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막을 건너는 동창
며칠 전 부곡중학교 제24회 졸업생 단체 카카오톡방에 낯선 사진들이 올라왔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거대한 절벽, 바람이 수만 년 동안 깎아 만든 듯한 협곡의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가져온 여행 사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진 속 풍경들은 최근 카자흐스탄을 여행 중인 동창 배경진이 직접 찍은 것들이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감탄이 나왔다. 카톡방도 잠시 술렁였다. "부럽다",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곳까지 갔노" 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카자흐스탄의 오지와 협곡까지 찾아가는 모습을 보니 새삼 놀라웠다.
사실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은퇴하면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언젠가는 꼭 떠나야지 하는 계획도 세운다. 그러나 꿈과 실천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강이 흐른다. 시간도 필요하고 비용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결심이 필요하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배경진 동창은 오랫동안 한국전력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일해 왔다. 조직의 중책을 맡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비슷하다. 책임이 크고 바쁘며 늘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하루 맡은 일을 처리하다 보면 자신을 위한 시간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삶 속에서도 틈틈이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섰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낯선 곳들을 찾아다니며 자연과 문화, 사람을 만나는 일을 즐겼다.
나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나이를 결정하는 것은 주민등록증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호기심의 크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안정과 익숙함을 찾게 된다. 이미 아는 길을 걷고, 이미 가본 곳을 다시 찾으며, 새로운 도전을 미루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도 마음속에 작은 나침반 하나를 품고 산다. 그 나침반은 늘 새로운 방향을 가리킨다.
배경진 동창이 바로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을 향한 궁금증을 잃지 않았고, 이제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 속의 협곡과 사막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카톡방 친구들이 부러워한 것은 어쩌면 여행지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풍경보다도 그곳까지 찾아가는 실행력과 용기, 그리고 여전히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열정이 더 부러웠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끊임없는 여행과 닮아 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평생을 보내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중요한 것은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설렘을 잃지 않는 일일 것이다.
배경진 동창이 카톡방에 올린 몇 장의 사진은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생 보고서였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가보지 못한 길은 여전히 많다." 그날 나는 카자흐스탄의 협곡보다도, 그 길을 찾아 나선 동창의 젊은 마음이 더 인상 깊게 남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뜻일 뿐, 꿈까지 늙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배성근(시인.수필.소설.평론(비평),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