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中國佛敎史
鎌田茂雄 著/ 鄭舜日 譯/경서원
2564. 12. 3
제1부 전래와 수용
제2장 魏·晋의 佛敎 ㅡ格義佛敎ㅡ
제3절 西晋의 佛敎
竺法護
竺法護(Dharmarkṣa 竺曇摩羅刹)는 월지국 사람으로 본성은 支氏이며 대를 이어 敦煌郡에 거주하였다. 8세에 출가, 외국사문인 竺高座에 사사하여 성을 竺이라 바꾸고 오로지 경전을 연찬하였다. 方等經典이 서역에 있음을 알고 스승을 따라 서역에 가서 여러나라를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 36종의 서역 여러나라 말을 익히고는 胡本을 가지고 중국에 돌아왔다.
그가 역출한 경전은 『光讚般若經』 『正法華經』 『雜摩結經』 등 약 150부 300권이라고 한다. 梁의 僧祐는 經法이 중국에 널리 퍼진 이유는 축법호의 힘에 있다고 격찬하고 있다(『出三藏記集』 卷十三, 竺法護傳).
후한에서부터 진에 이르기까지의 역경승 가운데 후한의 안세고와 지루가참, 그리고 오의 지겸 등의 세사람도 역경부수가 많으나 뛰어난 諸家중에 서 제일이었던 것은 축법호였다. 『出三藏記集』(권 2)에서는 泰始中(265~274)에서 懷帝의 永嘉 2년(308)에 이르기가지 역출한 부수를 154부라고 하고, 『고승전』에서는 165부, 隋의 『歷代三寶記』에서는 210부라고 증가시키고 있으나 『開元釋敎錄』에서는 175부로 정리하고 있다. 하여튼 150부를 넘은 경전을 한역한 것은 경탄할만 하다. 『出三藏記集』에 역출년차가 명기되어 있는 것을 검토해 보면 泰始 2년(266)부터 永嘉 2년(308)에 이르기까지 40년간에 걸쳐 번역활동을 게속하였다. 번역장소도 다양하여 『修行道地經』 7권을 역출한 돈황, 『聖法印經』을 번역한 酒泉, 『須眞天子經』 등을 번역한 장안, 『文殊師利淨律經』 등을 번역한ㅌ 낙양 등 여러 장소에서 행하였다.
축법호의 경전은 후래의 중국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정법화경』 10권은 인도 대승불교의 중요경전을 처음으로 중국에 전한 것이고 이에 의하면 竺道潜·于法開·竺法崇·竺法義·竺道壹등의 『법화경』 연구자가 배출되었다. 또한 『법화경』의 一品 「光世音菩薩普門品」에 의하여 관음신앙이 보급되었다. 그 밖의 『유마힐경』은 청담이 유행한 동진의 귀족사회에 수용되었다.
또한 지루가참에 의하여 처음 번역된 『스능엄경』도 서진에서는 축법호역과 竺叔蘭의 역이 나와 지루가참역을 刪定한 지겸의 책정본까지 4본이 되었다. 노장학이 유행하였던 서진의 사상계에 반야경전으로서 영향을 주었던 것은 『광찬반야경』이었다. 이미 9년전 朱士行이 보냈던 원전을 역출함과 아울러 서진의 불교계는 『반야경』 연구의 전성기를 맞았다. 진의 孫綽은 『道賢論』을 지어, 천축의 7승을 죽림의 7현에 비하고, 축법호를 山濤에 비유하여 덕을 기리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敦煌菩薩로 존숭하였다(『梁傳』 卷一, 竺法護傳).
축법호의 역경을 도왔던 사람으로는 聶承遠·聶道眞 부자가 있다. 축법호가 『超日明經』을 역출했을 때 섭승원은 이를 刪定하여 2권으로 하였다. 섭도진은 梵學에 능통하여 축법호의 역경을 돕고 또한 竺法首·陳士論·孫伯虎·虞世雅등도 집필과 교정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축법호의 제자로는 돈황에서 활약한 竺法乘을 비롯하여 竺法行·竺法存이 있다.
그 밖의 당시의 역경승으로는 惠帝와 懷帝(재위 290~311) 사이에 法炬가 『樓炭經』을 번역하고, 다시 法立과 함께 『法句喩經』 『福田經』의 2경을 번역하였다. 이러한 역출경전은 永嘉中에 호족의 침입으로 말미암은 동란 때문에 모두 散逸되었다. 또한 惠帝(재위 290~306) 때 帛遠은 『惟逮菩薩經』 등을 번역함과 아울러 『수능엄경』에 注를 달고, 그의 동생인 帛法祚는 『방광반야경』에 주를 달았으며 『顯宗論』을 저술하였다. 같은 혜제때 在家 奉佛者인 衛士度는 『道行般若經』 2권을 역출하였다.
宗眞 寫經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