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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 니파타 2:5-270-0지문 자림 가사 단상]

작성자종진|작성시간21.09.30|조회수13 목록 댓글 0

[숫타 니파타 2:5-270-0지문 자림 가사 단상]

2. 작은 법문의 품
5. 쑤찔로마의 경

270-0. [지문]

아난스님 부처님께 이와같이 들었으니
어느한때 세존께서 가야라는 곳에있는

야차에게 제사지낼 제단있는 곳에있는
쑤찔로마 야차집에 머무르고 계셨는대

그때마침 카라야차 쑤찔로마 야차둘이
세존께서 계신곳의 멀지않는 곳지나다
카라야차 쑤찔로마 야차에게 이와같이
말하기를 이분께서 수행자네 라고하니
쑤찔로마 의심가득 가지고서 말하기를
그사람은 수행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가진짜 수행잔지 신출내기 수행잔지
내가판단 하기이전 기다리라 호언하며
속으로는 신출내기 수행자다 확신하며
말하고서 세존께서 머무시는 곳에와서
가까이에 다가와서 몸을굽혀 부딪쳤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몸을젖혀 피하셨다.

그때야차 쑤찔로마 세존향해 말하기를
수행자여 그대나를 두려워서 피하는가

그대벗님 나는그대 두려움맘 없지마는
그대와의 부딪침은 기분나쁜 것이라네

그렇다면 수행자여 나는바로 당신에게
질문하려 하는건대 만약그대 나의질문
대답하지 못한다면 나는당신 마음미쳐
버리도록 만들거나 심장찟어 버리거나
두발잡아 갠지스강 저쪽으로 던질거네

그대벗님 신들세계 악마세계 하늘세계
성직자나 수행자나 그후예들 왕들이나
백성들의 세계에서 나의마음 미치게해
사실이나 나의심장 찟어서는 두발잡아
갠지스강 건너편에 던질만한 그누구도
아직본적 없었다네 그렇지만 그대벗님
그대무슨 질문이든 원하는것 물어보게

----2565.9.30 자림 심적 합장

 
●●●더하는 말○○○

야차가 다시 등장하는 경전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서론의 부분으로 지문 형식으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두 야차의 이름은 카라와 쑤찔로마로 쑤찔로마 야차의 뜻은 [바늘과 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자]라고 주석에 설명이 되어 있다. 카라 야차는 전생에 수행승이었는데 승가에 속한 기름을 책임자에게 묻지도 않고 당연히 허락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몸에 바르게 되고 여러 스님들이 사용할 기름이므로 그 과보로 인해서 지옥에 떨어졌다가 야차의 가문에 태어났으나 몸은 추악하게 되고 피부는 마치 타일의 모양처럼 갈라지고 거칠어 다른 사람을 겁줄 때 자기 자신의 거북 등처럼 생긴 피부를 드러내어 위협하는 야차로 소개되어 있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표현이 문장에 등장하는데 야차의 이러한 모습은 여러 스님이 써야 할 기름을 허락도 없이 몸에 바른 과보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인다.

이 경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히는 쑤찔로마 야차는 가섭 부처님 시대에 재가 신자로 [다른 자료에는 수행승으로 나옴]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한 달에 여덟 번을 부처님을 찾아뵈었는데 어느 날 그는 밭에서 일을 하다가 설법을 알리는 징 소리를 듣고 몸을 씻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해 바로 포살이 열리는 장소로 들어서서 아주 값비싼 깔개 위에 앉게 되었다. 그 결과로 지옥에 떨어졌다가 가야라는 곳의 연못가의 언덕에 있는 야차의 집안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는데 당시의 행위에 의해서 얻은 결과로 추악한 몸을 받았고 몸의 털이 바늘처럼 곤두서 있어서 쑤찔로마[ 바늘과 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흔하게 소름이 돋으면 털이 쭈뼛 선다는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이 야차도 그러한 인연 과보가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하면 좋을듯하다.

인도의 민간에는 야차를 숭배하는 민간신앙 형태의 사당이 있는데 제단을 마련해서 마을 사람들의 두려운 마음이 신앙화된 형태로 보이며 우리나라의 성황당 같은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이해가 되리라고 본다. 이러한 제단이 있는 곳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작은 건물이 지어지는데 아마도 세존께서 두 야차를 제도할 인연이 있었으므로 그곳에 머무셨을 것으로 보이며 그때 두 야차가 그곳을 지나다가 세존이 자기들의 영역에 해당되는 곳에 머무르니 카라 야차는 수행자라 하고 쑤찔로마 야차는 신출내기 수행자라 하면서 의견이 나뉘고 아무래도 강하게 주장을 하는 쑤찔로마 야차가 직접 세존을 시험해 보려고 세존이 계신 곳으로 와서 몸을 아주 가까이 들이밀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슬슬 시비를 걸어보려는 공격적 의도가 보인다. 야차의 형상은 기괴하고 무서우며 쑤찔로마 야차의 경우 추악한 몸에 온몸의 털을 세우고 위협적인 외형과 함께 험악하고 위협적인 말을 하면 보통의 인간은 기절하거나 미치거나 죽기까지 하지만 카라 야차가 진짜 수행자라 하니 자기는 반대로 가짜라 우겨보며 덤비는 마음으로 그렇게 우리말로 똥 폼을 잡아보는 장면이 보인다.

숫타니파타에서 야차의 이야기가 주제가 된 경전이 두 종류 있었는데 칠악 야차와 설산 야차가 등장했고 그다음 알리바가 야차가 등장했는데 여기에 등장한 카라 야차와 쑤찔로마 야차 중 쑤찔로마 야차는 하는 말이나 행동이 거의 알라바가 야차와 비슷하다. 알라바가의 경우 야차의 중간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야차이고 여기에 등장하는 야차는 그보다는 더 아래급으로 보이는데 여하튼 야차가 자주 등장하고 그다음 하늘나라 사람이 많이 나오고 다음은 바라문과 불교신자 등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석가세존의 교화의 범위와 당시의 신앙의 형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데 앞의 야차 이야기에서 충분한 설명을 하였으므로 야차에 대한 신격화된 부분의 이야기는 [알리바가] 야차와 [설산, 칠악] 야차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읽어보기를 바란다.

이러한 야차들이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상수 제자인 목련 스님의 이야기에서 증명이 되는 부분이며 이 야차들은 자기 자신들이 필요할 때에는 추악하고 기괴하며 이상하고 요상한 모습을 나타내서 상대방을 겁주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석가세존은 시종일관 야차에게 벗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데 야차가 무서워서 하시는 말씀이 아닌 성질이 나쁘고 화를 잘 내며 괴력을 가진 야차의 존재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면서 분명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완전하게 깨치신 분의 풍모와 처신이 아닐까 사료되며 그것은 바로 자비와 지혜를 갖추신 분의 행위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지문에서 우리는 인도 당시의 다신적 사상과 종교 그리고 포교의 인연과 그 범위를 다시 한 번 사유해 보는 인연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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