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투스 [역사] 간단독후감
1년차
序
솔직히
헤로도투스의 역사는 이름 그대로 “조사와 탐문을 통해 얻은 지식”의 창고였다. 낯선 이름들과 지명들에 다시 곤혹스러웠지만, 책 뒤에 실린 지도와 또 다른 지도들을 옆에 두고 책을 읽어서 이제야 대략적인 그리스와 소아시아 지도가 머릿속에 들어선 것도 같다.
헤로도투스를 읽다가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그리스 비극들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은 아직 너무 엉성하고 허전하다. 그렇지만, 이런 피이드 백을 통해 좀 더 튼실한 지식의 건물이 들어 설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 때 제대로 못 읽었다면 이번에 다시 한 번 찾아 보면 되니 너무 비관하지 말자.
本 1
1. Historia = 조사와 탐문을 통해 얻은 지식
고대 그리스어의 ἱστορία(historia)는 “조사와 탐문을 통해 얻은 지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헤로도투스는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을 탐문하여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일부는 과장되거나 오해한 내용이 있다고 하지만, 헤로도투스가 펼쳐놓은 고대의 박물지는 그 자체로도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류를 정정해 줄 사람은 많지만, 처음으로 창조해 내기는 어려운 법이 아닌가.
2. 산문의 호메로스
‘역사’의 곳곳에서 산문의 호메로스라고 불리는 헤로도투스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책에 산재해 있는 각종 일화들은 그 자체로 충분한 하나의 이야기거리였다. 개인적으로 압권은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 공격을 결정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었는데, 결론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도 거듭되는 반전의 실타래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왕과 한 개인으로서의 크세르크세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헤로도투스는 ‘나는 들은 것을 전할 의무는 자신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할 의무는 있지만, 자신이 그 이야기를 믿을 의무는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논거를 대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 모름지기 모든 주장의 원칙이 아닐까.
3. 무사 여신들에 대한 헌정에 관하여
르네상스 시대 편집자들이 ‘역사’의 1권을 클레이오(역사의 무사)에게 헌정하고, 마지막 9권을 칼리오페(서사시의 무사)에게 헌정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사 여신들의 나이순(?)으로 하면 1권은 맏언니 칼리오페에게 헌정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서이다.
위 의문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은 이렇다. 헤로도투스는 서사시가 아닌 개관적인 역사서술을 남기려는 의도로 역사를 저술하였음을 보여주기 위해 1권을 클레이오에게 헌정하고, 역사의 내용 자체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웅장한 서시시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9권을 칼리오페에게 헌정한 것이다.
本 2
Ⅰ 클레이오
(1) 헤로토투스는 그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만 불렸다가 사라졌을 지 모를 많은 종족들의 이름과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2) 귀게스의 일화와 솔론의 지혜는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 욕구는 자칫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독이 될 수 있다. 귀게스도 그렇고, 솔론에게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던 크로이소스도 그렇고, 백설공주의 계모도 그렇다. 뒷일은 아직 모르지만, 난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범사에 감사해야겠다.
(3) 델포이 예언녀의 헥사메트론 운율은 장단단격의 육각시로 서사시 운율이라고 하는데, 번역에서 그러한 운율을 살렸으면 좋을 텐데, 살릴 수는 없을까? 외국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쉽다.
Ⅱ 에우테르페
(1) 솔직히 헤로도투스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했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아 원서에서 그 말이 어디쯤 나올까 보물찾기를 했다. 5장에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사전정보없이도 헬라스인들이 배를 타고 가는 아이귑토스는 새로 얻은 땅이며 강의 선물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이 그것일까? 헤로도투스의 이집트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한 부분 중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과 양을 통해서 당시의 선진문물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2) 펠라스고이족이 신을 신들(theoi)이라고 부른 것은 신들이 만물을 질서정연하게 배열하고(ti-themi), 모든 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은 ‘하늘 그물이 성긴 것 같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옛 성현의 말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요즘, 모두에게 제 자리를 부여하여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신의 섭리를 깨닫는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차이가 있다면 언제 어떤 계기로 그 섭리를 깨달을 것인가의 문제일 뿐…
(3) 헬레네 이야기 부분에서는 헤로도투스와 소포클레스가 헬레네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 받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 이야기가 맞는 거 같다며 서로 비극과 산문으로 나누어 쓰기로 의기투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맞을까?
Ⅲ 탈레이아
다레이오스가 집권하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는데, 터무니 없이 보이는 왕 선출방식을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는 방식은 선거이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의 득표율은 총유권자의 30% 남짓이었다. 나름대로 선거운동과정을 통해 후보자를 검증하는 절차도 실제로는 미디어를 통한 겉모양을 수박 겉핡기식에 불과하다. 과연 우리의 선거방식과 새벽에 처음 울음 우는 말의 주인을 왕으로 뽑는 황당한 선출방식이 뭐가 그리 다른 것인가(너무 비약인가). 지금까지 인류가 창안한 정치제제라는 게 고대인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거 같다. 민주제냐, 과두제냐, 독재제냐…. 권력투쟁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안을 찾은 오타네스가 현명한 거 아닐까.
