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능묘와 십이지신상 / 12지신상
새해는 무술년이다. 2018년에 태어나는 아이는 개띠를 타고 나는데 이 띠를 나타내는 12짐승을 '십이지(十二支)'라고 하고 형상으로 나타낸 것을 '십이지신상'이라고 한다.
신라무덤 둘레돌(護石)에는 이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긴 것이 많다.
십이지신상을 만들어 무덤 안에 넣은 것도 있고, 무덤 둘레에 묻은 예도 있다. 그러나 무덤 둘레에 돌로 다듬어 배치한 것이 단연 많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높이 20센치 ~ 30센치의 자그마한 도기로 만든 것을 무덤 속에 넣어 껴묻거리(副葬品) 가운데 하나인 명기(明器)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인데 반해 신라에서는 1미터가 넘는 큼직한 조각품으로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십이지에 관한 관념은 이집트, 그리스,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서양에 걸쳐 넓게 퍼져 있으나, 그것을 동물 모습으로 나타낸 것은 중국 한나라 이후이며, 더 나아가 조각의 한 주체로서 확립한 것은 통일신라에 이르러서였다. 이 전통은 고려시대 왕릉에도 모양이 바뀌어서 이어져 오다가 조선시대 왕릉 조각에서도 짐승이 나타나게 된다.
십이지는 자(子:쥐), 축(丑:소), 인(寅:범),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 신(申:원숭이),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이다.
이 열둘은 처음에는 추상적인 개념이었는데 나중에 짐승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들은 시간과 방향에 따라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즉 쥐가 담당한 시간은 밤 11시에서 1시까지를 맡고(옛날 하루를 12시간으로 잡았는데, 오늘날 시간 개념으로 말하면 23시에서 1시까지이다). 방향은 북쪽을 맡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십이지신상이 조각된 능묘는 내남면 부지리에 있는 경덕왕릉을 비롯하여 외동읍 괘릉리에 있는 원성왕릉, 동천동에 있는 헌덕왕릉, 안강 육통리에 있는 흥덕왕릉, 현곡면 오류리에 있는 진덕왕릉이라 전해오고 있는 무덤과, 충효동에 있는 김유신 장군묘, 구정동에 있는 밑이 네모난 방형분, 어느 무덤에서 옮겨온 것으로 여겨지는 구황동 황복사 기단의 십이지신상 등과 같이 둘레돌에 돋을새김으로 된 것과, 조양동에 있는 성덕왕릉과 같이 무덤 둘레에 두리새김으로 배치해 세운 것이 있다.
여기에 비해 둉강동고분에서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십이지가 돌방 안에 배치되어 있었고, 내남면 망성리 민얘왕릉이라 전해오는 무덤 둘레에서 출토된 것은 곱돌에 두리새김한 것이었다.
또한 김유신 장군묘 둘레와 현덕와릉 주위에서 출토된 곱돌에 돋을새김된 12지신상도 있다. 모두가 얼굴은 짐승이고 몸은 사람 모습인데 옷은 무사들이 입는 무복으로 나타낸 것도 있고, 평시에 입은 평복으로 나타낸 것도 있다.
무덤 안에 흙으로 만든 토용, 토우, 등과 같이 묻은 것은 당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인 당시의 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신라만의 새롭고 독특한 무덤 둘레 십이지신상은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되었을까?
그것은 통일 후의 권력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즉 십이지신상들이 왕릉을 각 방위와 시간에 틈이 없이 수호한다는 뜻이 있지만 경덕왕 때에 한층 강화된 전제왕권을 밖으로 과시하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에서 받아들인 문물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변형, 발전시켜 나갔던 점은 통일신라 문화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다.
이러한 십이지신상은 능묘의 둘레돌에 뿐만 아니라 불교 건축, 조각에도 이어져 석탑, 부도, 석등 등에도 조각되었고, 비석 받침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출처 : 최용주과 함께 가는 경주여행 / 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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