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문학은 권력이 아니라 양심이다
― 순수문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문학은 원래 권력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영역이었다. 시대의 모순을 기록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를 향해 언어의 거울을 내미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문인은 권력에 기대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성찰하는 사람이었고, 시인은 명예를 좇기보다 진실을 좇는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문단의 일부 현실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작품보다 직함이 앞서고, 문학보다 조직이 앞서며, 언어보다 권위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시인의 이름은 넘쳐나지만 정작 시의 무게와 책임은 점점 가벼워지는 듯하다.
문학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순간 문학은 본래의 길을 잃는다. 비판 정신은 침묵으로 바뀌고, 성찰은 아첨으로 변질된다. 작품보다 관계가 중요해지고, 창작보다 영향력이 우선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문학은 시대의 양심이 아니라 권력의 장식품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인다.
일부 문학단체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상업주의 논란 역시 문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등단이라는 이름 아래 과도한 비용 부담이 발생하거나, 문예지 구매와 각종 행사 참여가 사실상 관행처럼 이어진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물론 모든 단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문단이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이유가 된다.
등단은 작품이 결정해야 한다. 시인의 자격은 돈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깊이와 창작의 성실함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문학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순간 독자는 문학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문단은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게 된다.
오늘날 일부 문단의 풍경 가운데 특히 안타까운 것은 문학적 성장보다 외형적 성과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작품의 깊이를 다듬고 언어를 갈고 닦기보다 상장과 직함, 수상 경력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풍토가 존재한다. 여기저기 문학 단체를 찾아다니며 문학적 성취보다 이력과 명함을 채우는 데 열중하는 모습은 문학이 지녀야 할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문학은 평생 공부하는 일이다. 읽고, 생각하고, 성찰하고, 다시 쓰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러나 공부는 뒷전인 채 시인이라는 이름만 소비하려는 풍조가 생겨난다면 문학은 점차 공허한 수사와 허울뿐인 권위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시인의 이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시의 정신은 얻지 못한 경우가 생겨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현상을 만드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침묵으로 동조하며, 오히려 그 질서 속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는 점이다. 권력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추종하는 사람이 있을 때 유지된다. 문단의 권위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비판 없는 순응과 무비판적 동조는 결국 문학의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선비정신의 실종이다. 선비정신이란 단순히 학문을 하는 태도가 아니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이익보다 명분을 중시하며,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자세다. 문인에게 필요한 것 또한 바로 이러한 정신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소신보다 줄서기가, 작품보다 관계 맺기가, 창작보다 자리 차지가 우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더욱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풍토에 익숙한 사람들이 순수문학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그 가치를 흔들려 하는 경우다. 오랜 세월 동안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신뢰로 유지되어 온 공동체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문학에 대한 진정성이 쌓여 만들어진 소중한 결실이다.
18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순수문학의 정신을 지켜온 공동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시간은 단순한 연륜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철학과 신념의 축적이다. 그런데 간혹 권위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든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공동체의 본질을 흐리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공동체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가치와 정신까지 포기하면서 유지될 수는 없다. 건강한 공동체는 스스로를 정화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원칙을 지키고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는 일은 누군가를 배척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책임이다.
필자가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문학을 지키기 위해서다. 특정 인물을 겨냥하기보다 오랫동안 지켜온 순수문학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꽃밭이 아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잡초를 뽑고 토양을 가꾸어야 한다.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건강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결국 권력과 이해관계가 문학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진정한 문인은 직함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회장이라는 이름도, 임원이라는 자리도, 수많은 상장도 문인을 완성하지 못한다. 오직 작품만이 문인을 증명한다. 독자의 가슴에 오래 남는 한 줄의 문장, 시대를 기록하는 한 편의 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만이 문인의 존재 이유가 된다.
문학은 특정 단체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정 세력의 권력도 아니다. 문학은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며, 무엇보다 독자의 것이다. 따라서 문학이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권력보다 양심을, 직함보다 작품을, 상장보다 실력을, 관계보다 창작을 우선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한다.
문학은 권력이 아니라 양심이어야 한다. 그리고 문인은 권력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18년 넘게 지켜온 순수문학의 정신이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작품이 사람을 말하게 하고, 양심이 문학을 이끌며, 진정성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문단.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문학의 본래 모습이며, 오늘의 문단이 다시 회복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