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합천 해인사 홍류동 계곡 시화전시를 기억하며
― 흐르는 침묵, 읽히는 시간
합천 해인사 홍류동 계곡의 길은 언제나 조용히 흐른다. 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말 없는 흐름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말해버린 언어 이후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2011년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과 함께했던 시화전시는 바로 이 침묵의 길 위에서 펼쳐졌던 하나의 인문적 사건이었다.
홍류동 계곡은 단순한 자연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유가 발 디딜 수 있도록 잠시 형태를 빌려준 문장의 자리였다. 돌은 침묵으로 존재하고, 물은 끊임없이 자신을 지우며 흐른다. 이곳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주체였고, 시는 설명이 아니라 감응이었다. 언어는 자연을 붙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 함께 풀려나기 위해 놓여 있었다.
팔만대장경이 지닌 천년의 시간은 문자 그 자체보다, 끊임없이 읽히고 해석되며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에 있었다. 목판에 새겨진 글자는 고정된 기록이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 숨결로 되살아나는 사유의 흔적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사유 장치다. 시화전시는 이 대장경의 정신과 홍류동 계곡의 흐름을 하나의 장으로 겹쳐 놓으며, 자연과 문자가 서로를 비추는 투명한 거울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 전시는 ‘보여주는 전시’라기보다 ‘함께 걸으며 비워지는 경험’에 가까웠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 서 있는 감상자가 아니라, 계곡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통과자였다. 걷는다는 행위는 곧 읽는 행위였고, 읽는다는 것은 곧 자신을 비워내는 수행과도 같았다. 시는 눈으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발걸음으로 통과하는 시간이었다. 이 지점에서 시화전시는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불교적 사유와 맞닿은 인문적 체험으로 확장되었다.
무엇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온도다. 작품의 이미지보다 사람들의 마음결, 말보다 오래 남는 침묵의 여운, 그리고 그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던 보이지 않는 긴장과 설렘이었다. 그 시절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뜨거웠던 시간이었다. 시를 향한 마음과 사람을 향한 마음, 그리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순수한 몰입이 모든 순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열정은 한때의 감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 속에서 형태를 바꾸며 더 깊은 층위로 내려앉았다. 지금의 삶 속에서도 그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식지 않은 온도가 흐른다. 기억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조용히 데우는 방식으로 지속된다.
돌이켜보면 그 일이 벌써 15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깊이 속으로 스며들어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홍류동 계곡의 물이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동일한 흐름을 유지하듯, 그때의 기억 또한 지금의 시간 속에서 다른 이름으로 흐르고 있다.
결국 해인사 홍류동 계곡 시화전시는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 확장되는 하나의 사유 장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금도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더 나아가, 우리는 무엇을 계속해서 읽고, 무엇을 비워내며 살아가고 있는가.
홍류동 계곡의 물은 여전히 흐른다. 그러나 그 흐름은 단순한 자연의 움직임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해 온 사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