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은감불원

작성자판암|작성시간26.06.22|조회수23 목록 댓글 1

은감불원

 

은감불원(殷鑑不遠)*()의 거울()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교훈)로 삼으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여기서 이란 은()나라를 지칭한다. 그런데 은나라는 기원전 17세기 무렵에 탕왕(湯王)이 하()나라 폭군이었던 걸왕(桀王)을 처단하고 세운 상()나라를 지칭하는 개념인데, 은 지역으로 천도(遷都)한 기원전 14세기 이후부터는 은나라로 호칭했다. 이의 유래를 비롯해 함의와 만남이다.

 

예로부터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게 작용했다. 고대 중국 역사상 하나라 걸왕의 말희(妺喜), 은나라 주왕(紂王)의 달기(妲己)는 나라를 멸망하게 했고, 서주(西周)*의 유왕(幽王)을 얼뜨기처럼 만들었던 포사(褒姒) 등은 경국지색으로 왕을 얼간이 폭군(暴君)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중국 역사상 3대 악녀(惡女)로 꼽힌다.

 

관련 고사(故事)를 담고 있는 출전(出典)시경(詩經)대아편(大雅篇)에 나타나는 탕시(湯詩)이다. 은감불원과 함께 상감불원(商鑑不遠)이라고도 하며, 유의어로 복거지계(覆車之戒)가 있다. 출전에서 전하는 고사를 바탕으로 이의 출현 배경과 내용을 간추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은 지난날 하나라 걸왕과 호형호제 할 수 있을 정도로 포악했다. 즉위 초기에는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군(賢君)이었다. 그런데 오랑캐인 유소씨국(有蘇氏國)을 평정하고 나서 그 나라에서 공물(貢物)로 보내온 말희의 미색에 빠져 나랏일은 멀리하고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음주음락(飮酒淫樂)을 일삼아 나라꼴이 엉망이었다. 이를 수수방관할 수 없었던 수많은 신하들의 충간(忠諫)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리석은 폭군은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간언하는 충신들을 모조리 포락지형(炮烙之刑) 같은 극형에 처하는 악행을 무한정 되풀이함으로써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대표적인 충신들의 면면이다. 주왕을 지근에서 그림자처럼 뫼시던 삼공(三公)이었던 구후(九侯), 악후(鄂侯), 서백(西伯 : 훗날 주문왕(周文王)) 등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실정(失政)을 야멸치게 직간(直諫)했다. 이에 분개한 주왕은 구후와 악후를 즉시 처형하는 잔인함을 보였고, 서백은 불순한 시의 구절을 인용해 자신을 능멸했다는 죄목을 씌워 감옥에 유폐시켰다. 또한 가장 가까운 혈육이며 삼인(三仁)으로 호칭되던 숙부(叔父)인 기자(箕子)와 형인 미자(微子)는 추방시켰고, 왕자인 비간(比干)은 참혹하게 처형했다. 이들 외에도 직간을 하던 신하는 예외 없이 극형으로 처단하는 잔인함의 연속이었다.

 

서백이 옛 시를 들어 주왕의 포악무도함을 은근히 탓하며 에둘러 비난했던 시()가 바로 시경(詩經)대아편(大雅篇)에 나타나는 탕시(湯詩)’로서 그 내용은 이렇다.

 

/ ... / 쓰러진 나무뿌리가 드러나면(顚沛之揭 : 전패기게) / 가지나 잎이 상하지 않았을지라도(枝葉未有害 : 지엽미유해) / 뿌리는 이미 못쓰게 되었다네(本實先撥 : 본실선발) / 은(殷)의 거울(鑑)은 멀리 있지 않다(殷鑑不遠 : 은감불원) /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시대(時代)에 있거늘(在夏后之世 : 재하후지세) / ... /

 

위 내용에서 은감불원이 비롯되었다. 한편 여기서 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는 결론적으로 하나라의 걸왕은 백성들의 마음 이반으로 나라가 멸망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결국 서백은 오래 전 은왕조(殷王朝)의 시조(始祖)인 탕왕(湯王)에게 멸한 하왕조(夏王朝)의 마지막 제왕이었던 걸왕을 거울삼아 그 같은 비운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취지의 일갈이었다. 다시 말하면 주왕이 거울삼으라는 것은 바로 앞선 하나라 걸왕 때의 일을 견줘보고 깨우쳐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라는 진심어린 조언이자 충고이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옥()에 유폐시켰다. 그 외에도 수많은 충신들을 무지막지하게 단두대(斷頭臺)에 세워 처형함으로써 결국은 천벌이 내려져 나라가 망하는 비운을 비껴 갈 수 없었다.

 

가까운 충신을 비롯해 수많은 제후(諸侯)와 백성들의 마음이 변해 설자리를 잃은 주왕은 결국 서백의 아들 발()에게 멸망을 당했다. 이로써 발()은 주왕조(周王朝)의 시조(始祖)인 무왕(武王)으로 등극했고, 그의 아버지 서백은 주문왕(周文王)으로 추서 되었다.

 

이상에서 봤듯이 은감불원은 주군(主君) 즉 임금에게 직간(直諫)하는 것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진지한 성찰이나 실패에 대한 반성을 하라고 이를 때 쓰이고 있어 그 옛날에 비해 다소 의미가 변질되었다. 그렇지만 예부터 변하지 않는 함축된 뜻은 모범이나 표상이 될 수 있는 전례(前例)’가 은감(殷鑑)이라는 사실이다. 한편 그런 전례가 오래되지 않은 지난 일에 있음을 일컬어 은감불원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으리라. 살면서 지혜롭게 살피거나 바로 보는 혜안(慧眼)이 부족해서 그렇지 모든 면에서 견줘볼 거울은 지천에 널려 있다. 다만 작고 시야가 좁은 자신의 눈이 그를 보지 못하고 미욱한 단견에 집착하다가 마음의 문()에 채워진 빗장을 활짝 열어 제치지 못해 불가능할 뿐이다.

 

=======

 

* 은감불원(殷鑑不遠) : 이의 표기에서 ‘감(鑑)’을 ‘감(鑒)’으로도 표기하는데, 이들 둘은 동자(同字)이다.

 

* 서주(西周) : 주(周)나라는 기원전 1046년~기원전 256년까지 대략 8백 년 존속했다. 그런데 기원전 1046년~기원전 771년까지는 수도(首都)를 호경(鎬京 : 지금의 서안(西安))에 두었다고 해서 서주(西周), 기원전 771년~기원전 256년까지는 낙읍(洛邑 : 현재의 낙양(洛陽))으로 천도(遷都)했다는 이유에서 동주(東周)라고 갈래지어 호칭한다.

 

수필과비평, 20265월호(통권 295), 202651

(2024108일 화요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배성근 | 작성시간 08:10 new 잘읽었습니다 교수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