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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

人事萬事와 少論之海底靈龜[인사만사와 소론지해저영구]

작성자묵암 이영수|작성시간08.06.18|조회수45 목록 댓글 0

   少論之海底靈龜와 南人之海底屍龜

朝鮮時代 政治는 三黨 構造였다. 朝鮮後期 200年 동안 與黨을

했던 老論, 그리고 萬年 野黨이었던 南人, 그리고 그 中間에

있었던 少論의 三黨이었다. 老論은 너무 오래 長期執權을 했다.

南人은 野黨을 오래하다 보니까, 國政의 經驗을 쌓을 機會가 없었다.

특히 嶺南 南人은 徹底[철저]하게 벼슬길을 封鎖[봉쇄] 當했다.


老論들이 慶尙道 사람에게는 堂上官[正三品] 이상 벼슬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朝鮮仁朝 以後에는 慶尙道 사람들이 鳥嶺을

넘어 漢陽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嶺南의 南人들은 完全히 在野勢力이었다. 湖南이 아닌 慶尙道

慶州에서 體制를 흔드는 東學이 誕生한 것도 이러한 政治的

疏外와 無關하지 않다고 본다.


南人집안이었던 慶州 崔부잣집도 東學의 崔際遇와 같은 崔氏

집안이다. 崔부잣집이 “進士 이상 벼슬을 하지 않는다“를 徹則으로

삼은 것도 같은 脈絡이다. 老論政權에서 嶺南 南人이 高位職에

갈 수도 없었거니와, 설령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政治差別 끝에

結局 財産을 뺏긴다고 보았던 것이다. 少論은 老論이 가진 國政

經驗도 있었고, 在野의 南人이 지니고 있었던 問題意識도 있었다.

中道統合 路線이었다고나 할까.


有名한 少論집안이 全州李氏 德川君派이다. 원교 이광사, 연려실 이긍익,

영재 이건창이 모두 같은 少論집안이다. 江華學派인 陽明學派 들도

少論들이었다. 滿洲에 新興武官學校를 세운 우당 이회영, 성재 이시영

집안은 慶州李氏로서 少論집안이다. 또 한 군데가 忠淸道 論山의

明才 윤증 집안이다. 明才는 임금이 右議政을 준다고 해도 벼슬을

拒絶하였다. 그만큼 '대'가 센 인물이었다. 明才가 벼슬을 拒否한

主된 理由 中의 하나가 老論이 固執한 “地域差別 人事”였다.


南人이 排擠되는 人事政策이 繼續되는 한 政權에 參與할 名分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번에 大統領 秘書室長 物望에 오르내리는

윤여준씨도 少論에 屬한 尹明才 집안 後孫이다.

尹氏와 함께 擧論되는 候補들도 여럿인 것으로 傳해졌다.

果然 누가 이 불타는 政局을 식혀줄 수 있을까.


*題目인 “少論之海底靈龜와 南人之海底屍龜”을 굳이 國譯하자면

 “소론은 바다밑에 있는 영물스런 거북이며, 남인은 바다밑에

 있는 아무 쓸모없는 죽은 거북의 시체이다.“ 정도일 것이다...

              <趙龍憲 칼럼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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