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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초의 세상

도금불사(鍍金佛事)

작성자종진|작성시간12.06.03|조회수539 목록 댓글 0

 

 

불상의 탄생과 개금(改金)

 

박준주/한국단청협회 회장

부처님께서 출가 성도하여 법륜을 밝히신 뒤 열반하셨다. 그 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을 신봉하였다. 오래된 경전 속에는 인도의 우전왕(優塡王 Udayana)이 부처님 생존시 불상(佛像)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그중 증일아함경 권28을 보면 “석존이 33천에 올라가 그곳에 있던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설법하고 3개월 동안 머무르게 되었다. 지상에서 오랫동안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자 부처를 너무 사모하던 우전왕은 근심 끝에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이때 여러 신하의 건의를 받아들여 나라 안의 뛰어난 장인을 모아 이른바 우두전단(牛頭栴檀)이란 나무로 키가 다섯 자나 되는 부처님의 형상을 만드는데 이 소식을 들은 이웃나라의 파사익왕(波斯匿王 Prasenajit)도 황금불상을 만들게 하여 인도에서 처음으로 두 존의 불상이 출현하게 되었다. 하늘 위에 있던 부처님은 장인들이 신력으로 불상을 만들어내자 하늘과 땅을 잇는 삼연(三連)의 계단으로 여러 천(天)들을 거느리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그곳에 모여 있던 여러 나라의 왕들이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그때 우전왕은 자신이 조성케 한 전단불상을 가지고 부처님에게로 나아가니 이에 부처님은 ‘불상을 만들면 조상(造像)의 공덕복보(功德福報)가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후 중국의 승려 법현과 현장이 인도의 여러 지역을 방문한 바,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우전왕과 파사익왕이 각각 만들었다고 하는 불상이 당시에도 남아 있었으며 특히 우전왕의 전단불상에 대해서 여러 나라의 왕이 예배 공양에 사용할 수 있도록 그 모각상(模刻像)을 만들게 했다고 전한다.

불상은 붇다 시대부터 수세기가 지난 후까지도 전혀 만들어진 흔적이 보이지 않고 불전도(佛傳圖)에서조차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19세기 이후 붇다시대의 불상의 기록은 신앙상의 작위(作爲)로 보고 불상의 기원 문제가 물증위주로 연구되어 현재 불교계에서는 인도의 간다라 또는 마투라 불상을 그 기원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불교사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는 초기의 불상 탄생 문제는 나로서는 그 이상 아는 바가 없으므로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단지 현재에 살고 있고 불교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여기서는 오늘날의 불상들이 어떻게 탄생되고 있는가에 대해 나의 전공범위내에서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인간 붇다의 생모(生母)는 마야부인이다. 부처님의 열반후 많은 붇다의 상이 조성되었다. 즉 등상불(等像佛)과 회화계통의 벽화ㆍ탱화를 모시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왔는데 이와 같이 새롭게 불상을 조성하는 사람들을 최고로 존칭하여 부처님의 어머니란 뜻으로 절에서는 불모(佛母) 또는 금어(金魚)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한 평생을 그런 일을 해왔다.

한 존(尊)의 불상이 탄생하기 위해 내가 쏟는 정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등상불의 바탕 위에 부처님의 찬란히 빛나는 모습을 금으로 정성드려 꾸미는 일이다.

이러한 일을 일반적으로 ‘도금불사(鍍金佛事)’라 한다. 우리는 도금불사를 행하는데 도금법(鍍金法) 또는 개금법(改金法) 중의 한 방법으로 하게 된다.

두 방법은 공히 금분(金粉)과 금박(金箔)을 이용하는데 금(金)이란 것은 어떤 상징성이 있으며 성질이 있는가?

부처님의 광명(光明)은 시방세계의 불국토를 두루 비춘다고 하여 부처님은 전신발광(全身發光)을 하심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고 시방에 퍼져 나가는 법이라 했다. 32상(相)과 80종호(種號)에 걸맞게 표현할 수 있으며 두루 비추고 변치 않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금(金)이라는 물질이다. 금(金)은 산화작용을 받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썩지 않고 영원히 자기의 몸색인 황금빛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퍼짐성(展性)이 좋아 1만분지 1밀리 두께로 0.6평방미터/1그램 넓이까지 가능하다고 하며, 뽑힘성(延性)이 빼어나 1그램으로 3.3킬로미터 이상의 가는 줄로 뽑을 수 있다 한다.

