥상에서 울력하며 나누었던 고백을 머금어보며, 마을밥상이 소비자의 평가를 받는 상품화된 식당이 결코 될 수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우리가 밥상에서 나누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기 때문이다. 도움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더불어 돕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함께 성숙하는 길을 매일같이 걷고 있다. 이 중심을 잃지 않는 한, 마을밥상은 절대로 사람들의 평판에 오르내리는 식당이 될 순 없겠다 생각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마을밥상에서 벗들과 함께 밥 짓고 맛난 밥 먹으며 많이 웃었다. 아이부터, 푸른이, 어른까지 마을밥상에 둘러앉아 일상을 묻고 안부를 나누고 내일 또 보자고 하며 자연스레 인사 나누었다. 오늘 보고 말 사람이 아니라, 내일도 함께 밥 먹고 함께 공부하고 놀며 살아갈 이들이다. 선물 같은 지금 이 순간, 이 순간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 아님을 깨닫고 더 소중한 하루하루를 벗들과 함께 지어가고 싶다.
#마을, 새로운 경제의 터전을 빚다 _상준
경제 부분을 다시 읽어봤다. 지금 한국사회는 자본주의를 쓰고 있다. 돈에 의해 여러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또 돈이 벌린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는 물질적 측면을 넘어서 몸과 마음,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경제의 원래 의미는 살림살이라고 한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서 더 잘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가지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꽤나 근본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뭔가 나의 이익을 바라고 여러 가지 복잡한 거래를 하기보단 마음 내서 나서고 또 나누면 사실 이런 체계가 굳이 필요하지 않아진다. 생각보다 거창한 게 아니고 내 삶 근처에서 작게라도 돕고 나누고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마음 내기가 꽤 어렵다. 뭔가 손해인 것 같고 귀찮고 힘들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이득을 생각하며 하게 된다. 좀 더 생각해보면 괜찮고 우리에게, 나에게 좋았던 일들인데 멈추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내 삶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좋은 경제 만들어가고 싶다.
너무 거대한 국가적인 개념으로 가면 살펴지지 못하고 맞춰지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크기 안에선 여러 가지를 실천해 갈 수 있다. ‘경제’ 하면 뭔가 거대하고 나랑은 먼 그런 느낌이 드는데, 그런 증식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경제는 우리 삶터에서 서로 살리고 함께 도우며 먹고 자고 놀고 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배워가고 실천해가고 있는 일들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지구에는, 세상에는 한계가 있다. 그 안에서 무한히 돈을 벌려는 탐욕을 가지고 살아가면 결국 모든 게 파괴될 수도 있다. 조금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주어진 내 삶 안에서 실천해가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동안 ‘어느 정도 이기적인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지냈었는데, 다짐과 모순적인 것 같으니 한번 나서서 열심히 지내봐야겠다.
#두레와 마을에서 피어나는 정치 _재인
아주 긴 호흡으로 약 두 달의 시간 동안 《살림길, 오늘 이곳에서》를 읽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내 삶과 연결되고 공감되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아서 지금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할 수 있었다. 여럿 기억에 남는 게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치라는 배움을 갈무리해보려 한다.
‘정치’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건 국가 차원에서의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힘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것’이다. 141쪽 “생활정치는 민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정치다. 구체적으로는 바깥 힘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사귀며 삶의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것이다. (생략) 오히려 함께할 때 더 온전한 정치가 된다.” 결국 정치라는 것이 삶에서 마주하는 과주들에 서로 주체가 되어 해결해나가는 것이라는 게 새로웠고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다 내가 경험한 정치(?) 사건이 떠올랐다.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지만 연결해보자면,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만나왔고 거의 함께 살고 있는데, 그러면서 나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전에 한 사람의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모든 행동, 말이 굉장히 안 좋게 다가왔는데 혼자서 갖고 있자니 계속 고이는 것 같아 이 마음을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오해와 감정들이 풀리고 그제야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했다. ‘그냥 나만 참으면’이라는 태도가 아니라 관계에 생기는 어려움의 주체가 되어 계속해서 부딪혀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내가 무언가 거창한 걸 하려 한 게 아니라 그저 일어나는 일 똑바로 마주하고 풀어갔을 뿐인데 어느새 나와 너, 우리를 살리고 깊어지게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내가 먼저 나선 것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사랑으로 마음을 나누고 손 내밀어준 이들이 있었다. 이미 내가 경험했던 생활정치였구나 고백한다.
또 생활정치를 지속하는 힘은 함께하는 공부, 몸과 마음 살리는 수련, 서로 비춰주는 관계라고 나온다. 함께할 때 온전한 정치가 되지만 그 밑바탕에는 나를 다스리고 수련하는 과정이 있다. 나를 다스리는 건 그냥 말과 행동, 생각 모든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러면 나다움을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나의 기운, 경향성을 보고 균형을 맞춰가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기운을 전환시키는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뭔가 꾸리는 걸 할 때는 첫 마음을 떠올리는 것 또는 뜻을 정리하는 것이 있고, 나무를 만나거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보는 게 있다. 하나씩 찾아서 실천해본 것들인데 아직 유지되기 어렵다. 그치만 나를 먼저 살피고 다스려야 우리를 살피고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생활정치를 지속하는 것이다.
