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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1.부처님의 삶과 본성/불교의 창시자

작성자종진|작성시간20.08.01|조회수118 목록 댓글 0

담마난다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이야기
지은이ㅡK 스리 담마난다
옮긴이ㅡ이병두
2564.04.09

제 1부
부처님의 삶과 메시지

1.부처님의 삶과 본성

고타마 부처님

불교의 창시자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부처님은 서기 전 6세기 북부 인디아에 사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싯다르타였고 가족의 성씨가 고타마였습니다. 그분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궁극의 진리를 체득하신 뒤 부처님이라 불렸습니다. '부처' 는 '깨어난 사람' 또는 '깨달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분은 자기 스스로를 여래라고 불렀고,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을 복받으신 분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분을 고타마 또는 석가모니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아 보이는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호화로운 양육을 받았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쪽 모두 순수한 혈통의 후손이었습니다. 왕좌를 이어받을 상속자였으며, 매우 잘 생겼고, 신뢰감을 심어주며, 위엄이 있고, 골고루 잘 갖추어진 잘 생긴 용모를 타고났습니다. 열여섯 살에 야소다라라는 사촌 여동생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녀 또한 당당하고 침착하며, 품위와 싹싹함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싯다르타 왕자는 호화롭게 사는 것을 황금으로 된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사는 것이라 느꼈습니다. 왕궁 밖으로 나갔을 때에 그분은 흔히 '네 장면' 으로 알려진, 늙은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과 성스러운 출가 수행자를 보았습니다. 그 광경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보았을 때에 그분에게 '삶이란 늙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 는 자각이 왔습니다. 그분은 '늙음도 죽음도 없는 삶의 영역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스스로 물었습니다. 물질생활에 대한 욕망을 포기해버린 뒤에 고요히 살아가는 출가 수행자의 모습이 그분에게 '진리를 찾아가는 첫 번째 걸음은 출가' 라는 실마리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세속적으로 많이 소유하는 것이 흔히 사람들이 갈망하는 궁극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이 보편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로 결심한 후, 그분은 그 자신뿐 아니라 전 인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찾으러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밤, 그분은 잠들어 있는 부인과 아들에게 조용히 작별을 고하고 당신이 아끼는 백마에 안장을 매고 숲을 향하여 말을 달렸습니다. 그분의 출가는 사전에 예견되지 았은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한창 젊을 때에 쾌락에서 어려움으로, 확실한 물질적 안락에서 내핍으로, 부와 권력의 자리에서 동굴이나 숲 속에서 잠자리를 취하고 작열하는 태양과 비 그리고 겨울바람을 막아줄 것이라고는 누더기 옷 한 벌밖에 없는 떠돌이 길로 떠났습니다. 그분은 자기 자리, 재산, 위세와 권력에 대한 약속 그리고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을 포기하고, 인디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찾아 헤맸지만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진리를 찾는 험난한 길과 그것을 맞바꾸었습니다.

6년 동안 그분은 이 진리를 발견하려고 고생하였습니딘. 그분이 찾으려고 애썼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존재의 본질을 진실로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당시 최고 스승들 밑에서 공부하였고, 이들 종교 지도자들이 그분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배웠습니다. 그분이 찾고 있던 것을 그들이 가르쳐줄 수 없음을 발견하자 그분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진리를 찾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출가 수행자 다섯 명이 그분에게 동참하여 함께, '육체가 고통을 받으면 그 때에는 영혼이 고통에서 벗어나 해방될 것' 이라는 믿음으로 극도의 고행을 행하였습니다. 싯다르타는 내적인 힘과 의지력의 소유자였으므로 어떤 고행에 있어서도 다른 수행자들보다 뛰어났습니다. 금식을 할 때에는 하도 적게 먹어 위장 껍데기를 그분이 잡을 수 있을 정도였고, 실젯노 당신 척추 뼈를 만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분은 초인적 힘으로 자신을 밀어붙여 확실히 죽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기 고행이 무익함을 깨닫고, 대신에 중도를 실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베사카 달 보름날 밤,그분은 거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명상에 잠겨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물질적 우주의 거품을 터뜨려 버리고 모든 생명과 사물의 참 본성을 깨달은 것이 바로 그 때입니다.나이 서른다섯에 그분은 '진지한 진리 탐구자' 에서 '깨달으신 분, 부처님' 으로 바뀌었습니다. 깨달음에 이어 거의 반세기 동안, 부처님은 먼지가 펄펄 나는 인디아의 길들을 걸어 다니며 불법을 가르쳐서 그 가르침을 듣고 행한 사람들은 귀하게 되고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분은 비구와 비구니 승단을 세우고, 카스트 제도에 도전하였으며,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켰고, 종교의 자유와 자유로운 질문을 권장하였으며, 높거나 낮거나 성인이거나 위법자이거나, 갖가지 삶의 조건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구원과 해방에 이르는 문을 열어 주셨고, 앙굴리마라 같은 죄인이나 암바팔리와 같은 매춘부의 삶도 고귀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분은 종교적 노예, 종교적 교조주의와 맹목적 믿음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풀어주었습니다.

