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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소식

김흥근 선교사 사역이야기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05.09.30|조회수28 목록 댓글 0
나는 쇠하여야 하고, 당신은 흥하소서!


<남부역에서 '아띨라'와>


"몇 년 되셨어요? 노숙한 지가?"
"22년!"
"자녀는요?"
"딸이 셋 있지!"

역에서, 광장에서, 국을 퍼주며 참 여러 사람, 여러 인생, 희안한 사연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매일 기도하고, 데려와 몸 씻기고, 똥걸레같은 옷을 세탁하여 갈아 입히고, 국 퍼주고, 말씀으로 격려해도,
반짝 좋았다가 또 제자리로 돌아가 술에 만취되어 오줌똥 범벅이 되어있는 그들과 맞닦거려 보면,
나와 아내는 속이 울렁거리고, 온 몸 머리가 스물거리고, 무엇보다 참 낙망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새벽 무릎을 꿇고 말씀을 듣는데,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한 말인데, 나의 선교 목회에 어떻게 적용하라는 말씀입니까?
주께서 섬기라고 맡겨주신 저 노숙자 형제, 자매들에 대해 지금까지의 나의 많은 낙망은 뭘 말합니까?
내가 쇠하여야 한다면, 저들을 더 섬기지 못하는 목회 양심으로 더 고통하고, 마음을 찢어야 되지 않습니까?
22년을 집에서 자본 적 없는 자, 두 발을 동상으로 잘린 뒤에도 여전히 노숙하는 사람,...얼마나 많은데...
나의 낙망이란 것, 얼마나 실소를 금치 못할 엄살인가,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에 비하면!

그런데, 내가 아직 다 쇠하기도 전에, 저들의 변화를 조금 씩 보다니!
그것은 바로 절대 그분의 은총입니다. 그들 속에 주님이 꿈틀꿈틀 흥하고 계심을 보는 증거들로...

지난 주일 강단에 선 나는 예배당을 들어서는 '아띨라'를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달려가 그를 껴앉고 뿌시뿌시를 수십번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교회에 척 들어서다니!

주일 아침이면 내가 예배 준비(마이크시설, 비디오프로젝트 설치...)를 하며 일찍 오는 성도들을 맞이하는 사이,
아내 서 명희 선교사는 9인승 밴으로 세 차례 성도들을 실어나릅니다.
약속된 시간에 남부역과 모스크바 광장으로 나가 몸이 불편한 노숙자 성도들을 태워오는데,
자리가 부족해 차 트렁크에도 타니, 실랭이하던 경찰들도 그냥 조심하라고 합니다.

한편 부엌에서는 예배 후 먹일 점심급식을 위해 요지와 페리가 땀을 흘리며 구야쉬 국을 끓입니다.
(공동체생활을 했던 요리사 티보르는, 그만 떠났습니다.)
일찍 와서 돕는 허이니, 뚠데는 베개빵과 오이도 잘라놓고,
화장실 앞과 세면실 앞에는 샤워와 면도를 하려는 사람들로 줄을 서 있습니다.
발코니에는 옷 바구니들 속을 헤집고 맞는 옷을 찾아 갈아입는 자로 북적댑니다.

찬양인도를 위해 기타줄을 맞추는 피떼르와 제네 요지, 길쭉한 북을 치는 이쉬트반.
워낙 커피를 좋아하는 헝가리인들이라 그들을 섬기는 여 성도들-클라라, 일롱까, 주잔나-
야노쉬, 안드레아 부부는 새로 산 차를 타고 내리는데 수테미니(케잌)를 해서 들고 들어옵니다.

나이어린 노숙자 연인 페페와 니키(17살, 애기엄마)는 그저 껴앉고 애정표현을 하고있자
마침 밴에서 내린 아내가 남자에게는 빗자루를 쥐어주고, 여자에게는 앞치마를 입혀 일을 위임시킵니다.
그래야 교회의 주인의식을 갖게 되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 된다며.
여기저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데나 버리지 않게 쓰레기통을 일러주기도 합니다.

드디어 예배 시작 시간이 되어 아내가 신디사이즈로 "나같은 죄인 살리신..." 반주를 하고
내가 '예배로 부르심'을 선포하려는데, 아띨라가 개선 장군처럼 그렇게 예배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환한 미소를 짓고, 큰 덩치로 자랑스럽게 성큼성큼!

그는 심한 알콜 중독자로, 남부역 어디서나 들어누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론 마켓 앞이나 공중전화 박스 밑에서 손을 내민 채 구걸을 하고 앉았거나,
바지에 오줌이 흐르는 채로 역 계단 밑에 내버려져 있다시피 쓰러져있던 그였습니다.
그런 그가 자기 발로 주일 예배에 왔다는 것은 저희 내외에겐 큰 기쁨의 충격이었습니다.

다음날 월요일 저녁녘에 남부역에 가니 그가 우리 내외를 맞아 밴으로 와서 국도 나르고
몸이 불편한 지미, 러요쉬 할아버지, 산도르에게 먼저 국을 날라주고, 자신은 나중에서야 먹습니다.
이가 또 번져 지난번에 이발 해줬는데 수염은 더북히 자랐지만 키큰 야노쉬랑 목욕하고 왔다면서 깨끗했고,
한때 그의 눈에 있었던 불신과 원망의 가시는 벗겨져 환한 미소로, 주님의 얼굴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대학교(5년제)에서 수의과 계통의 동물학과를 4학년까지 다녔고,
경마장에서 말을 돌보는 괜찮은 직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좀 마마보이였던 그가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충격으로 정신 장애가 생겨
직장도 잃고 아내로부터 쫓겨나 1 년 쯤 전에 남부역으로 흘러들어와 노숙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가 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야 할 때가 온 것같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200 여 km 떨어진 시골에 암에 걸려 혼자 계시는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고 싶어 합니다.
하루 시간을 내어 그를 차로 데려다 줄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일반 목회 목사라면 성도들이 성장하여 그들이 교회에 남아 섬기기를 원하지만
우리 부부의 기도와 소원은 성도들이 떠나는 것이 보람이고 감사 입니다.
직장을 얻어 떠나고, 가족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 더 이상 노숙자란 이름을 듣지 말아야 하므로...
그래서 우리 '쇼 빌라고샤그(소금 빛) 교회'와 '우짜이(거리의) 교회'는 매주 10 여 명이 바뀝니다.
한동안 일을 얻어 떠났던 자들이 다시 돌아오면 무척 반갑지만 한편 마음이 무겁습니다. 노숙을 못 벗어났구나 싶어서.
하지만 나는 쇠하는 자로, 그들 속에 예수님이 흥하기까지 그들 옆에 있기를 원합니다.

노숙자 저들이 아직도 덜 쇠한 나의 어깨를 밟고 건너가 건강한 또는 정상의 유숙자가 되도록,
계속 나는 쇠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 그들 속에 당신은 흥하소서!

아띨라의 그 당당히 들어섬을 축하하며...
아버지 집에 들어가 더 힘들고 어려운 자를 섬기는 자가 되기까지...
내가 옆에 있어줄께, 아띨라! 사랑한다!

2005. 9. 29 부다페스트의 '거리의 교회'와 '소금 빛 교회' 목사, 김흥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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