많은 사례가 떠오르고 자연스레 앞으로 어떻게 이어가고 싶은지 바람이 생긴다. 어떠한 틀에 갇혀 행위만 남는 게 아니라 생명을 중심에 두는 삶을 일구어나가고 싶다. ‘때에 맞게’라는 말이 생명과 참 가깝게 있다는 걸 느낀다. ‘이런 건 이렇게 해야 해!’라고 규정짓는다면 그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생명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하늘땅살이든, 밥상이든, 경제, 정치, 교육, 평화 모두 때에 맞게 유연함을 가지고 살림길을 일궈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 바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 이곳에서 하나둘 펼쳐간다는 걸 마음에 품고 살아가자. 함께한 동무들,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대안 세상 일구는 살림교육 _이준
《살림길, 오늘 이곳에서》에서 〈대안세상 일구는 살림교육〉을 갈무리해본다.
우선 초반부에 있는 내용인 대안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입시경쟁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대안학교를 세우지만, 졸업 이후 학생들이 고스란히 겪을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한계에 부딪친다. 그렇기에 마을이라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밝은누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마을을 일구었는지 나온다. 이 부분 읽으며 우리 마을의 배움터들이 어떤 과정을 지나왔는지 알 수 있어 좋았고, 예전부터 이 마을을 일궈온 여러 선배들, 이모삼촌들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지낼 수 있구나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또 뒤에 ‘줏대와 신의를 기르는 배움’이라고 나오는데, 난 줏대 있게, 신의를 지키며 사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꺼림직한 느낌이 들어도 무시하고 그냥 흘러가는 듯 내가 세운 뜻을 저버리고,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이리저리 휘청이고, 동무들과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괜찮은 거 같아 보이지만 나와 한 약속을 저버리는 것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는 거 같다. 지금 내 상태를 알며 줏대 있게, 신의를 지키며 살고 싶다.
또 이 책과 〈교육〉 부분에 ‘살림’이란 말이 들어가 있는 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살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지내는 모든 곳곳에 살림이 들어가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도 서로를 살리는 살림이다. 이 내용 초반에 옛사람들에게서 배움을 얻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교감하고 배우는 게 공간은 떨어져 있어도 뜻을 함께하며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여러 길벗마을 동무들이 떠오른다. 다들 잘 지내길!
마지막으로 배움이란 뭘까 생각해봤다. 책에도 나왔듯이 배우고 가르치는 건 누군가 어떤 대상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서로 관계 맺으며 함께 배우는 거라 생각한다(수업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렇기에 마을 전체가 배움터인 거다. 실제로도 길 걸을 때, 아가들(이제 좀 컸지만) 만날 때, 어디서든 배움이 있다. 이걸 잊지 말자!
참 풍성하고 와닿는 책이다.
#생명평화, 지금 여기에서 _환
평화란 무엇일까? 답이 없는 주제이기도 하고, 어떠한 경험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는 주제이다. 이 책에선 단순한 전쟁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생명과 생명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되, 다른 생명을 억누르지 않고 함께 서로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을 평화라 칭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평화는 어디에서 발현되는지를 살펴보겠다.
특히 오랜 시간 휴전 중인 우리 한반도 위에서 평화라는 주제는 외교, 국방 같은 국가 차원의 일로만 의식된다. 또한 가부장제와 같이 위계적 사회구조 틀은 평화와 또다시 한 발짝 멀어지게 한다. 이러한 요소들로서 평화를 바라보고 지향한다면 평화는 현실적이기 어려울 것이다.
묵자는 “천하의 혼란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 나의 가족, 나의 나라만 사랑하는 상황에서 생긴다”라고 했다. 이런 차별적 사랑은 점점 왜곡되어 나와 너를 나누고, 우리, 너희, ‘남’을 규정하고 배제하려고 한다. 동학에서의 ‘인내천’같이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는 상황에서 비로소 평화가 실천된다. 반대로 서로를 증오하고 닫힌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그 사이에 평화가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평화를 실천하기 제일 쉽고 중요한 자리는 나의 삶터이다. 평화가 추상적 이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며 밥상 나누고 울력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으로서의 실천이겠다. 물론 함께 살아가며 여러 갈등, 사건들을 만나겠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 열린 마음과 사랑으로 품어주는 마음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러한 평화적 개념은 점점 확장되어 나의 평화, 가정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 국가의 평화. 온생명의 평화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 일이 ‘안’ 일어나는 상황이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강대국들은 ‘안전’과 ‘보호’라는 차원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정당화시킨다. 무언가를 통제하고 위계화시키려는 태도는 결코 지속가능한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평화는 음과 양, 두 힘이 조화를 이루는 시점에 발현이 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일들을 살펴보겠다. 아무리 내 삶에 평화를 외치고 평화를 지향하더라도, 지금도 이 땅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꼭 전쟁뿐만 아니라 욕심, 증오, 시기, 질투 따위의 많은 감정들이 수없이 많을 거다. 당장 이 땅에서도 뼈아픈 여러 역사들이 있다.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그 원통한 생명들을 ‘해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통의 뿌리를 더듬어 아픔의 자리에 서는 순간, 자기 스스로의 상처든, 갈등들을 알아차리고 치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원’은 내가 할 수 있는 온생명 평화의 실천이다.
무력과 강압이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황을 모면할 수는 있어도 지속이 불가하다. 지난 12.3 내란 사건이 드러나는 사건 중 하나다. 국민들은 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했다. 함께 하나된 마음으로서 살아간다면 평화는 삶 속에 들어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처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보겠다. 평화란 무엇일까? 각자가 떠올리는, 바라는 평화는 모두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잘 품고 나부터, 내 앞부터 그 평화를 일궈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