불상을 조성하는 재료로는 흔히 철, 청동, 나무, 흙, 종이, 돌 등을 사용하는데 그래서 철불(鐵佛), 청동불(靑銅佛), 목불(木佛), 토불(土佛), 소조불(塑造佛), 지불(紙佛), 석불(石佛)로 불리게 되며 그 바탕재질이 무엇인가에 따라 도금법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게 된다. 도금과 개금의 수명연한은 그 보존방법에 큰 차이가 있어 절대적인 연수는 말할 수는 없으나 일반 사찰에서의 개금인 경우 50년정도로 보고 있다.

도금법(鍍金法)은 혼홍법(混汞法)을 이용한다. 금가루를 수은에 섞어 껌과 같은 상태로 만든 금아말감(金Amalgam)을 필요한 부분에 바르고 300-400℃ 정도 되는 열을 가하면 수은은 증발하고 금만 남아 표면에 부착시키는 방법으로 고대로부터 널리 행해져 왔다. 금동불(金銅佛) 대부분이 이 방법에 의한 것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수은 증발시 유해가스의 발생과 금속류가 아닌 불상은 가열온도를 이겨내지 못하기 떄문에 이 방법의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도 있다.

이에 반하여 개금법은 바탕의 재질이 문제가 안된다. 그래서 오늘날은 철불에 조차 개금법을 행하고 있다. 목불의 경우 금박을 입힌 예는 일본이 그토록 자랑하는 쿄토의 광륭사 목조반가사유상(京都 廣隆寺 木造半跏思惟像 : 7세기초 飛鳥時代것으로 추정)을 들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그 불상은 후에 많은 성형수술을 거친 다듬어진 모습이고 대정2년(1913년) 8월 동경제실박물관(東京帝室博物館)에서 펴낸 ‘제국미술사료(帝國美術史料)’ 제7집의 사진을 보면 원형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데 후세에 손을 댓을 것으로 판단되는 금박이 상당히 남아 있음이 보인다.

 

개금(改金)

개금하는 불상이 신조(新造)되는 경우가 아닐 때에는 옻칠을 올리기 전의 준비작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문화재수리기술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내가 개금작업했던 대표적 작품은 불국사 극락전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27호)과 비로자나불 좌상(국보 제26호) (이상은 鐵佛),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여래 좌상(국보 제45호), 해인사 대적광전 및 법주사 대웅전 불상 등이 있다. 문화재를 수리한다는 것에는 ‘원형보존(原形保存)’에 역점을 두고 원래의 재료와 전통기법을 동원하여 그 모습을 재현시켜 놓아야 된다는 책임감이 주어진다. 우선 불상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구조적인 안정성을 파악해야 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체의 허약성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다룸에 있어 방심은 금물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귀중한 문화유산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끼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구조적인 안정성이 구축된 이후 불상의 바탕재료가 드러나도록 겉의 칠을 모두 거두어 낸다. 그런 후 세심한 사포질을 하는데 이를 표면고르기라 한다. 잘 다듬어진 표면 위에 생칠을 바르고 모시를 입히는데 전체 구석구석에 미쳐야 한다. 모시를 사용하는 까닭은 건조시 수축이 없고 골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모시와 모시가 겹쳐 높낮이가 있는 경우에는 생칠로 메우게 된다. 때로는 생칠에 호분(胡粉)을 섞어 칠하기도 한다.

다음에 행해지는 작업공정은 철불(鐵佛) 또는 청동불(靑銅佛)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불상전체를 생옻(生漆)으로 칠한 다음 불로 태운다. 초벌한 옻칠이 제때 잘 말라야 최상의 흡수층이 형성되면서 접착력이 향상된다. 그후 8회 정도 옻칠을 더 입히게 되는데 이 과정부터는 불상의 바탕재료에 상관없이 똑같게 진행된다. 매회 면고르기를 하는데 이것은 표면을 반반하게 고르는 동시에 거칠게 하는 효과를 동시에 거두기 위한 것으로 이 바탕 위로 입혀지는 칠의 부착력을 증대시키는 데 이바지 한다.

