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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단상

55.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마라.

작성자금봉|작성시간26.06.20|조회수27 목록 댓글 0

55.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마라.

일이 뜩대로 되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며, 마음이 흡족하다고 기뻐하지 말며,

오랫동안 편안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며, 시작이 어렵다고 한탄하지 말라.

 

 세상만사 세옹지마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세상사가 어찌 내 마음대로 되기만을 바랄 것이리오, 마음대로 된다면 누가 가난하게 살 것이며, 서울대 법대를 못나올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내가 왜 육사를 안 나오고 3사관학교에 들어갔을건가, 물론 1 차 시험에는 합격을 두 번이나 했었지만, 2차 시험 서류면접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는데 그것을 가지고 계속 탄식만 했었다면 무엇하리요,

사병으로 입대하여 상병까지 달고 있다가 제대하였으면 경주에서 제일서점 사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를 도와서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살았으면 경주사회에서 그럭 저럭 밥을 먹고 살 수가 있었을 것이다,

보문 cc에서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골프나 치고 포항으로, 감포로 바다낚시도 다니고,

 

 그런데 사병으로 있을 때 마침 소대장으로 왔던 그 상렬이를 만나서 다시 장교가 되는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휴가를 주었고, 어찌 보면 인생사가 어찌 모두 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굴러가겠는가 말이다. 보병 소위가 되어 사병 생활을 했던 그 바닷가, 울진으로 해안소대장으로 가고 싶었는데, 3사관 학교장이 우리 중대를 몽땅 포병으로 가게 했고, 포병 소위가 되어 철원으로 갔고, 거기서 대대장, 오 기전 중령울 만나서 귀여움을 받았다. 그래서 유도탄 부대로 가게 된 것을 안 가도록 해주었고, 다시 또 정훈장교가 되었고 그러다가 다시 항공장교가 되었고 다시 또 군단장 전속부관이 되었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유학 장교반에 들어가고, 다시 또 도미 군사 유학을 가게 되었고,  도미 유학을 마치고 귀대한 나는 항공학교에서 교관을 하는 나를 계기학과로 보낸 학교장이 다시 행정처장을 시켰는데, 그 보직이 끝나기도 전에 항공감, 송진원 장군이 나를 육군본부로 불러서 항공감실 행정실장을 시켰고,  송장군, 최상진 장군까지 모시다가, 진해 육대를 나와서 홍천으같이 같은 사단에서 대대장을 같이했다. 나중에 다시 만난 반가운 인연들이 되었었다. 사단 항공 대장이 끝나고 항공 사령부 정보처장으로 발령난 것을 곽 장군이 특전사를 상대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나를 203대대장으로 보냈다. 항공 사령부와 특전 사령부 2곳을 상대로 줄타기 역할을 잘하여 육완식, 민병돈 2명의 특전 사령관으로부터 인정을 받던 나는, 그 당시 특전사 작전처장 정영무 장군을 만나서 그 인연이 3군 항공과장 할 때까지 연결이 되었다. 특전사 작전처장을 하던 정영무대령이  장군이 되어서 내가 대령이되어 연합사 항공처장을 마치고 3군 항공과장으로 가니, 3 군사령부 참모장으로 계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군 생활 동안의 보직이 연결된 것은 지금 생각을 해 봐도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비록 최고의 포장도로를 달린 것은 아니었지만, 가는 곳마다 만난 사람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맺어서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인연들이 되었다. 한미 연합사령부에 있을 때 만난 사람들도 오랜 인연으로 연결이 되었었다. 육군 3대 악당이라던 이모 장군도 나와는 잘 지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라는

이말은 정말로 공감이 되는 말이다. 군 생활동안 어디로 가든지 그 곳에서 어떻게 근무를 하는 지가 중요하지,

어떤 자리로 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이제 8 순이 된 이 나이에도 뭐 그렇게 안달 복달하지 않고 그저 만나서 알게 되는 사람들과 선한 인연으로 살아간다면 인생사에 너무 힘들지 않게 살아 가게 되리라 확신한다, 가끔 한 두 놈 고약한 놈들이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잘 인내하고, 싸우기보다 좀 피해서 똥을 밟지는 말고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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