그분은 지혜와 지성이 뛰어났습니다. 모든 문제들을 구성요소로 나누어 분석하고, 의미를 분명하게 해서 논리적 순서에 따라 재결합하였습니다. 대화에 있어 그분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오늘날까지도 누구도 견줄 수 없는 교육자입니다. 그분은 아직도 마음과 현상에 대한 가장 뛰어난 분석가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그분은 인간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었으며, 인류의 가치를 향상시키고 인간이 자기들의 노력으로 최고의 지식과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분은 삶과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열고 어떤 편견이나 미리 짜여진 개념이 없이 생각하라' 고 사람들을 격려하였습니다. 비할 데 없이 뛰어난 그분의 지혜와 왕가의 핏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소박한 마을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계급과 카이스트의 차이는 그분에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분에게는 단 한 사람도 왜소하거나 비천하지 않았습니다. 꽤 자주,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과 낙담한 사람이 찾아오면 그들의 자긍심을 회복시켜 주어 천한 삶에서 벗어나 고귀한 존재로서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자비와 지혜로 가득 찬 분이라, 개인들의 이해력 수준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는 알았습니다. 그분은 단 한 사람을 도와 그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고자 먼 길을 걸으셨던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애롭고 헌신적이어서, 늘 그들의 복지와 수행의 진척 상황을 살펴주었습니다. 승원에 머물 때에는 매일 아픈 사람이 머무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아픈 사람에 대한 그분의 자비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곧 나를 돌보는 사람시다" 는 그분의 충고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상호 존중을 기준으로 하여 질서와 규율을 지켜내셨습니다. 코살라의 파세나디왕은, 자신은 처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왕이면서 자기 궁정 안에서도 그것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할 때에 부처님께서는 승려들의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그와 같은 질서와 규율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쓰신 방식은 법률을 강요하거나 처벌을 내세워 협박하여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에게는 불가사의한 힘이 많이 갖추어져 있다고 여겨졌지만, 어떤 종류의 초자연적인 힘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가장 위대한 기적은 진리를 설명하고 이 진리의 실현을 통하여 잔인한 사람을 친절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자비심을 갖춘 교육자인 그분은 인간들이 겪는 고통에 마음이 움직여 이성적인 사유 체계와 생활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세속의 조건, 우주 현상 또는 우리가 불법이라고 부르는 보편법칙을 '창조하였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세간해 즉 '세상사를 아는 사람' 이라고 묘사되기는 하지만 그분은 그 보편법칙의 유일한 관리자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은 우주의 운행과 함께 불법은 영원한 것이고. 이를 창조한 사람비 없으며, '절대적 의미에서 독립적' 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조건지어진 것들은 불법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석가불 이전의 다른 부처님들과 마찬가지로 이 부처님께서 하신 일은 절대로 오류가 없는 이 진리를 재발견하여 인류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 그분은, 불만족에 따라다니는 해악과 함께, 조건화의 끝없는 순환 고리에 매달린 존재로부터 자아를 궁극적으로 벗어나게 할 수단도 찾으셨습니다, 45년 동안 전도활동을 하신 뒤 부처님은 쿠시나라라고 하는 곳에서 수많은 비구와 비구니 제자와 진리의 가르침이라는 방대한 보고를 뒤에 남기고 8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위대한 사랑과 헌신이 남긴 충격과 영향은 오늘날에도 아직 느껴집니다.
웰즈는 (역사상 3대 위인) 에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부처님에게서 그대는 신화가 아니라 단순하고, 헌신적이며, 외롭고, 빛을 다투어, 살아 숨쉬는 인간성을 가진 사람을 봅니다. 그분 또한 성격상 인류에게 보편적인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현대 사상의 상당수가 그것과 아주 밀접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삶에 비참함과 불만족은 모두 이기심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평정을 찾기에 앞서 자기 감각과 자아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부터 끊어야 합니닺 그리고 난 다음에 좀 더 위대한 존재로 융합됩니다. 불교는 그리스도보다 500년 앞서 다양한 언어로 사람들에게 자아를 잊으라고 하였습니다. 몇 가지 방식에서 그는 우리와 우리 요구에 더 가깝게 있었습니다. 그는 한 일에 있어 그리스도보다도 우리 개인의 중요성에 더 빛이 나고, 개인의 불멸성의 문제들에 대하여는 훨씬 덜 모호합니다."

중도행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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