옻칠은 매우 까다로워 실내 온도와 습도를 잘 맞춰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심술을 부린다. 마르지 않거나 허옇게 서리가 낀 것처럼 토라져 버린다. 잘 마른 옻칠은 윤기가 흐르는 까만 빛을 띤다. 실내온도는 25도, 습도는 30-40%로 조절해 두면 12시간 전후하여 마른다. 그래서 조건이 잘 갖추어진 내부에서의 작업이 곤란한 경우에는 현장에서 불상을 감싸는 덧집을 짷게 된다. 내부로는 물을 적신 담요로 빙 두르고 외부를 비닐과 같은 것으로 막아 수분의 발산을 막아 최적의 조건을 만든다. 한 번 칠하고 건조시키고 면고르기하는 과정을 1 사이클로 보면 그 시간을 꼬박 하루를 잡아야 한다.

이렇게 공들여 옻을 입히길 예닐곱번. 한번 더 옻칠을 한 후 곧 뒤이어 금을 입힐 차례이다. 마지막 옻칠이 말라 갈 즈음해서 착수되는 이유는 이때쯤의 칠이 갖는 적당한 끈기를 최대한 이용코자 함이다.

개금에 사용하는 금박의 두께는 보통 1만분지 1밀리를 많이 쓰고 있으나 나는 5천분지 1 - 3천분지 1밀리를 따로 주문하여 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기성제품의 크기는 사방 10.9센치의 크기로 일본의 치수를 따르고 있다. 스티커처럼 사용할 수 있게끔 포장된 금박종이가 100장 또는 50장 단위가 한 묶음이다.

작업전 금박은 계산된 크기로 미리 잘라 놓는다. 금박은 정전기가 일지 않는 대나무로 만든 금집게로 집어 사용한다. 적당한 크기의 금박면쪽을 불상의 표면에 대고 누에고치로 만든 풀솜으로 등을 사뿐히 누른 후 종이를 조심스레 벗겨 내면 금박은 배를 깔고 불상표면에 밀착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전체적으로 금박이 베풀어졌으면 보통 그 위에 한 번 또는 두 번의 금박을 거듭 올리게 된다. 이때 사용되는 접착제로는 어교를 사용한다.

금박(평금이라고도 한다)을 붙이는 부위는 법의(法衣) 부분으로 국한된다. 그리고 육색(肉色)부분 즉 살에는 금분(가루금)을 칠해 구분을 하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온화함과 근엄함의 시각적 표현을 달성키 위함이다.

예전에는 절에서 이런 일을 할 때는 으레 잔심부름을 해주는 종두(鐘頭)스님이 계셔서 가루금 만드는 일을 전담하셨다. 가루금이 공장생산이 안되었을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이 평금을 갈아 쓸 수밖에 없었다.

먼저 사발에 평금과 아교를 넣고 갈되 단단한 나무공이를 사용한다. 어느 정도 가루금이 만들어지면 여기에 뜨듯한 물을 부어 힘을 다한 아교를 따라 낸다. 아교를 넣고 갈고 따라 내는 일련의 과정을 7-8회 정도 반복하면 고운 검은 색 가루금이 얻어진다.

이 가루금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부레풀 즉 어교(魚膠)를 써야만 금빛이 나타나지 잘못하여 아교를 그대로 쓰면 검게 되어 큰일 난다. 옛날 남대문 단청 시에 복영스님이란 분이 가루금을 만들어 쓸 때 아교풀과 어교의 적용순서를 틀리게 하여 크게 낭패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와 같이 개금작업이 끝나면 개안모발(開眼毛髮)을 한다.

“입술이 붉고 윤택하고 빛나는 것이 빈바의 열매 같을 것/ 눈이 맑고 깨끗하고 검은자위 흰자위가 분명할 것/ 눈썹이 훤칠하고 빛나며 윤택하여 초생달 같을 것/ 얼굴 낯빛이 빛나고 화려하여 찡그리거나 푸르거나 붉지 아니할 것/ 상호가 구족하여 여러 사람의 우러러봄이 끝이 없게 하라.”는 조성경(造成經)에 입각하여 전신의 형상을 마무리한다. 이로써 불모로서의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완수한 것이다. 그 다음은 스님들에 의해 점안의식(點眼儀式)을 거쳐 불교신앙의 대상으로서 영험력과 신통력을 갖춘 불상이 탄생하게 된다.

불교가 우리 나라에 전래된 후 이 땅에는 끊임없이 절이 세워졌다. 오늘날 불자들 가슴속에는 언젠가 미륵불께서 이 땅에 오신다는 염원으로 가득하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미래의 불을 조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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