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 니파타 [까시 바라드와자의 경] 총정리]
[지문]이 처음 나오면서 경전의 기본 형식을 갖춘 정형구[여시아문]으로 시작된다. 석가세존의 말씀은 처음부터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전해지지 않고 상황과 인연에 따라 입에서 입으로, 기억에서 기억으로 전해 내려오던 것이 석가세존의 열반과 함께 시작된 한 가지의 경전의 양식 즉 정형구가 정해지게 되는데, 석가세존이 열반하시기 전에 아난스님이 묻기를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세존께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하는[여시아문]의 탄생이다.
그 이후 모든 경전의 형식은 제일 먼저 이 구절로 시작하게 되는데, 숫타 니파타의 대부분은 이런 형식을 따르지 않고 시와 시의 대화. 즉 대부분 게송으로 되어 있거나 설명이 긴 [지문]이 함께 한다. 이러한 형식은 초기불전에 자주 나타나는 형식으로 시만 전해지다가 설명이 첨부되고 경전의 정형구인 [여시아문]이 갖추어지면서 완전한 한 종류의 경전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러한 의미로 본다면 [까시 바드라와자의 경]은 그 모든 경전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처음 시작의 [여시아문]과 설명 그리고 7개의 시 설명이 가미된 마무리 [지문]으로 지문의 내용이 시의 내용보다 길다. 오백 개의 쟁기에서 500은 눈썰미로 보기에 많구나! 정도의 숫자이지 정확한 500개가 아니다. 인도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500은 500대의 수레, 500명의 상인, 500명의 군사, 500명의 도둑, 500여인, 500명의 외도, 500명의 제자 500명의 아라한 등의 표현이 그와 같다.
석가세존께서 처음 깨달음을 얻고 다섯 명의 수행자를 깨침으로 인도하고, 야사라는 귀족 청년과 그 친구 그 지역의 귀족 청년 50여 명이 출가하여 제자가 되고 당시 불을 섬기던 세 사람의 가섭 형제와 그의 제자 1000명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부처님의 제일, 제이의 제자인 [상수제자] 사리불과 목련스님은 회의론자의 문하에 있다가 그의 동료 250명과 함께 출가하게 되는데 단순한 계산으로만 하더라도 대승경전의 [여시아문]과 시작하여 1,250명의 비구와 함께 하셨다는 1,250명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과장되거나 잘못된 표현이 아닌 역사적 근거가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수많은 제자가 36세의 젊은 붓다 즉 석가세존이 깨침을 얻은 후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당시의 종교계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고 젊은 귀족 청년들의 단체 출가는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사회문제가 될 정도의 엄청난 사건으로 젊은 석가세존은 당시의 폭풍의 눈 같은 중심인물이었을 것이다.
당시 정치로 보면 전제군주의 정복 군왕이 큰 나라를 형성하고 작은 나라들은 그 나라의 소속이 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석가족은 나라이긴 하지만 당시로 볼 때 아주 작은 나라였던 것이며 종교 사상적으로 보면 지배계급인 전통 바라문의 제도 아래 엄격한 계급 신분 사회에서 진보적인 세력인 사문의 단체가 서서히 형성되고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상인들이 막대한 장사와 무역을 통해 축적된 부가 이러한 신흥 진보 종교인 사문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기였으니, 만약 중국으로 비유하자면 재자백가의 춘추전국시대 같은 양상과 비슷했으리라.
그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종교계의 스타가 바로 36세의 석가족 출신 크샤트리아 계급의 고타마 싯타르타였으니 모든 정치, 종교, 경제가 전환하는 시기에 신선하고 새로운 가르침으로 바람을 일으킨 우리의 스승이다. 작은 나라 출신이긴 하지만 귀족이니 계급으로도 밀리지 않는 데다가 당시 내노라는 종교 지도자들이 젊은 석가세존의 제자가 되고 그 많은 제자를 돈 많은 상인과 신흥 세력 등이 지지하니 다른 큰 나라의 국왕, 왕비, 공주, 왕자, 장군, 대신, 귀족, 부호, 평민 등이 줄줄이 석가세존과 제자를 청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며 출가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당시 전통적인 종교 사상계는 두 종류의 큰 흐름이 주류였는데,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가르침 위주의 [선정주의]와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행위를 위주로 가르치는[고행주의]였는데, 석가세존은 이러한 큰 흐름의 두 가르침을 모두 섭렵하고 그들이 진정한 깨달음도 최상의 진리도 없음을 확신하신 후에 홀로 수행정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에 앉아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붓다임을 선언하신다. 출가하신 지 6년째 되는 해이며 세상의 나이로 36이 되는 때였다.
