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속에 숨은 사랑
아내는 두 달에 한번 씩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갑니다.
룰루랄라~
40년 넘게 살면서도 늘 함께 일하는 가게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내의 외출은 무척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혼자 남은 시간은 왠지 모르게 무얼 잃어버린 듯 허전해서 그 돌파구는 아내를 생각하며 몇 줄짜리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24살 22살에 만난 그 날부터 오늘까지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시간으로 지루함을
메우며 아내를 기다립니다.
그날도 아내는 성격대로 옅은 화장을 했습니다.
화장을 마친 아내는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출입구 문 옆에 서서 몇 번이나 거울을 보고 머리와 옷매무새를 살피며
스스로 만족한 후에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 갔다 올게요 점심은 라면 먹고 싶으면 먹으세요?”
“응 알아서 먹을 테니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재미있게 즐기다와.”
아내는 라면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먹을 기회가 별로 없는데 라면을 좋아하는 나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아내가 외출 할 때마다
먹으니까 나 좋으라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아내는 숄더백을 걸치고 또 거울을 보며 최종 점검을 마쳤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외출이니 잘 다녀오라는 작별의 인사로 포옹과 볼 키스를 하려고 급히 슬리퍼를 신고 나오며
말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잠깐.”
아내는 내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씨익 웃고 큰길로 나가 버렸습니다.
나갈 때마다 하는 작별 인사를 오늘은 개구쟁이처럼 거부를 하고 달아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은 못내
섭섭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작별 인사는 하고 가야지 이 사람이.....”
하지만 하늘은 아내의 편이 아니라 내 편이었습니다.
아내는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다가 문 앞에 서서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듯 바라보는 나를 포옹하지 못하게 따돌리고
나온 것이 재미있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개구 진 웃음을 웃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똑똑 땅 노크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깜짝 놀라며 손질한 머리가 망가질까봐 머리에 손을 얹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나는 빗방울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한번 놓친 기회를 나에게 주신 하늘에 감사와 쾌재를 부르며 문을 열어 놓은 채 얼른 들어가서 우산을 챙겨들고
나왔습니다.
문을 열어 놓은 이유는 아내가 비를 피해 빨리 들어오라는 뜻이 아니라 아까 못한 작별인사를 우산과 맞바꿈을 하려고
가게로 끌어 들이려는 수작이었고 내 수작은‘수작 중에 최우수작’이었습니다.
아내는 내 생각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와 거울을 보고 나는 우산을 슬며시 건네며 최우수작을 걸었습니다.
“작별인사는 하고 가야지 그냥가면 안”
아내는 또 내말이 채 내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산을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이 휙 낚아채더니 하하 웃으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나는 어리석게도 수작을 걸려면 말없이 갑자기 걸어야 하는데 발설한 탓에 그만 날아가 버렸습니다.
비록 실패를 해서 전보다 더욱 섭섭했지만 웃고 달아나는 하얀 블라우스 아내의 행동은 여전히 귀여웠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참고 참았던 소나기가 달아나는 아내 뒤를 따라 굵은 소나기가 되어 바쁜 걸음으로 후두두둑 따라가는데 그 비는
‘지나가는 비’였습니다.
그리고 급히 달아나는 소나기가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소나기 발뒤꿈치가 타는 흙 향을 후욱~ 뿜어 올리며 내 코를
자극하는데 나는 그 흙 향이 아주 좋아서 한껏 들이마셨습니다.
“흠~하~”
오랜만에 소나기 발뒤꿈치 타는 향기를 맡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아내가 떠난 뒤에 허전함은 어찌하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과 땅과 비를 바라보며 한 가지 생각만 했습니다.
‘돌아오면 보자마자 반갑다고 볼 키스를 해야지.’
비 내리는 오후는 무척 길었습니다.
4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마치 수족이 잘린 것처럼 허전하고 ‘둘이 살다가 혼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선지 좋아하는 컵라면을 먹었는데도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그날따라 아내가 돌아 올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넘은 것 같았는데 오지 않았습니다.
“모임이 재미있어서 길어지나 보다 나는 심심한데 재밌겠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가 언제나 그랬듯이 떠오르는 몇 줄 시를 쓰고, 즉흥시를 흥얼거리며 노래를 만들어 핸드폰에
녹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녹음을 반복듣기로 따라 부르며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고 그 한참이 지난 후에 드디어 아내가 빗속을 뚫고
가게에 도착 했습니다.
아내는 출입문을 밖으로 열어놓고 비가 떨어지는 처마 밑에서 급하게 말했습니다.
“우산우산~ 우산 받어 우산 개 빨리~”
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달려 나가 우산을 잡았는데 아내가 건네주는 우산을 잡은 것이 아니라 우산을 든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그리고 접지 않은 우산 속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나 몰라라 하고 말했습니다.
“잘 갔다 왔어? 재밌었어?”
아내는 그 말에는 대답이 없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 놔~ 비비 비 떨어져 우산 개야지 우산~”
하지만 나는 아직 못한 것을 끝내려고 우산을 개지도 않고 최대한 낮추어 아내를 끌어 들인 후에 그 속에 숨어서
아내의 볼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쪼옥~”
“누가 봐 누가 저리가아~”
“자기 와이프한테 뽀뽀 하는데 누가 보면 어때 우리가 불륜인가? 하하하....”
나는 우산을 개는 사이에 아내는 거울을 보며 옷을 털고 얼굴에 나타난 환한 미소가 거울 속으로 비쳤습니다.
아내는 동기 모임이 재미있었는지 아니면 내가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좋았는지 아니면 우산 속에서 타는 남편의
볼 키스 찐 사랑을 느꼈는지 환한 얼굴로 웃었습니다.
두 달에 한번.
아내의 동기 모임은 일에서 해방이었고 재미있었지만 나는 몹시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던 그날은 나에게도 아주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기다리며 한편의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아내에게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잠깐의 외출에도 소 닭 보듯 하지 않고 진한 사랑의 작별의 인사를 한다는 것과,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하는
일이 소소한 일 같지만 한편은 서로에게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비 내리던 그날, 작별과 만남의 순간을 오래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든 ‘우산 속에 숨은 사랑’이라는 노래를
나의 노년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불후의 명곡’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산 속에 숨은 사랑 배수진 작시작곡
소낙비 오시는 날에 님을 보내고 홀로 남은 나는
바삐 바~삐 달아나는 소나기 발뒤꿈치 타는 흙 향을 맡는다.
오리라 하는 그때를 지나 님이 오시면 받아든 우산 아래 숨어
살며시 슬며시 손을 잡는 우산 속에 숨은 사랑
(2절) 살며시 슬며시 입 맞추는 우산 속에 타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