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우리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인들은 역사가 깊고 현명한 민족이기 때문에 몇 백 년, 아니 그 이상이라도 정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 줄 알며 평화와 질서를 지킬 줄 압니다.
그들은 평화를 누릴 수 있을 때까지 인간답지 않은 생활을 계속합니다.
나는 나와 같은 여인들이 그 나라와 그러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모두 바치는 것을 결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쉽게 사랑을 하고 그것을 잊지 못하는데, 그 잊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언젠가는 분열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택과 결정이 항상 뒤따르게 됩니다.
제럴드의 외가가 중국이 아니었다면 그는 나와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 특히 북경이라는 도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여인이든지 그 도시에게는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나는 책을 펴 볼 생각도 못한 채 곧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처럼 2시 15분에 깨었을 땐 무척 상쾌했습니다.
책을 막 펼쳤을 때 나는 내가 혼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놀라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의혹에 사로잡혔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눈을 들었을 때 문 앞에 서 있는 제럴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몸은 수척했으며 더 늙어 보였습니다.
그는 수염과 머리를 아주 짧게 깎고 중국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신사복이 아니라 학생들이 입는 제복처럼 우중충한 색깔의 천으로 만든 것이었고 목까지 단추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나는 제럴드의 모습은 잘 볼 수 없었으나 그의 얼굴은 아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나를 보고 웃었으며 우울해 보이는 까만 눈이 한순간 빛났습니다.
그때 제럴드가 나를 안아 주려는 듯 두 팔을 벌린 것 같으나 잠자리에서 뛰어 일어난 내가 그에게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확실히 그랬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제럴드! 제럴드! 제럴드! 오오!”
나는 그의 얼굴에 나타난 대단히 고통스런 표정 때문에 잠시 멈칫했으나 곧 달려가서 그를 품안에 안으려 했는데 그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나는 그가 서 있었다고 생각되는 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맨발에 닿은 바닥의 차가운 느낌뿐이었습니다.
나는 두렵고 불안해서 다시 잠자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제럴드를 보았습니다.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그가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꿈이나 착각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꿈이 나 착각이었다면 우리가 헤어진 당시의 모습을 보았어야 맞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안개가 자욱이 낀 상해의 부두에서 배가 멀어질 때까지 서로 바라보던 그때의 얼굴이었어야 합니다.
==
"우리는 그분을 침실에서 보이는 작은 마당에 비밀스럽게 묻어 드렸어요."
매란의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른 오후라면 여기 이 골짜기에선 새벽 2시쯤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어찌 그런 일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모를 일입니다. 아마 영원히 얻지 못할 해답일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세상에서 다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여기까지 쓴 나는 잠시 멈추고 제럴드가 죽은 직후 그의 모습이 또렷하게 내 앞에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레니에게 알려 주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나에게로 돌아와 영원히 기억되게 하기 위하여 잠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잠시 후 그런 이야기는 안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레니는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나는 자신의 진심을 시험당하기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필요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이 확신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도 될 일이기도 합니다.
편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니의 답장이 날아왔습니다.
"어머니, 저는 아버님을 용서해 드렸습니다.
저는 저의 자의로, 그리고 사랑으로 아버님을 용서해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일이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린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되겠지요.
이와 같은 사실을 메리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
"제 의무일 것 같아 이 편지를 씁니다."
매란은 이렇게 쓰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은 것을 알려 드립니다. 아기는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피부는 하얗고 머리는 검지만 부드럽고 보기 좋습니다. 체격과 용모가 크고 강해 보입니다.
저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키도 클 것 같답니다.
저는 이런 아기를 갖는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어머니와 저는 아기의 아버지와 당신을 위해 이 아기를 최선을 다해 키우겠습니다."
나를 위해? 그녀의 아이와 내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나는 그녀의 편지 끝 구절이 나에 대한 묘한 질문 이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나는 그 아이가 레니의 이복 동생이라는 걸 깨달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엔가 그들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두 아이는 서로 얼마나 다를까요, 또 얼마나 닮았을까요?
자연과 인생의 흐름은 기묘하고도 심오한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분노와 전쟁의 와중에서도 사랑의 비밀은 진행되는 것이며 사랑이 거부되든 사랑이 부여되든 생명이란 모두 피로 연결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당신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바바.
당신은 당신이 하신 일을 알고 계시겠죠?
당신은 당신이 사랑한 순수한 미국 여성이 당신을 충분히 사랑해 주지 않은 데서 받은 상처를 안고 북경으로 가셨고, 별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어쨌든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을 아내로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의 아들을 낳았으며 어느 날 저는 당신의 그 아드님을 만나게 됐고, 또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북경에 가게 되었고 그 도시를 내 고향처럼 사랑하게 되었으나 끝내는 나 홀로 내 사랑으로부터 영원히 헤어지도록 쫓겨나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의 두 손자가 지구 반대편에 서로 떨어져 존재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의 손자들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합쳐져야 할 것이며 그들도 언젠가는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바바?
산중의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 홀로 누워 계신 바바!
이런 사실에 대해 뭐라고 말씀 좀 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