석가세존은 출가 이전에도 다른 사상과 종교, 철학, 문학, 논리학, 제왕학, 무예 등을 모두 익혔으니 한 마디로 문무를 겸비한 유망한 청년으로 작은 나라지만 왕자로 나라의 후계자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보더라도 뭐하나 빠지지 않고 무엇 하나 부럽지 않은 훌륭한 젊은이였음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일반 세속의 사람과 다른 저 마음속에 의문이 있었으니 양모가 생모가 아님도 알고 종교와 철학 사상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삶과 죽음이란 근원적인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있고 다른 세상의 어떤 학문도 가르침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출가하여 수행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모든 장애를 뛰어넘고 완전한 열반 해탈을 얻어 붓다가 된다.
여기에서 붓다는 앞에서 연각[독각]이라는 부처님을 이야기했듯이 인도의 종교인과 일반인에게는 성자로서 존경하는 같은 대상으로 보통은 [선정주의] 수행자나 [고행주의] 수행자로 대표 되고 바라문계급의 경우 세상을 떠나 출가해 두 종류의 전통적 수행단체에서 수행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홀로 유행하며 수행한다. 만약 석가세존이 당시의 이러한 두 흐름을 섭렵하지 않고 홀로 수행했다면 아마 연각[독각]과 같은 부류로밖에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초기불전에 강조하는 홀로 수행하는 출가자의 삶은 전통적인 습관에서는
1. 스승을 모시고 시봉하며 배우는 시기인[학생기. 수학기]
2. 집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시기인 [가주기]
3. 숲속에 머물며 은둔 생활을 하는 [임주기]
4. 부부가 함께 출가하여 유행하는 [유행기]
이 네 종류의 삶은 당시 바라문계급의 일반적인 생활 습관으로, 요즘으로 보면 바라문 계급의 교육제도와 복지제도라고 해도 좋을듯하다.
농부인 밭 가는 바드라와자가 석가세존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자리에서 출가가 가능한 것도 위에 예시한 수학기와 가주기를 이미 완수했기 때문이며 앞에 예시한 젊은 귀족 청년들은 학생기 즉 수학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그런 관점에서 세존도 수학기와 가주기를 거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으니 인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인연이 갖추어진다면 임주기나 유행기를 통해서 준 출가자의 삶을 누리게 되며 그 시기에는 구걸과 유행을 하며 지내기 때문에 어쩌면 순서상으로도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학기와 가주기에서 기본적인 학문이나 세상의 삶을 이미 체득 경험하였으니 임주기나 유행기는 더 높은 가르침 더 완전한 가르침을 구하는 시기로 진정한 스승 완전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 중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밭가는 바드라와자는 사문 고따마에게 공양을 하는 인연으로 인하여 진리의 펙트가 분명한 농사 비법과 수행의 비법의 비교 비유를 통해 뼛속까지 사무치는 분명한 메시지를 그 자리에서 체득하였으므로 삼보에 귀의하며 구족계를 받고 출가해 아라한이 되는 결론은 참으로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까시 바드라와자의 경]은 초기불전의 기본 형식부터 시작하여 삼보에 대한 귀의 깨달음에 대한 찬탄의 정형구와 깊이 고찰 사유해 본다면 시와 시 사이에 숨어있는 수행 방법의 스킬은 참으로 대단한 가르침이다.
씨앗, 비, 멍에, 쟁기, 쟁기 날, 자루, 몰이 막대, 끈, 황소 등을 비유한 믿음, 감관의 수호, 지혜, 부끄러움, 마음, 정진, 마음 조절, 해탈을 나타내는 절묘한 비유는 짧은 시의 행간과 행간 그리고 주석까지 참고해서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상황과 사람 인연의 적절한 만남에서 나온 이러한 법문은 진정으로 사자후이니 밭가는 농부는 참으로 복 많은 사람이다.
여기에서도 등장하는 황소 [소치는 다니야]에서 등장한 소, 그리고 마음은 아마도 중국의 참선하는 곽암스님의 심우도의 연원과 연결해서 본다면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수행이라는 마음 닦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관통되고 초월 되는 것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보인다. 마음닦음, 마음챙김 등은 수행의 핵심 중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행의 피날레는 역시 해탈이며 완전한 열반이다.
*추후 [해탈지견]이라는 단어로 정립되고 [무여열반]으로 정리된다. 가능하면 전문 불교용어를 피하여 글을 쓰고자 하였으나 완전하게 보편화 된 적절한 표현이 없다 보니 이해한 대로 아는 대로 풀어서 썼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전문용어에 익숙한 불자들은 위해 [ ] 안에 표현해 두었으니 참고 바랍니다.
총정리는 앞의 시와 가사 단상, 시조 단상과 더하는 말을 읽어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더하는 말에서 못했던 말이나 더 강조하고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총정리에서 다루니 이점 번거롭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밭가는 바라문 바드라와자 님이시여
그대는 참으로 희유한 인연 세존 뵙고
출가해 깨침 얻어서 성자되어 해탈하니
세상의 모든것 다 버려 뛰어넘고
완전한 열반을 체험한 수승한 인연
부처님 훌륭한 제자 농부중 제일일세
----2565.3.13 법주도서관&자주선림 자림 심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