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만 보고 소가 지나갔는지 말이 지나갔는지 알수 있다고하죠. 제가 인터넷 불교토론방에서 10년정도 생활해보니, 글만 봐도 그 사람을 알수 있습니다. 최소한 그 토론장에서는 아이디를 바꾸거나 하며 비열한 방법은 사용 안하죠. 어쩔땐 차라리 기독교광신자들이 오히려 더 나아요. 떠들다 가버리니까.문제는 정신이 약간 이상이 생긴 사람들이죠.옛날 영생교 교주같은 사람들을 예로 들수있습니다.
이들을 교화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방법은 도반들이 마음을 합심하고 전혀 흐트러지않은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물샐틈을 줘서는 안되는 것이죠. 도량청소를 어찌 한두사람에게 맞기겠습니까. 인터넷 불교사이트를 돌아다녀봐도 이만한 탁마도장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미국에 있는 zen center를 다녀보면 정말로 사람들이 순수하고 열의가 깊습니다. 이곳 시애틀에도 약 3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숭산스님 제자들이 일구어논 덕분이긴 하지만, 미국인들이 한국말로 반야심경을 외우고, 신묘장구대다라니도 외운답니다. 한국에 계신 불자님e들 아직도 반야심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못 외우신다면 좀 부끄러우시죠, 미국인들도 외우는데. 이분들은 공안과 생활을 연계하며 공부하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반야심경에서는 '무유공포'라고 하는데 왜 두려움이 생기느냐, 하는 실질적인 질문으로부터 불교를 접근해 가는 것이죠. 아무튼 이들을 볼때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가끔 거창한 말로 훈계조로 나오는 사람들 말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걸핏하면 타일러서 계도하라느니, 앙굴마라를 제도하듯 자비를 베풀라니 하는데, 자비라는 것을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계율을 잘 지켰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인 것이니까요. 앞서 말했듯이 정신이상자들은 자비나 가르침이 필요한게 아니라 치료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증이라 쉽게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아예 정신병에 걸리면 진단이 쉽지만, border line 즉 정상인 상태와 이상상태의 경계에서 오가는 사람들은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장군죽비스님으로 부터 공안에 대한 게송을 한두번 접할때 마다, 현우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현우경은 단순히 부처님의 전생의 구도 여정을 묘사한 경전이 아닙니다.설산동자 이야기는 아마 다 아실 것입니다. 게송 한구절 듣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옥을 했다는 설산동자의 구도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현우경에는 부처님께서 전생에 설산동자로서 목숨을 바친것은 새발의 피정도로 묘사됩니다. 때로는 게송 한구절을 듣기위해 나라를 바치기도 하고 뼈를 부수어 믿음을 보이고 기름을 두르고 불에 들어가거나 코끼리를 동원해서 사지를 찟거나 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나옵니다. 견성하는 것은 코만지는 것만큼 쉽다고 하지만 불법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하는 것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것입니다.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지요.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석가세존께서는 전생에 목숨을 댓가로 게송 한구절을 들었는데 요즘 우리네는 그렇게 값진 불경 구절들을 너무도 쉽게 지나치고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구요? 그렇다면 장군죽비스님께서 공안을 점검해 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것은 무엇으로 은혜를 갚으시렵니까. 석가세존처럼 목숨을 담보로 법문을 요구하셔 보셨습니까? 아니면 스님께서 댓가로 밥 한그릇 사라고 한적이 있던가요? 스님과의 사소한 대화 하나라도 그 값어치가 실로 어마어마 한 것입니다. 금강경에 보면 이 우주를 보석으로 치장해도 진리를 가르쳐 준것만 못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감히 그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정말로 난감해서 가슴이 답답한 지경입니다.
이들을 교화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방법은 도반들이 마음을 합심하고 전혀 흐트러지않은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물샐틈을 줘서는 안되는 것이죠. 도량청소를 어찌 한두사람에게 맞기겠습니까. 인터넷 불교사이트를 돌아다녀봐도 이만한 탁마도장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미국에 있는 zen center를 다녀보면 정말로 사람들이 순수하고 열의가 깊습니다. 이곳 시애틀에도 약 3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숭산스님 제자들이 일구어논 덕분이긴 하지만, 미국인들이 한국말로 반야심경을 외우고, 신묘장구대다라니도 외운답니다. 한국에 계신 불자님e들 아직도 반야심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못 외우신다면 좀 부끄러우시죠, 미국인들도 외우는데. 이분들은 공안과 생활을 연계하며 공부하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반야심경에서는 '무유공포'라고 하는데 왜 두려움이 생기느냐, 하는 실질적인 질문으로부터 불교를 접근해 가는 것이죠. 아무튼 이들을 볼때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가끔 거창한 말로 훈계조로 나오는 사람들 말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걸핏하면 타일러서 계도하라느니, 앙굴마라를 제도하듯 자비를 베풀라니 하는데, 자비라는 것을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계율을 잘 지켰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인 것이니까요. 앞서 말했듯이 정신이상자들은 자비나 가르침이 필요한게 아니라 치료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증이라 쉽게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아예 정신병에 걸리면 진단이 쉽지만, border line 즉 정상인 상태와 이상상태의 경계에서 오가는 사람들은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장군죽비스님으로 부터 공안에 대한 게송을 한두번 접할때 마다, 현우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현우경은 단순히 부처님의 전생의 구도 여정을 묘사한 경전이 아닙니다.설산동자 이야기는 아마 다 아실 것입니다. 게송 한구절 듣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옥을 했다는 설산동자의 구도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현우경에는 부처님께서 전생에 설산동자로서 목숨을 바친것은 새발의 피정도로 묘사됩니다. 때로는 게송 한구절을 듣기위해 나라를 바치기도 하고 뼈를 부수어 믿음을 보이고 기름을 두르고 불에 들어가거나 코끼리를 동원해서 사지를 찟거나 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나옵니다. 견성하는 것은 코만지는 것만큼 쉽다고 하지만 불법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하는 것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것입니다.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지요.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석가세존께서는 전생에 목숨을 댓가로 게송 한구절을 들었는데 요즘 우리네는 그렇게 값진 불경 구절들을 너무도 쉽게 지나치고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구요? 그렇다면 장군죽비스님께서 공안을 점검해 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것은 무엇으로 은혜를 갚으시렵니까. 석가세존처럼 목숨을 담보로 법문을 요구하셔 보셨습니까? 아니면 스님께서 댓가로 밥 한그릇 사라고 한적이 있던가요? 스님과의 사소한 대화 하나라도 그 값어치가 실로 어마어마 한 것입니다. 금강경에 보면 이 우주를 보석으로 치장해도 진리를 가르쳐 준것만 못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감히 그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정말로 난감해서 가슴이 답답한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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