Ⅳ 멜포메네
(1) 스키타이라는 낯익은(?) 이름이 나와서 반가웠다. 우리와 전혀 동떨어진 세계의 고대사를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헤로도투스의 역사도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키타이를 통해서 맺어지는 그들의 리그와 우리의 리그. 유라시아 스텝을 달리던 스키타이의 모습은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다레이오스를 조롱하던 스키타이 왕의 말, 무사 앗사이드의 ‘사막별 여행자’에 나오는 ‘이모하’(자유인)이라는 이름, 법정 스님,
(2) 헤로도투스가 자신만만해 하면서 묘사한 세계지도가 재미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Ⅴ 테릅시코레
(1) 합종연횡이랄까.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모습, 기회주의자들의 영민한 처세술의 백화점이다. 기억할 일이다. 누군가 당신의 행적을 지켜 보고 있다는 걸.
(2) 참주에 대해 자료를 찾아 보았는데,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인터넷을 뒤지다가 티라노사우르스가 참주도마뱀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되어 우리 집 꼬마들에게 자랑하려고 했다가 아이들이 진작 알고 있어서 머쓱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공룡에 대해서 아는 게 더 많다.
(3) 매듭짓지 못한 族과 人의 번역기준에 대해선
Ⅵ 에라토
(1) 아르타프로네스의 ‘구두론’은 현재에 있어서도 타당하다.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일이든 그 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구두를 만든 이와 구두를 신은 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2)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는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뛰어 가서 장렬하게 죽은 페이디피에스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파이데이아 여정에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우리에게 남겨진 이야기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던 많은 이야기 중의 극히 작은 편린일 뿐이라는 거다. 해박한 어부 헤로도투스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고 사라져간 숱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얘기다. 난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어부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고기만을 잡는 거다. 우리에게는 좀 더 많은 역사의 어부가 필요하다.
(3) 헤로도투스는 서론에서 쓴 대로 전쟁의 원인을 밝히는데 주력했다. 실제 전투는 소략하게 그렸다. 그래 이 책은 병법서가 아니니까…
Ⅶ 폴륌니아
(1) 압권은 역시 크세르크세스가 원정을 결단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면서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헤로도투스는 크세르크세스 뿐 아니라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아르타바노스마저 위협하는 ‘꿈속의 환영’을 등장시키고(12장-18장), 아테네 사절단에 대한 델포이 신탁에서는 ‘아테나 여신마저도 누그러뜨리지 못할 올륌포스의 주신 제우스의 마음’(141장)을 등장시킨다. 헤로도투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밝히려는 그 숱한 이야기들의 최종 종착점이 결국 신의 뜻이라는 건가. 모든 전쟁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의해 발발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는 인간들에게 주어진 숙명인가.
(2) ‘순금 자체만으로는 순도를 알 수 없고 다른 금과 함께 시금석에 문질러보아야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알 수 있다’는 아르타바노스의 말(10장)은 모든 판단의 지침일 것이다.
(3) 전쟁으로 달려가는 광기는 펠로폰네소스 해협에 채찍질을 명하는 모습, 병사를 열병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았던
(4) 우리는 자신의 非行을 타인의 非行과 바꾸러 장터에 나간 사람들과 같다. 그 장터에서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의 비행과 견주어 보고는 주머니속에 자신의 비행을 꼬깃꼬깃 쑤셔 넣은 채 이까짓 거 쯤이야 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어떤 이는 자신의 띠끌을 들보로 여기고 주저앉아 통곡하기도 하고, 어디로 발길을 돌릴 지 몰라 황망해 한다.
Ⅷ 우라니아
역사의 하이라이트 권인데, 8권을 읽는 동안
Ⅸ 칼리오페
내가 발제를 한 부분이다. 크세르크세스가 퇴각한 뒤 남겨져 있던 페르시아군과 그리스연합군의 최후의 전투로서 같은 날 치르졌던 플라타이아 전투와 뮈켈레 전투에 관한 내용이다.
결
생각나는 단상들을 적어 놓았다가 모으다 보니, 무질서하게 길어져 버렸다. 내 생각도 왔다갔다 하는 거 같고… 내가 이 책과 함께 보냈던 사고의 흔적들이라 버리지 못하고 간단독후감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둔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대조적이다. 역사의 아버지로 추앙하면서 프로파간다용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역사 서술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과 우리의 경우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기원전의 그 시대를 바람처럼 떠돌았을 헤로도투스의 모습과 헤로도투스가 전해 준 그 때 그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엉뚱하지만, 내 아이들도 헤로도투스처럼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새삼 한글로 원전을 읽게 해 주신
** 제가 이 카페에 독후감을 올리는 이유는 카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카페에 올려져 있는 자료와 독후감, 글들에서 많이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