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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9. 불법과 귀의/부처님께 귀의

작성자종진|작성시간20.08.10|조회수125 목록 댓글 0

담마난다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
지은이-담마난다
옮긴이-이병두
2564.06.26

제 3부 불교적 삶을 살아가기
9. 불법과 귀의

9. 불법과 귀의 - 불교도들은 부처님에 귀의하여 자신을 청정하게 할 영감과 올바른 이해를 얻고,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확고하게 하거나 자기 마음에 부처님을 상기시킵니다.

불교도들은 그분이 신이나 신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갖고 부처님에게 귀의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그 어떤 신성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깨달은 분이며 이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자비로운 분, 가장 현명한 분이고, 가장 성스러운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진정한 구원의 길을 보여준 부처님에게 스승으로서 귀의합니다. 그들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그분을 통해 물질적 은혜를 달라고 빌지는 않습니다. 불교도들은 부처님이 그들에게 상을 주거나 벌을 줄 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분에게 기도하지 않습니다.그들은 간청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하여 더 많은 영감과 지침을 얻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확신을 계발하겨 그들 또한 그분과 같아질 수 있도록, 그분의 위대한 덕성과 훌륭한 품성을 상기하는 수단으로 게송이나 경전을 암송합니다. 부처님에게 귀의하는 이런 태도를 비난하는 비판가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 위대한 종교적 스승에게 귀의하고 경의를 표하는 개념의 진정한 의미를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일부 사람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유일한 행위인 기도에 대해서만 배워왔습니다. 불교도들이 귀의처를 찾을 때에는, 이를 통해 자기들의 온갖 두려움과 기타 심적 혼란의 원인을 모두 근절시키는 수단으로 부처님과 진리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정령숭배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영혼 떄문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자기들 주의의 특정 대상물들에서 보호를 구합니다. 그러나 불교도들은 자기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보호책으 자기들의 본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원초적 본능을 뿌리 뽑아 버리는 과정을 통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길에 확신을 가지는데, 이것이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탙과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처했을 때 언덕배기, 숲, 작은 숲. 나무와 사당에 의탁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런 데에 의탁하는 것은 어느 하나도 안전하지 않으며 최고가 아닙니다. 그런 피난처에 매달린다고 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과 진리릐 가르침 그리고 승가에 귀의해온 사람은 올바른 지식을 갖추어 네 가지 고귀한 진리 - 슬픔. 슬픔의 원인, 슬픔의 초월 그리고 슬픔의 소멸로 인도하는 팔정도- 를 바로 봅니다. 실상 이것이야말로 안전한 귀의처입니다. 각자 그와 같은 귀의처를 찾음으로서 온갖 슬픔에서 벗어납니다.(법구경 제 188~192 게송)
<당정경> 에서는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아 어떤 다른 신들에 귀의해서 그 추종자들이 자기들의 세속적 문제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런 신들은 그 자체가 탐욕, 증오, 미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롭지 않지만, 부처님과 진리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는 그것들에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불만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서양의 불교학자 스토리는 부처님에게 귀의처를 찾는 일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내 놓습니다. "나는 귀의하기 위해 부처님에게 갑니다. 그분의 자비심으로 내가 윤회의 급류를 건널 수 있고, 그분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에 힘입어 세속적 사상과 욕망의 수렁에서 빠져 나갈 수도 있으며, 그것에서 그분이 스스로 성취한 바로 그 수승한 열반의 평화를 보게 되는 고귀하신 스승님의 출현을 희구합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에ㅔ는 그분에게 돌아가고 행복할 때에는 고요히 바라보시는 그분의 모습을 찾습니다. 꽃과 향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억누르고 진정시킬 수 있도록 내 불안한 마음의 타오르는 불기도 그분의 상 앞에 바칩니다. 내 자만심과 이기심의 짐, 내 집착과 반연의 무거운 짐, 쉬지 않고 되풀이 되는 생사윤회의 지긋지긋한 짐도 내려놓습니다." 인디아의 시인인 찬드라 바라티는 부처님에게 귀희하는 또 다른 이유를 의미심장하게 전해줍니다.

"이익을 위해서 그대에게 귀의하지 않네.
그대가 두려워서도 아니고,
명예를 좋아해서도 아니며,
그대가 태양족의 후손이기 때문도 아니고,
지식을 널리 얻으려 함도 아니지만,
끝없는 사랑과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견줄 데 없는 그대의 지혜와
널다란 윤회의 바다를 안전하게 건네 줄
그 힘에 이끌렸네.
오 세존이시여!
내 이제 그대에게 마음 다 기울여 그대의 제자가 되겠나이다."

사람들이 매우 자주 제기하는 또 다른 질문은 "부처님이 신이 아니고 그분이 오늘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 수 있겠는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에 따르면, 만약 사람들이 종교적 삶을 영위해서 그분의 조언을 따르면, 그들은 틀림없이 은총을 받게 됩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은총이란 우리가 신심과 만족감을 계발할 때에 체험하게 되는 희열을 의미합니다. 언제인가 부처님이 "나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내 가르침을 살펴보고 그것들을 실천하가." 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잡아함경) 그분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반영된 붜님의 진짜 본성을 쉽게 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간직한 부처님의 상은 불단 위에서 그들이 보게 되는, 단지 상징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불상보다 훨씬 더 사실적입니다. "불법(올바른 생활 방식) 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그 불법의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장로게) 불법을 통해 존재의 진정한 본성과 삶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된 사람은 어떤 두려움도 갖지 않게 될 것이고 조화로운 생활 방식을 확보할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자기들에게 주어질 혜택을 간청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을 숭배합니다. 불교도들은 세속적인 혜택을 간청하려고 부처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룩한 최상의 성취때문에 그분을 존경합니다. 불교도들이 부처님을 존경할 떄, 만약 부처님이 되고자 열망한다면 언제인가 그들도 똑같은 꺠달음을 얻어 인류에게 공헌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한동안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었기 때문에, 그분이 거쳐온 체험과 성취는 우리 인간들 모두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고 범상한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능력밖에 있는 것이 아님이 확실합니다.
불교도들은 부처님을 스승으로 존경합니다. 그러나 이런 존경이 그 스승에게 집착하거나 의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존경은 다음과 같은 그분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입니다.
"승려들이여! 설사 어떤 승려가 내 가사 자락을 잡고 내 뒤를 바짝 좇아 한 발짝 한 발짝 걷는다고 할지라도, 그가 만약 탐욕스럽고 다섯 가지 감관의 욕망에 강렬하게 집착하며, 생각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과 목적이 타락해 있으며, 번뇌에 어지럽게 사로잡혀 있고, 산만하여 명상에 잠기지 못하며, 침착하지 못하고, 자기의 감각 기능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그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소."
"승려들이여! 만약 어뗜 승려가 100리나 떨어진 먼 곳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탐욕스럽지 않고 다섯 가지 감관의 욕망에 집착하지 않으며, 생각이 바르고, 마음과 목적이 타락하지 않았으며, 자기 사유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주의 깊게명상에 들며, 자기 생각을 예리하게 한 곳으로 집중하고 자기의 감각 기능을 삼간다면, 그는 나와 가까이 있고 나는 그와 가깝지요."(잡아함경)


중도행 사경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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