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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의 대승사상

9. 논쟁의 고찰 2

작성자종진|작성시간20.11.01|조회수24 목록 댓글 0

11/2 용수의 대승사상

동봉 엮음 / 관음출판사

2564. 11. 2

 

Ⅱ. 바이다르야 論

 

9. 논쟁의 고찰 2

 

52. (대론자가) ‘(말과 그 대상의 관계는) 계약에 근거한 언어 습관인<주석65> ( 때문이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옳지 않다.

최고의 진실이 (다음 아래의) 고찰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미묘한 논리학에 집착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연 그대는 ‘열 여섯 항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에 의해 해탈이 있다’<주석66>고 하는 (니야야 학파) 정설을 받들고 있는 것이다. 인식 방법을 비롯한 열 여섯 항목이 최고의 진실이 되고 있다면, 거기에 무엇인가의 합리성이 있을 것이라고 현자(賢者)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의 편리한 기호에 지나지 않는 다음과 같은 명칭이 진실 아닌 대상에 붙여지고 있는 것도 보여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데바닷타(신에 의해 주어진 자)라든가 인드라파아리타(인드라신에게 수호되고 있는 자)라든가 하는 (명칭이 실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붙여지는) 것이다. 만일 단순히 세간의 언어 습관에 지나지 않는 것에 근거해서 해탈이 있다면, 소먹이는 목동을 비롯한 모든 사람도 해탈할 것이고, 현자다 어리석은 자다 라고 하는 구별까지 없어져 버릴 것이다.

53. 다시 계약에 의한 명사에는 많은 형태가 보여진다.

(… 무릇 한 줄의 해독도 할 수 없을 것이다(凡而一行解讀不能)…)<주석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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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65> NS 2·1·56에서 니야야 학파는 ‘말의 의미(대상)의 이해는 계약에 근거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주석66> <주석1>에 해설한 NS 1·1·1 참조

<주석67> 본절의 주석 부분(북경판으로 약 한 줄 정도)은 여러 개의 俗語일 듯한 단어의 티벳트역과 音寫를 포함한 위에, 세 본에 같고 다름이 매우 많아 텍스트는 확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를 추찰하는 데에는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NS 2·1·57 및 NBh는 말과 그 의미와의 결합은 자연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계약, 습관에 따른 것이므로 仙人 아리아인, 비아리아인 등의 인종의 다름에 따라서 같은 말이 다른 의미로 이해되는 것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챠스파티미슈라는 이 NS에 대한 주석 가운데 ‘야바’라고 하는 말은 아리아인에 의해 일종의 쌀(米)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지만 가장(수수와 비슷한 식물로 쌀은 아니다)의 이름으로 쓰는 따위를 예로 들고 있다. 이 53절에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도 아마 같은 종류의 사실일 것이다.

 

宗眞 寫經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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